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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법 위반" 첫 판결(종합)
"나이차별 금지한 구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은 강행규정"
"'합리적 이유'로 목적·보상정도·감액 재원의 사용 종합 고려"
"'임금피크제=무효' 판단 아니야…기준 충족하면 효력 인정"
2022-05-26 16:16:55 2022-05-27 10:23:07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합리적 이유와 보상 없이 일정 연령이 지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연령에 따른 차별로, 고령자고영법을 위반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처음 제시한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전자부품연구원(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고용주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한다고 정한 구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이 법으로 강제되는 강행규정인지 여부였다. 강행규정을 위반한 계약관계는 무효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 금지"
 
재판부는 "구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의 입법취지가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인 점, 연령차별을 당한 사람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고 인권위는 이에 대한 구제조치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점, 사업주가 시정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해당 조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해당 조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면서 "사업주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합리적 이유'에 대한 판단은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에 따라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의 임금피크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고,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려워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업무 차이 없는데 임금 대폭 하락"
 
또 "임금피크제로 인해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고, 업무감축 등 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은 점,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도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지난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해 2014년 명예퇴직했다. 연구원은 노조와 합의해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성과연급제)를 도입했고, A씨는 2011년부터 적용받았다.
 
A씨는 임금피크제로 인해 직급이 2단계 떨어지고 역량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달라고 연구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임금이나 복리후생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하는 건 고령자고용법에 반한다는 게 A씨 측 주장이었다.
 
반면 연구원 측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관련법에서는 모집과 채용에서의 차별에만 벌칙 규정이 있다며 임금에 관한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반한다며 무효로 판단해 A씨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임금피크제 유효 여부 상황별 판단"
 
이날 대법원 판결로 현재 기업들이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자체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별 사안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계류된 임금피크제들의 효력 인정여부는 이날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바른에서 노동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정상태 변호사는 "이번에 대법원이 기본적으로 임금피크제가 구 고령자고용법의 연령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향후 관련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거에는 취업규칙보다 우선하는 근로계약이 존재하는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면 앞으로는 임금피크제 그 자체에 대한 무효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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