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산울림이 LP(바이닐)로 재부활한다. 데뷔 45주년을 맞아 그간 내왔던 음반들의 '리마스터링 프로젝트' 일환이다.
산울림은 1977년 [아니 벌써]를 시작으로 1997년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정규 앨범 13장과 동요 앨범 4장 등 17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산울림 전작 17장과 김창완의 솔로 앨범 3장이 순차적으로 LP와 디지털 음원으로 재발매될 예정이다. 그 중 1, 2, 3집이 오는 10월 중 발매된다.
새롭게 재발매되는 리마스터 앨범들은 모두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이 간직하고 있던 릴 테이프로 작업했다.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 김창완의 감수 아래 섬세하게 리마스터 작업을 거친 후 미국에서 래커 커팅(래커 판에 마스터 음원을 소리골로 새기는 작업) 및 스탬퍼(LP 생산을 위한 원판) 작업이 이뤄졌다.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까운’이 아니라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새로운 수준'으로 음원들이 재탄생했다.
디지털 변환 및 리마스터를 맡은 이는 지난 2012년과 2016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녹음 기술상과 최우수 합창 퍼포먼스상을 수상해 국내 최초의 그래미 수상자로 기록된 레코딩 엔지니어 황병준이다. 그의 손길을 거친 음원은 세계적인 마스터링의 거장 버니 그런드만에게 넘어갔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프린스의 [Purple Rain], 닥터 드레의 [The Chronic] 등을 포함해 지미 헨드릭스, 도어스, 핑크 플로이드, 카펜터스 등 지난 60년 간 걸작 앨범의 마스터링과 래커 커팅을 맡아 온 장인이다. 스탬퍼 작업을 담당한 RTI(Record Technology Incorporated)는 70년 대 설립돼 세계 최고의 오디오파일 전문 제작 회사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그리고 이 스탬퍼는 일본으로 건너가, 59년 역사를 지니는 일본의 토요 레코딩에서 최종적으로 LP 프레싱을 마쳤다.
산울림. 사진=에꼴 드 고래
‘45년 만의 하이파이’ 산울림이다. 전반적으로 소리의 해상도가 높아져 다소 흐릿하게 뭉개져 있던 소리의 질감이 선명한 모습을 띠게 됐다.
각각의 악기와 목소리는 뚜렷하게 제자리를 찾은 듯 균형을 이루고 있다. 보다 깊고 넓어진 중저음과 말끔해진 고역대가 이루는 조화로 인해, 엷게 드리워졌던 장막을 깨끗이 걷어 낸 듯 생생한 산울림의 음악이 펼쳐지는 것이다. 테스트 프레싱 LP를 처음 들은 김창완은 “오래 전 우리가 내고자 했던 사운드가 바로 이거였다”며 한 곡 한 곡 듣다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젊은 날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산울림’은 김창완(보컬, 기타), 김창훈(보컬, 베이스), 김창익(드럼) 형제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록 밴드다. 1977년 1집 앨범 [아니 벌써]를 통해 가요계에 등장했다. 당시 40만 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앨범은 2018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5위로 선정됐다.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역시 7위로 기록됐다.
사이키델릭과 개러지 록, 하드 록, 팝, 포크와 블루스, 발라드에 이르는 산울림의 다채로운 음악은 관습적이고 정형적인 요소를 벗어난 독창적 스타일을 특징으로 한다. 2008년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의 이름은 전설이 되었다.
‘산울림’은 주옥 같은 히트곡들로 기억된다. 국민 가요와 같은 위상을 지니는 ‘개구장이’(동요 1집)와 ‘청춘’(7집), ‘너의 의미’(10집)를 비롯해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와 ‘찻잔’(6집), ‘가지 마오’(7집),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회상’(8집),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와 ‘안녕’(11집),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13집) 같은 명곡들은 낯설지 않은 이름이고 음악이다. ‘어머니와 고등어’나 ‘꼬마야’ 같은 김창완의 솔로 곡들도 빼놓을 수 없다. 산울림은 예상 외의 곡 전개와 사운드, 마음을 뒤흔드는 가사로 시간의 흐름과 무관한 긴 생명력을 얻었다.
프로젝트가 단순히 음반 재발매와 음원 공개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음악, 위대한 유산을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젝트에서 좀 더 확장해 새로운 아티스트의 발굴로 이어질 계획이다. 뮤직버스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에꼴 드 고래(Ecole de Gorae; 고래 학교)’라는 레이블을 출범했다. 레이블 이름을 만들고 로고를 그린 김창완은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같은 역할, 든든한 조력자가 될 예정이다. 산울림 뒤를 이을 수 있는 역량 있는 후배 발굴에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산울림 1977년 1집 앨범 [아니 벌써]. 사진=에꼴 드 고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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