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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4화)고구려 고분벽화의 신선사상
2023-03-27 06:00:00 2023-03-27 06:00:00
오늘은 한국철학사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신화와 전설 두 번째 시간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풍부하게 남아있는 설화의 세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구려는 건국 이래로 많은 왕들과 귀족들의 무덤을 남겼습니다. 그들의 무덤은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입니다. 돌을 쌓아 만든 적석총입니다. 이것은 중원에는 없는 무덤 양식입니다. “돌로 만든 무덤은 고구려의 무덤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무덤 속에 풍부한 벽화를 그렸다는 점입니다. 이 벽화는 신선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으로 그린 세계들은 고구려인들의 세계관과 의식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굉장히 중요합니다.
 
고구려의 적석총. 사진=필자 제공
 
벽화들의 주요한 내용들은 무덤 주인들이 죽은 다음에 사후 세계에서 겪는 일들, 사후세계를 어떻게 영위하는지를 묘사한 그림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사신도(四神圖)와 선계(仙界, 신선들의 세계) 동물들이 상세하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사신도(四神圖)’라는 것은 네 방위를 지키는 신(神)들 북현무(北玄武)와 남주작(南朱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등 사방을 지키는 네 짐승들이 아주 상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사신도와 더불어서, 풍부하게 선계(仙界, 신선들의 세계)에 산다고 인정됐던 동물들이 벽화에 등장합니다.
 
벽화의 이면에 담긴 고구려인들이 상상한 사후세계는 신선의 세계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신선들이 사는 세계인 선계에 들어가는데, 신선이 사는 세계에 사는 동물들은, 사람 얼굴을 한 인면조(人面鳥)라든가, 하늘을 나는 비어(飛魚)라든가, 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마(天馬) 이런 동물들이 사는 세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四神),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북현무(北玄武), 남주작(南朱雀) 등. 사진=필자 제공
 
흔히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오는 신선 세계는 중원에서 존재했던 도교 문화가 전래 되어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식으로 속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관점은 완전히 오류라고 주장합니다.
 
고구려에 중원의 도교문화가 전래된 시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기는 고구려 마지막왕인 보장왕 때입니다. 고구려 마지막왕인 보장왕 때, 연개소문의 상소에 의해서 중원의 도교가 전래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연개소문은, “어떤 나라든지 세 가지 가르침이 정립(鼎立, 발이 세 개 달린 청동그릇[鼎]처럼 세 가지가 대등하게 서 있음)되어야 하는데, 유불도가 같이 존재해야 되는데, 우리나라에는 유교와 불교는 어느 정도 성행하고 있지만, 도교가 없으니 당나라로부터 도교를 수입해야 됩니다”라고 건의를 합니다. 보장왕은 연개소문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도교문화를 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당나라는 이세민(李世民), 성(姓)이 이(李)씨인 사람이 건국한 나라입니다. 중원의 도교문화의 창시자 가운데 중심인물인 노자(老子)는 이름이 이이(李耳)입니다. 당나라 창업주인 이세민과 성이 같습니다. 성이 같은 것에 착안해서 당나라 황제들은 자신들이 노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던 참에 고구려에서 도교문화를 전래해줄 것을 요구하자 기뻐하면서 “흔쾌히 노자 《도덕경(道德經)》과 더불어 도사(道士) 두 명을 파견했다”라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고구려에 중원의 도교문화가 전래된 명확한 기록인 것입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재위 642~668) 때 전래된 중원의 도교 문화가 고구려 건국 초기에 조성된 왕과 귀족들의 무덤 속 벽화에 강하게 남아있는 신선사상을 중심으로 한 도교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은 시간의 흐름과 역사 전개의 실제 과정과 크게 괴리되는 횡설수설 수준의 억지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남아 있는 신선사상과 도교문화는 중원으로부터 전래된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고유한 문화라고 보아야 되는 중대한 이유인 것입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인면조(人面鳥). 사진=필자 제공
 
고구려의 고분벽화 속에 남아 있는 인면조(人面鳥, 사람얼굴을 한 새)라든가, 천마(天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말)라든가, 비어(飛魚, 하늘을 나는 물고기)라든가, 두생사이(頭生四耳, 귀가 네 개 달린 괴수) 괴수라든가, 두생칠구(頭生七口,  입이 일곱 개 달린 괴수) 괴수, 이런 신선 세계의 동물들이 존재했던 것은 중국의 도가 문헌인《산해경(山海經)》이라는 신선세계의 동물들과 세계를 묘사한 경전의 영향을 받았다라는 주장들이 있어왔습니다. 《산해경》에도 인면조, 비어, 천마 등의 괴수들이 나오기는 나옵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산해경》의 영향을 받아서 고구려의 고분 벽화가 신선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고구려 유역에서 형성된 신선 문화가 중원으로 건너가서 《산해경》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앞으로 후학들이 좀더 풍부한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좀더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고구려에서 형성되었던 고분 벽화에는 중국의 도교 문화와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중원의 도교문화는 인간의 생명의 연장하는 일, 곧 ‘양생술(養生術)’을 통해서 수명을 연장하는 데, 목숨 건다고 할 정도로 집착합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 속에 남아 있는 도교문화는 이와는 전혀 성질이 다릅니다. 어떤 점이 다르냐면, 고구려인들은 ‘계세적(繼世的) 세계관’을 지녔다라고 연구자들은 이야기합니다. ‘계세적(繼世的) 세계관’이란 무엇이냐, 삶과 죽음이 단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란 삶의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 가는 것이 죽음이다라고 생각했다, 하는 것이 ‘계세적(繼世的) 세계관’입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사냥도>. 사진=필자 제공
 
고구려 고분 벽화의 내용을 보면 무덤 주인이 평소에 살아생전에 즐겼던 내용들이 벽화 속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즐겼던 사냥, 씨름, 주연(酒宴), 악기 연주 이런 삶을 무덤주인이 사후세계에서 계속 누리고 즐기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것을 신선의 세계, 도교문화적인 신선의 세계 속에서, 씨름과 사랑과 주연과 춤 이런 것들을 그대로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많이 보셨을 <사냥도>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말 타고 가면서 활을 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활을 쏘는 것은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고 합니다. 말은, 두 발로만 컨트롤해야 되고, 상체는 상반신은 활을 쏘는 데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테크닉이라고 하지요. 이 어려운 테크닉을 구사하는 인물들이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 나옵니다. 이런 내용은 중원의 도가문화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이것은 ‘기마민족의 도가문화’다 이렇게 명명해도 좋을 정도의 내용입니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되고 있는, ‘옥으로 만든 곰’. 사진=필자 제공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유물들이 최근 중원 땅밑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고조선이 자리잡았던 옛날 영토라고 인정되는 요동반도 서쪽에서 ‘홍산문화(紅山文化)’라는 것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홍산문화는 거기에 홍산이라는 붉은 색을 띄는 산이 있어서 ‘홍산문화’라는 이름이 붙은 건데요. 유물들 중에는 ‘옥으로 만든 곰’[玉熊]이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중국이 전적으로 주관하고 있는 발굴작업에서 중국인들이 ‘옥으로 만든 곰[玉熊];이라고 판단하고 이름지은 유물들입니다. 곰은 단군신화에서 알다시피, 우리 민족의 토템입니다. 이 유물은 홍산문화를 만든 주역들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선조일 가능성이 높음을 강력하게 암시해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홍산문화에서 고조선과 고구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와 《산해경》에 실린 내용과 닮은 도교문화가 형성되고, 그것이 역으로 중원에 영향을 미쳐서 《산해경》 등 중원의 도교문화가 형성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나와 있는 설화의 세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삶을 중시하는 인간의 현세의 삶을 중시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들이 앞으로 한국 철학사에 깊은 영향을 끼친 우리 공동체의 문화적인 DNA다 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저는 지난 회에서는 일연스님에 의해서 문자로 정착되었던 한국 신화들에 대한 얘기를 말씀을 드렸고 이번 회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남아있는 설화 세계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이 한국 신화와 한국 설화의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중심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중심적인 것이 우리 민족공동체의 문화적 DNA에 짙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후 한국 철학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인간 중심적이고 인간이 하늘이라고 주장하는, 세계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명제인 “인간이 바로 한울이다”라는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의 명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신화와 전설에서 물려받은 문화적 DNA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까지도 한국 철학사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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