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리뷰)해리 스타일스, 형광 음악으로 채색한 서울
해리 스타일스, 데뷔 12년 만에 첫 내한 공연
한국 팬들과 소통하고 교감…'젠더 리스 패션' 선구자
2023-03-21 15:49:43 2023-03-21 15:49:4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특유의 형광빛 음악들로 채색된 서울의 밤, 그리도 무대가 달콤하게 톡톡 튀어대는 사탕 같을 수가.'
 
영국 출신 세계적인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29·Harry Styles)가 데뷔 12년 만에 한국 땅을 밟고 연 첫 내한 공연 '러브 온(Love On)'. 20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체조경기장)이 거대 캔버스로 물드는 순간, 다른 단어를 고를 수가 없었습니다. 
 
돔을 빽빽하게 꽉 채운 1만5000여명의 제창과 전율. 음악은 아트가 될 수 있고, 아트는 이리도 우리가 매일 상상하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매개일 수 있다는 것을.
 
영국 출신 세계적인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29·Harry Styles)가 데뷔 12년 만에 한국 땅을 밟고 연 첫 내한 공연 '러브 온(Love On)'.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스타일스 등장 전 입장 곡 순서 때부터 이미 돔은 축제의 우주였습니다. K팝 신드롬 뉴진스('OMG')와 BTS('Dynamite') 곡에 맞춰 춤을 추고, 킬러스와 데이비드 보위를 넘나들다, 퀸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버더빙이 스피커에서 탱크처럼 밀려올 때부터가 이미 광란이었으니까.
 
그 사이로 암전을 뚫고 나온 해리 스타일스가 튀어나올 때, 트렌디한 전자음악을 중용하거나 댄스 팝('Music for a Sushi Restaurant')이 일렁이며, 공연장을 알록달록의 색채로 물들였습니다. 본격적인 '해리스 하우스(Harry's House·정규 3집 제목)'로의 입성이었습니다.
 
해리 스타일스는 2010년대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보이 그룹 ‘원 디렉션’의 멤버입니다. 당시 팝록에 가까운 스타일을 표방하던 그룹의 음악 장르에 허스키한 해리의 보컬톤을 잘 묻혀내 전 세계 곳곳에서 팬덤을 이뤘습니다. 방탄소년단(BTS)에 앞선 글로벌 팝 보이그룹의 길을 개척한 장본인입니다.
 
다만, 스타일스는 아이돌 그룹의 전형적인 틀에만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2016년 원 디렉션이 무기한 활동 중단을 결정한 뒤 이듬해 글램 록 영향을 받은 소프트 록 발라드 스타일을 앞세워 완벽히 변신했습니다. 이후 첫 솔로 앨범 'Harry Styles'을 비롯해 2집 ‘Fine Line(2019)’, 3집 ‘Harry's House(2022)’까지 세계 양대 음악시장인 미국과 영국에서 완전히 홀로서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국 출신 세계적인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29·Harry Styles)가 데뷔 12년 만에 한국 땅을 밟고 연 첫 내한 공연 '러브 온(Love On)'.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Lloyd Wakefield
 
최근에는 트렌디한 전자음악을 중용한 댄스나 사이키델릭하고 펑키한 팝까지 나아가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활동 당시 부모님이 즐겨듣던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롤링스톤즈, 퀸, 데이비드 보위 등 60~70년대 팝, 영향을 받았다고도 줄곧 얘기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음악계 에베레스트로 통하는 올해 '그래미어워드'에서는 본상(제너럴 필드) 중 최고 영예로 꼽히는 ‘올해의 앨범’을 비롯해 6관왕에 오른 직후라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고조된 상태였습니다. 세계 팝 음악계 정점에 있는 음악가의 무대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성을 꿰뚫은 공연이란 평가가 직전부터 잇따랐습니다.
 
'워터멜론(Watermelon)' 문양의 시퀸 수트와 하늘을 향해 손을 콕콕 찌르는 디스코 춤, 슈가(Sugar)처럼 달콤한 노랫말과 무대 매너…. 해리 스타일스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음악과 퍼포먼스 감상을 넘어선 미적 체험에 가까웠습니다. 양떼를 가로 질러 질주하는 드라이빙('Keep Driving')과 상쾌하게 펼쳐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Daylight'), 봄날의 벚꽃 풍경들('Woman')을 펼쳐내며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영사기처럼 펼쳐내는 영상 연출도 감각적이었습니다.
 
국내에선 20~30대 여성 관객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적극적으로 스타일스와 교감했습니다. 특히 돌출무대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 같은 간결한 톤으로 선보인 'Matilda'와 'Little Freak' 때 관객들은 일제히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 돔을 우주로 만들어냈습니다. 관객들과 가감없는 소통이 오늘날 '스타일스 현상'을 만든 것이 아닌지 실감한 부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한국 팬이 스케치북에 써온 메시지를 끝까지 읽는가 하면, 이날이 생일이라는 한국 팬을 위해 한국어와 영어로 관객들과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객석에서 건네 받은 하트 모양 선글라스와 개구리모자를 걸치는가 하면, 태극기를 흔들거나 우리 전통 갓을 머리에 얹기도(곡 'Late Night Talking') 했습니다. 
 
영국 출신 세계적인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29·Harry Styles)가 데뷔 12년 만에 한국 땅을 밟고 연 첫 내한 공연 '러브 온(Love On)'.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Lloyd Wakefield
 
'As It Was', Watermelon Sugar', 'Sign of the Times' 같은 솔로 히트곡들부터 원디렉션 대표곡 'What Makes You Beautiful' 때는 돔이 들썩거릴 정도로 떼창이 터져 나왔습니다. 
 
해리 스타일스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젠더 리스 패션'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객석에서는 이날 분홍 의상이나 스타일스가 최근 공식석상에서 자주 두르는 깃털 목도리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해요" 같은 연습해온 한국어들을 구사하고 성별·국적이 다양한 밴드 멤버들과 백스테이지 스텝들과 벽 없이 장난치며 챙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팝스타’ 공연은 사실 친절의 탑으로 이룩한 거라는 걸 새삼 실감한 시간.
 
'우리는 친절함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도 있지/ ... 매번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친절해지는 거야/매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친절을 베푸는 거야'('Treat People With Kindness')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