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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갓 더 비트
2022-01-17 06:00:00 2022-01-17 06:00:00
올해는 <어벤져스>가 개봉한지 10년이 되는 해다. 10년전, 그 영화에 열광했던 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같은 슈퍼히어로들이 팀을 짜서 지구를 지킨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이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되고, 한 작품에서 뭉친다는 영화 사상 유래없는 시도 때문이기도 했다. 스스로의 충분한 서사와 팬덤을 만들어내고, 이를 또 다른 작품에서 집결시키는 시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성공적인 IP로 만들어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을 앞세운 DC의 실패가 말해주지 않나. 
 
케이팝의 역사를 하나의 나무로 비유한다면, SM은 이 나무의 나이테 대부분을 차지한다. 1996년 H.O.T.와 1997년 S.E.S는 한국 아이돌 산업의 분기점이자, 케이팝 산업의 묘목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캐스팅과 오디션, 그리고 트레이닝을 통해 신인 그룹을 만들고 이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성공시키는 아이돌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 맞먹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터닝 포인트이자 지금껏 통용되는 케이팝 산업의 모태였다.
 
1세대 아이돌 영광의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시장이 급변했다. 21세기와 함께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고 MP3와 P2P가 세상을 휩쓸었다. 음반 시장이 몰락했다. 아이돌 ‘그룹’은 ‘솔로’ 아이돌로 대체됐다. 비, 휘성, 세븐 같은 가수들의 시대에 SM은 보아를 내놨다. 10대 초반 트레이닝을 시작, 15세에 데뷔한 보아는 한국 음악 시장의 외연을 아시아 최대의 음악 시장인 일본까지 넓혔다. 국적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일본 활동을 시작해서 성공 후 한국 가수임을 드러내는 전략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보아로 인해 내수에 머물고 있던 한국 아이돌 산업은 수출 산업으로 확장됐다. 기성 세대와 미디어가 10대 하위 문화로 여기던 아이돌을  진지하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 도 그 때부터다. 
 
SM의 나이테 새기기는 그 후로도 계속됐다. 아이돌은 노래를 못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아예 메인 보컬을 맡을 예정이던 연습생들로만 팀을 구성, 동방신기를 만들었다. 샤이니와 슈퍼주니어는 ‘누나 부대’ ‘이모 부대’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아이돌 시장을 기성 세대로 확대했다. 그리고 소녀시대가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의 아이돌 르네상스에서 소녀시대는 걸그룹 최후의 승자였다. ‘섹시’와 ‘청순’이라는, 이전까지의 걸 그룹 이미지 중 소녀시대는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았다. 티셔츠와 청바지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으며 10명이 넘는 멤버 각자의 팬덤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그들은 SM의 역량을 보여줬다. 2011년 파리에서 열린 SM타운콘서트는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아이돌과 한류를 대체하는 계기였다. 
 
그 후로도 SM은 성공의 보증수표 이자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레이블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아이돌 산업의 필수요소처럼 된 ‘세계관’을 공식적으로 도입한 엑소, 대중적 코드를 비껴나감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이미지와 컨셉을 개척한 에프엑스,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의 중간지점을 포착하여  2010년대 중반 걸그룹 세대 교체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레드벨벳, 그리고 메타버스의 성공사례처럼 여겨지는 애스파까지. 단 한 문장에 담았지만 꽤나 긴 문장이 될만큼 SM의 아이돌은 모두 각자의 특성으로 시장을 견인해왔다. 그만큼 풍부한 IP를 확보해왔다는 얘기다. 
 
각자의 팬덤이 있고 레이블 안에서의 역사가 있다. 팬들은 상상한다. 다른 팀 멤버끼리 활동하는 모습을. 보이 밴드는 슈퍼 엠이라는 성공 사례가 있지만 걸 그룹은 아직 없었다. 걸스 온 탑은 팬들의 염원을 현실화시킨 프로젝트다. 일회성으로 활동하는 이 프로젝트의 첫 유닛은 갓 더 비트(GOT The Beat). 에스파, 레드벨벳, 소녀시대, 그리고 보아까지, 동시기 그룹을 넘어 약 20년의 SM 여성 아이돌 역사를 장식하는 주역들이 하나로 뭉쳐 ‘스텝 백(Step Back)’을 발표했다. 첫째인 보아와 막내인 윈터(에스파)가 15살. 한 세대를 뛰어 넘는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과 영상에서 세월의 벽은 없다. 보아와 소녀시대 정도면 추억의 영역에 들어갔다 해도 좋지만, 그들은 레드벨벳은 물론이고 에스파에도 꿀리지 않는 역량을 보인다. 한국 음악의 역사가 몇 번이고 바뀌는 동안, 그 나이테 하나 하나를 세겼던 이들이 한  무대에서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화려하고 현란하다. 마치 한 번에 굵게 태어난 나무처럼 나이테를 지운다. 
 
그래서 갓 더 비트는 <어벤져스>보다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가깝다. <어벤져스>가 처음부터 팀업을 기획하고 준비된 프로젝트였다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팬들의 상상이 예고없이 현실로 찾아온 것이니까. 팬과 비즈니스를 모두 만족시키는 IP활용이란 무엇인지를, SM은 갓 더 비트를 통해  멋지게 보여줬다. 회사 자체의 역량과 멤버들의 녹슬지 않은 관리, 그리고 오래도록 이탈없이 관계를 유지해온 기업 문화의 총합으로 가능한 프로젝트다. 어쩌면 세계 팝 시장을 통틀어 SM만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리라.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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