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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담판, 윤석열과 이준석의 긴박했던 5일
나흘간 잠행, 이준석 "그렇다면 여기까지"부터 "후보와 어떤 이견도 없었다"까지
2021-12-05 12:32:43 2021-12-05 12:32:43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극단으로 치닫던 국민의힘 내홍이 어렵사리 봉합됐다. 승자와 패자는 확연히 갈렸다. 윤석열 후보가 이준석 대표의 '벼랑끝 전술'에 말려들었다는 평가가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이 대표도 상처를 입었다. 무엇보다 좌충우돌하며 오락가락한 처신은 질타의 대상이 됐다. 
 
이 대표는 '당대표 패싱'에 반발해 지난달 29일 당 초선의원들과 폭탄주를 마신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 '^^p'라는 글과 이모티콘을 남기고 30일 돌연 잠적했다. 전화기는 꺼놨고 예정된 일정도 무기한 취소했다.
 
이 대표는 윤 후보와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간 면담과 기자간담회, 선거대책위원회 청년위 출범, 윤 후보의 충청 일정 등 매번 패싱을 당하자 사상 초유의 당대표 잠적으로 맞섰다. 자신이 극구 반대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자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일각에선 이준석 사퇴설까지 흘러나왔다.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파동도 연상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제원 의원의 부산 지역구를 찾아 당직자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당대표실 제공
 
이준석 "그렇다면 여기까지"…부산-순천-여수-제주-울산행
 
이 대표는 나흘간 잠행 아닌 잠행을 하며 부산, 순천, 여수, 제주, 울산 등지를 돌아다녔다. 행선지가 바뀔 때마다 동행한 기자를 통해 언론에 동선을 흘렸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산이다. 그는 부산에 지역구를 둔 소속의원 14명 중 윤 후보의 최측근인 장제원 의원 사무실을 기습 방문했다. 이 대표는 선대위 구성을 두고 설전을 벌인 장 의원 홍보 벽보를 배경으로 천진난만한 인증샷까지 찍었다. 언론의 관심은 이 대표의 돌발행동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1일 오후 전남 순천과 여수로 향했다. 이 대표와 만난 순천갑 당협위원장인 천하람 변호사는 "이 대표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위기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서울로 쉽사리 올라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전했다. 여수에서 배편으로 2일 제주에 도착한 이 대표는 4·3평화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를 향해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인사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며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대외일정을 무기한 중단한 뒤 잠행 중이던 이 대표가 처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자리였다. 그는 익명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날선 비판을 쏟아냈던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을 향해 작심발언들을 쏟아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JTBC와 이원생중계로 선대위 구성 관련 내홍 및 잠적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JTBC 화면 캡처
 
이준석 "당대표는 대통령후보 부하 아니다" 
 
이 대표는 이날 밤 방송 인터뷰에서 선대위 내홍과 관련 "실패한 대통령후보, 실패한 대통령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겠다", "당 대표는 적어도 대통령후보 부하가 아니다" 등 윤 후보에게 융단폭격을 가했다. 인터뷰 내내 팔짱을 낀 채 감춰왔던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다음날인 3일 제주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보 측에서 의제를 사전 조율해야지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한다"며 "굉장한 당혹감을 느낀다"고 불만을 표한 뒤 울산으로 향했다. 
 
비슷한 시각 윤 후보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사실 일정을 좀 정리하고 제주도를 가려고 했는데, (이 대표가)장소를 또 옮긴다고 그러고 안 만나겠다고 선언을 했다"고 당혹감을 내비쳤다. 윤 후보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젊은 당대표"라며 이 대표 달래기에 나섰다. 대선 필패라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울산에서 만나 만찬회동을 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울산 담판 후 이준석 "후보와 이견 없었다"…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수락 일사천리
 
윤 후보는 여의도에서 5시간을 차로 달려 이 대표가 있는 울산으로 향했고, 3일 오후 7시30분 울산의 한 음식점에서 김기현 원내대표가 참석한 3자 회동이 성사됐다. 만찬 회동 전 모두발언에서도 이 대표의 뼈있는 말이 눈길을 끌었다. 윤 후보가 "아이고 잘 쉬셨어요?"라며 악수를 청하자, 이 대표는 "잘 쉬긴, 고생했죠"라고 응수했다. 윤 후보가 이 대표의 잠행을 '리프레시(재충전)'라고 표현한 데 대한 이 대표의 불편한 심기가 느껴졌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윤 후보가 "다음번에 (순천에)같이 가시죠"라고 제안하자, 이 대표는 "순천 출장에 제가 아픈 추억이 있다"고 맞받았다. 윤 후보가 지난 7월 이 대표의 순천 방문 도중 기습 입당해 패싱 논란을 일으킨 것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두 사람의 술자리는 두 시간가량 이어졌고 선대위 인선과 권한 배분, 운영 방향 등에 전격 합의했다. 회동 막바지에는 "윤석열을 위하여" "이준석을 위하여" 라는 건배사가 흘러나왔고, 이들의 웃음소리는 대기 중인 기자들이 있던 1층까지 들릴 정도였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부둥켜안고 사진을 찍는 등 화합 분위기도 연출했다. 양측은 합의문을 통해 "대선에 관한 중요사항에 대해 후보자와 당대표, 원내대표는 긴밀히 모든 사항을 공유하며 직접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후보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총괄선대위원장 문제도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전격 수락으로 해결됐다. 윤 후보는 울산 담판을 통해 일사천리로 쌓인 문제들이 해결되자 고무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의 총괄선대위원장직 수락을 발표하는 대목에선 기자들에게 "한 번 더 불러드릴까"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흘간 잠행을 이어가며 윤 후보를 압박했던 이 대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싹 바꿨다. 이 대표는 "저는 이번에 '핵심관계자'라는 사람에게 경고한 것이지, 후보님과의 어떤 이견도 없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며 "후보님이 입당하기 전부터 후보님과 저는 신뢰 관계가 있었다"고 했다. 전날 저녁만 해도 윤 후보를 향해 "저에게 상의를 요청하거나 의견을 물어본 바 없다"고 성토했고, 윤 후보 입당 전엔 "윤석열이 대통령되면 지구를 떠나겠다"고 공언하던 그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윤석열 대선 후보가 3일 오후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 후 포응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표가 입으라면 입고, 뛰라면 뛰고, 어디 가라면 갈 것"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후보의)백기투항"이라며 "울산담판은 윤석열 후보와 당대표 이준석의 '만남'이 아니다. '김종인 아바타' 이준석과 윤석열의 담판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는 "한마디로 미봉책이다. 앞으로 김종인과 이준석 '할배 손자'는 선대위 윤 후보 쪽 사람을 온갖 구실을 들어 다 쳐낼 것"이라며 "김종인이 각본 쓰고 서울, 부산, 순천 찍고 제주 그리고 '울산담판'이 썩고 너저분한 정치기술자 꼰대의 악취"라고 평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앙금을 털어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4일 부산 유세도 함께 했다. 윤 후보는 상임선대위원장 겸 홍보미디어본부장을 맡은 이 대표에게 "전권을 드리겠다"고 했다. 또 이 대표 제안에 따라 빨간색 후드티를 맞춰 입고 "이 대표가 계획하신 부분을 전적으로 수용해서 이런 옷을 입고 뛰라면 뛰고, 이런 복장을 하고 어디에 가라고 하면 가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빨간 후드티에는 노란 글씨로 전면에 '사진 찍고 싶으면 말씀 주세요', 뒷면에는 '셀카 모드가 편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부산 유세 현장에서 고깔모자를 쓴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오늘부터 95일! 단디하자'는 케이크를 들어 올리자 현장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윤 후보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많은 진통이 있었고, 당원과 국민께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내일 선대위 출범식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김병준·이준석 상임선대위원장, 그리고 우리의 동지들과 함께 단합된 힘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대선후보로서의 정치력과 리더십이 손상된 이후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4일 부산 유세현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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