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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40여년 만에 재회,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홀로그램 콘서트 ‘리: 프리젠트’
고 김현식 음악적 유산 ‘교류’
“음악은 결국 삶 자체였던 것”
2021-07-20 12:00:00 2021-07-20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 13일 서울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후암동 버스 종점에 교회가 하나 있어요. 그 계단 앞에서 현식이형, 태관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상상하게 되네요. 옛 동네 골목도 걷고 떡볶이도 사먹고, 꽈배기도 사먹고 그러면서, 두런두런...”
 
지난 13일 서울 도곡동의 한 카페.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특유의 저음 목소리를 잠시 끊자 정적이 흘렀다. “결국 우리가 해온 음악은 세상 이야기고 삶이었던 것이니까요.”
 
김종진은 고 김현식(1958~1990), 고 전태관(봄여름가을겨울 드러머, 1962~2018)과 재회를 앞두고 있다. 21일 경기도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릴 콘서트 ‘리: 프리젠트(Re:present)’를 통해서다. 홀로그램으로 복원된 두 사람과 김종진은 합동 공연을 펼친다. 1980년대 말 ‘김현식과 봄,여름, 가을, 겨울’ 활동 이후 약 40여년만의 무대다.
 
“한 때 우리 곁에 있었지만 떠나버린 사람들, 그 기억을 소환하는 무대에요. 사실 ‘재회’라는 표현은 틀린 걸지 몰라요. 저는 지금도 늘 현식이형, 태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고 생각하거든요.”
 
방 한편에서 기타를 퉁기던 고 김현식은 그의 가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음악이 수학처럼 딱딱 맞아야 하는 건 아니다’ 가르침을 주던 30대 청년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삶은 수학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죠. 음악도 삶 같은 거예요. 상대가 조금 틀리더라도 배려하고 이해하고, 또 그 안에서 자유를 찾고. 운전할 때 핸들이 조금 틀어져도 똑바로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어릴 때는 몰랐어요. 현식이형 말이 무슨 뜻인지. 20년 지나서야 깨달아가고 있어요.”
 
지난 13일 서울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언제나 그대 내곁에’, ‘우리 처음 만난 날’(1988년 ‘김현식 Vol. 4’ 수록) 가사를 읊조리며 김종진은 “‘현식이형 만나러 가네, 태관이랑 놀러가네’ 하는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 했다. 고 유재하(1962~1987)가 참여했던 ‘가리워진 길’(‘김현식 Vol. 3’ 수록), 봄여름가을겨울의 초기작에 수록된 대표곡들 ‘영원에 대하여’,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도 들려준다. “한 때 우리 곁에 있었지만 떠나버린 사람들”에 대한 헌사다. 
 
지난 2018년 12월27일 세상을 떠난 고 전태관은 그에게 평생의 음악 동료이자 친구였다. 198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난 둘은 이후 ‘김수철과 작은거인’으로 잠시 활동하다, 1986년 고 김현식이 결성한 밴드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로 정식 데뷔했다. 발라드 일색이던 시절 한국형 블루스, 록, 퓨전 재즈를 개척하며 30년 동안 함께 음악 여정을 걸어왔다. 
 
“연주자로서 태관은 여러분들이 더 잘 기억하실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드러머죠. 인간적으로는 배려심과 이해심이 정말 강했죠. 소리가 큰 드럼의 특성을 고려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려 하지 않았어요. 저는 무언가 하나에 골똘히 빠지면 헤어나질 못하는데 태관은 늘 멀리 볼 줄 알았어요.”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위)과 고 전태관(아래). 브라보마이라이프 영상 화면. 사진/봄여름가을겨울(SSAW) 공식 유튜브
 
대답을 듣는 내내 2019년 공연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마지막 30차 때의 기억이 스쳐갔다. 전태관 없이 치러진 이들의 데뷔 30주년 공연. 중반부에 이를 무렵 “태관과 마지막으로 작업한 곡” ‘고장난 시계’ 초반부는 전주만이 흘렀다. 울음을 먹다시피 한 김종진의 보컬 음은 중단됐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전태관을 하늘로 보낸 지 올해로 세 번째 여름이다. 김종진은 그새 스페인 순례길도 다녀왔고 봄빛 프로젝트(봄여름가을겨울, 빛과소금의 재회 앨범 ‘Re:union(동창회)’), 첫 스튜디오 라이브 앨범을 내왔다. “그간 태관은 하늘 위에서 프린스와 연주했을 거고 마이클 잭슨과 놀았을 겁니다음악 고수들과 있다가 날개를 달고 잠시 내려오겠죠. 공연 땐 ‘종진아, 너 그거 밖에 못해?’ 하며 너털웃음을 지을 지도요.”
 
봄여름가을겨울은 코로나 시대 꾸준히 비대면 공연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 올해 ‘멈추지마 인디뮤직페스티벌’로 관객들을 만나왔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오늘날 무대의 확장성에서 그는 새 가능성을 본다.
 
“우리가 찍는 공연 영상이 이제는 전 세계 방구석으로 가잖아요. 한 공간의 조명, 음향에만 신경 쓰던 과거와는 달라졌죠. 점점 더 중요해지는 건 공연의 메시지에요. 기술이 결합하더라도 우리의 소중한 기억과 정서를 환기시켜준다면 그보다 좋은 공연은 없을 겁니다. 사실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은 이런 생각 잘 못해요. 이번 공연 준비하는 내내 현식이형, 태관이 제 귀에 대고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으니 이렇게 가보자’ 해주는 것 같았어요.”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의 기타는 1962년산 펜더 레릭이다. 지미 핸드릭스와 비슷한 시대 활동하던 아일랜드 출신 세계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리 갤러거가 쓰던 1962년산과 비슷한 모델. 이 기타 소리의 특징을 묻자 그는 "배음 등 미세한 지점이 다른 기타에서 얻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다. 0.1초 기록을 당겨주는 우사인볼트의 신발 같은 것"이라 했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이름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은 계속해 순환할까. “세상에 소멸하지 않는 것은 없다”면서도 그는 “대기업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어지듯 봄여름가을겨울도 앞으로 계속 돼야한다는 신념은 갖고 있다”고 했다. 과거엔 실제로 후배들에게 봄여름가을겨울이란 팀명을 물려주는 것도 고민한 적이 있다. 당분간 1인 체제로 솔로활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코로나 시대, 100분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에선 이적, 거미, 이무진 등 후배 가수들의 헌정 무대도 준비돼 있다. 마지막 참석자 전원은 함께 ‘봄여름가을겨울’(1980년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수록)을 부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오늘날 우리 음악가들의 유일한 노력 하나가 필요하다면 그건 교류입니다. 코로나 시대 자주 모이진 못하더라도 단절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식이형이 살아계셨다면 유튜브를 통해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너네들, 너무 그렇게 자기 틀 안에 갇혀 음악 하지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좀 해봐, 그러라고 달란트가 주어진 것 아니겠니.’”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을 특정 공간에 빗대달라는 요청에 그는 SF소설 도입부처럼 말했다.
 
“여러분은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타임머신에 앉으셨습니다. 잠시 후 타임머신이 출발합니다. 안전벨트 매주세요.”
 
지난 13일 서울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이번 밴드유랑은 코로나19로 대중음악 공연장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대중음악신과 공연 현장을 조명하고자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특별 기획한 인터뷰입니다. 지니뮤직 매거진 내 ‘경기뮤직’ 카테고리에 연재되는 코너에서는 재편집한 글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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