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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학 녹취록' 곽상도 뇌물 정황…법조계 ”중요 증거”
대장동 재판, 6회 거쳐 정영학 녹음 재생 마무리 수순
법조계 “자연스러운 당사자 대화, 신빙성 높은 증거”
“곽상도 아들 50억 받은 비상식적 구조, 녹취록이 설명”
2022-05-13 16:37:45 2022-05-13 16:37:45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대장동 개발 특혜·비리 의혹’ 재판 중 재생된 ‘정영학 녹취록’을 통해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들이 곽상도 전 국회의원에게서 개발사업 편의를 받는 대가로 뇌물을 줬다는 정황에 무게가 실린다. 정 회계사의 진술도 일관적인 가운데 법조계는 녹취록의 조작 가능성이 없다는 게 명확해지면 신빙성이 높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곽 전 의원의 혐의 입증에 녹취록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준철)는 13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 김만배씨, 정 회계사, 정민용 변호사 등의 29회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날까지 여섯 기일에 걸쳐 정영학 녹취록의 녹음파일 원본을 청취했다. 그간 공개된 녹음파일에서는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이 대장동 개발사업을 위해 전방위적인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담겼다. 곽 전 의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도 포착됐다.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비리 의혹 사건은 두 가지 재판으로 진행 중이다. 하나는 김씨와 정 회계사, 남 변호사 등 민간 개발업자들이 불법적 로비를 통해 개발 사업에서 특혜를 받고 성남도개공에 최소 65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다. 
 
다른 하나는 곽 전 의원이 구속기소된 재판이다. 곽 전 의원은 김씨에게 청탁을 받고 개발 사업상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신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호반건설 측이 하나은행과 컨소시엄을 꾸려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하려 하자,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화천대유·하나은행 컨소시엄이 무산되지 않도록 막아달라고 하고 금원을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화천대유에서 일하던 곽 의원 아들 병채씨를 통해 50억원이 곽 전 의원에게 흘러갔다고 보고 있다.
 
곽 전 의원은 지속적으로 본인의 혐의를 부인해왔다. 그는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면서도 본인이 하나은행의 누구에게 컨소시엄에 남으라고 압력을 넣었는지 특정하지 못했다는 등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재생된 녹취록에는 곽 전 의원이 김씨 등에게서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 다수 담겼다. 지난 9일 공개된 2020년 10월 녹음파일에서는 유 전 본부장이 김씨에게 “변호사들은 고문료로 주신다면서요”라고 말하자 김씨는 “곽상도는 고문료로 안 되지”라고 답했다. 유 전 본부장이 “아들한테 배당하는 방법으로 주면 되지 않느냐”고 되묻자 김씨는 “회사 막내인데 어떻게 50억원을 가져가냐”고 반문했다. 곽 전 의원에게 금원을 주는 방법을 논의한 정황이 담긴 것이다. 
 
앞서 6일 재생된 녹음파일에서는 김씨가 50억원을 줘야 하는 인물로 곽 전 의원을 거론했다. 해당 녹음에서 김씨는 정 회계사와 대화하던 중 “50개 나갈 사람 세어줄게”라며 “곽상도, 박영수, 김수남, 홍성근, 권순일, 최재경”이라고 언급했다. 
 
관건은 녹취록의 신빙성이다. 녹취록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씨 측은 정 회계사가 대화내용을 녹음한다는 걸 눈치채고 일부러 과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곽 전 의원의 공판에서 재판부도 증인으로 출석한 정 회계사에게 “김씨가 증인과의 대화 중에 한 여러가지 말들 중에는 막상 실제로 가서 확인해보면 했던 말과는 다른 게 종종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정 회계사는 “곽상도 전 의원이나 시의원, 이런 중요한 부분들은 실행됐다”며 김씨 측 주장을 반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 
 
법조계에서는 대화 당사자인 정 회계사가 직접 녹음한 파일이란 점, 당사자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사적 대화가 그대로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의 이유로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녹음파일은 두 재판 모두에서 증거로 제출된 상황인데, 재판부는 녹음파일이 원본인지 확인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증거로 채택한 후 증거조사를 했을 뿐 증거로 확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만들어진 과정이 위법하지 않다면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고, 파일에 편집이나 조작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신빙성이 높은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녹음파일이 실제 증거로 채택될 경우에는, 곽 전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신빙성이 상당해 증명력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유 전 본부장 측 변호인 등은 녹음파일이 증거로서 가치가 낮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발언하고 있다. 녹음파일 중 일부 대화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변호인은 “9일도 그렇고 오늘도 이 법정에서 녹취파일이 재생 중”이라며 “변호인 입장에선 거의 99% 이상 안 들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만으로 녹음파일 전체의 증거능력이나 증명력이 부정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수도권지역 고법의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일부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고 모든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부패전담 재판부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녹음파일이 직접증거는 아니지만 당사자들의 사적이고 자연스러운 대화라는 점에서 증명력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며 “곽 전 의원의 아들이 50억원을 받은 구조가 상식적이지 않은 점 등도 미뤄보면, 녹음파일이 50억원 성격을 설명하는 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장동 민간 사업자에게 개발 사업상 편의를 제공하고 대가성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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