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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서 150년전 대형 화장실 유적 나왔다
길이 10.4m·폭 1.4m 석조 구덩이…경복궁 동궁 남쪽서 발굴
현대 정화조 방식과 유사…하급관리 등 하루 150명 사용 추정
2021-07-08 14:46:40 2021-07-08 14:46:49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경복궁 동궁 남쪽에서 현대 정화조 방식으로 하루 150여명의 분뇨를 처리할 수 있는 대형 화장실 유구가 나왔다. 동시에 10명까지 이용한 화장실로 추정되며,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8일 경복궁 흥복전에서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에서 발굴된 화장실 시설을 공개했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되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궁 권역에서 발굴된 150년 전(추정) 선진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 유구(遺構) 현장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가운데 직사각형 석조 공간이 화장실 유구, 왼쪽으로 난 두갈래 물길은 출수구, 아래는 입수구다. 사진/뉴시스
 
발굴된 유구가 화장실이었다는 사실은 '경복궁배치도'와 '궁궐지'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 화장실은 최대 75.5칸으로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곳에 밀집되어 있었다.특히, 경회루 남쪽에 있는 궐내 중앙관청인 궐내각사와 동궁 권역을 비롯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부지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한다.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다.
 
또 발굴 유구 토양에서 많은 기생충 알과 함께 오이, 가지, 들깨 등 채소의 씨앗도 검출됐다.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를 고려하면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년간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궁 권역에서 발굴된 150년 전(추정) 선진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 유구(遺構)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구에서는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 2개가 확인됐다. 북쪽에 있는 입수구 높이는 출수구보다 낮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되어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 현대식 정화조는 미생물을 이용해 분뇨를 생물학적으로 처리하는 구조물로 부패조, 침전조, 여과조로 구성돼 있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 규모는 4∼5칸인데,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화시설은 우리나라 백제 때 왕궁 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분변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다음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이다.
 
이장훈 광운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유구에 대해 "현재 정화 방식이 지금 발굴된 유구 형태와 유사하다"며 "물을 이용해서 정화 과정 시스템을 활용했다는 것은 굉장히 독특한 사례로 외국에도 거의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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