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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장필순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사람, 사랑, 소랑”
비 냄새로 그린 앰비언트, 11번째 앨범 ‘페트리코’
16년 간 제주생활서 영감…‘거장’ 조동익 프로듀싱
2021-06-24 00:00:00 2021-06-24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 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장필순.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김도태
 
반짝이는 전자음은 흙먼지를 일으키고, 촉촉한 비를 뿌리며, 공명의 숲을 조성한다. 얇은 숨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깔리면 음악은 거대 화폭으로 청자를 데려간다. 
 
아주 느리게, 느리게, 흑백, 꿈과 현실의 투명한 경계처럼..
 
‘저기 안개오름 그 높고도 깊은 곳/오래 전 꿈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이 11번째 앨범 ‘페트리코(petrichor)’로 돌아왔다. 
 
올해 1월 ‘장필순 reminds 조동진’ 이후 5개월 만의 새 음반이다. 신곡을 수록한 앨범으로는 2018년 ‘soony eight : 소길 花’ 이후 3년 만이다.
 
흔히 정규 앨범에 숫자를 붙이곤 하나, 장필순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최근 리워크 앨범 등에 이은 이번 앨범은 통산 11집이 된다.
 
23일 서면으로 만난 장필순은 “(제주) 애월에서 16년의 시간은 과거 도시생활의 힘들었던 부분을 놓아주는 과정이 됐다. 이 곳에서 느낀 숲과 자연의 기운을 음악으로 담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앨범명 ‘페트리코’는 비가 오기 전이나 비가 온 후 특유의 향을 일컫는다.
 
“상쾌한 듯 흙냄새 같기도 한…. 이 비의 냄새를 페트리코라 부르죠. 제주는 특히 눈보다는 비가 많고 화산석이 많아 비가 어지간히 와도 조금 지나면 빗물이 스르르 땅에 스며들고 말아요. 특히 봄 고사리 장마 때면 새벽 비 오기 전 안개와 그 냄새가 제주의 멋진 풍경을 만들곤 합니다.”
 
앨범은 첫 곡부터 ‘새벽녘, 짙은 안개로 뒤덮인 오름’(‘안개오름’)의 공감각적 잔상을 드리운다. 자연의 소리를 닮은 가상악기(VST) 음들은 점묘화처럼 신작의 화폭을 그려간다. 음악과 삶의 동지이자 장필순 7, 8집의 프로듀스, 믹스, 마스터링을 맡아온 조동익이 이번에도 ‘조타수’ 역할을 맡았다. 
 
장필순.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김도태
 
다만 포크 중심이던 전작으로부터 신작은 탈피한다. 뿌옇고 때론 청량하게 채색된 앰비언트(환경음악) 사이로 장필순은 숲을 가르는 바람처럼 노래한다. 
 
“굳이 장르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픈 노래에 가장 어울리는, 그리고 지금 제일 즐겁게 깊이 있게 해 나갈 수 있는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라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몽환적인 사운드를 구사해보려고 했습니다. 그 몽환적임이 아주 묘하게 숲과 비와 달과 어울리더군요.”
 
이번 앨범 역시 장필순과 조동익은 노란 대문 집과 무지개 스튜디오(조동익 집·작업실의 별칭)라는 공간에서 1년 간 제작했다.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며 20만원 대부터 몇백만원까지 하는 소리들을 고르며 임했다. 이를 테면, 타이틀곡 ‘페트리코’의 비가 주는 감촉을 상상하며 피아노와 실로폰을 섞은 듯 통통 튀는 청명한 소리를 찾아가는 식이다.
 
“소리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개의 소리..또 하나의 소리를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변화시켜보기도 하고... 우리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그 시간들이 즐겁기도 하지만 힘든 시간이기도 합니다. 소리라고 하지만 그 소리들이 모여 노래가 되니까요..”
 
장필순.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김도태
 
땅을 표상하는 자연의 촉감, 페트리코로부터 앨범은 점차 바다를 비우고 채우는 달(‘달에서 만나’)로,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돌아보는 관조자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사랑과 미움, 우울과 기쁨, 삶과 죽음, 우리가 하루하루 겪는 일상의 감정과 순환의 연속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수록곡 중 4번 트랙 ‘개똥이’는 지난해 말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들의 반려견 이름이다. 누군가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앨범 전체의 의미 안에서 곱씹게 된다. 이야기는 새로운 싹이 나고 꽃이 되지만 결국 시들고 죽고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7번 트랙 ‘숲의 레퀴엠’으로 이어진다.
 
“저희에겐 천사 같은 아이였습니다. 저의 모난 마음을 많이 둥글려준 친구예요. 저의 모든 반려견들이 슬프지만 따뜻한 이별을 가르쳐준 아이들입니다. 처음엔 너무 힘들다가 이제 조금씩 어떻게 이별하는가, 어떻게 살다 떠나는가를 조금 더 생각해가고 있어요.”
 
자연 여행을 돌고 마지막 즈음 울리는 ‘다시, 집’과 ‘불꽃놀이’. 간결한 피아노 타건 만으로 고요하게 읊듯 곡들은 차분한 마무리를 향해간다. 전자음이 오로라처럼 일렁이는 마지막 곡 ‘소랑’이 모든 것을 하나로 귀결시킨다. 소랑은 제주어로 표현한 사랑의 다른 말. 
 
“지금 우리들의 상황이 어쩌면 우리를 더 극명하게 알려 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사람. 사랑.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지금이죠. 이 힘든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전 희망을 기대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럴 거라 믿고요. 말세다, 말세다 하지만 그 말세라는 의미는 세상의 어두운 나쁜 것들의 사라짐이었음 하네요.^^”
 
장필순.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김도태
 
장필순은 이번 앨범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저도 너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은 아니더라도 숲과 그대와 나...잊고 살아왔던 내곁의 존재들에 대한 사랑....그리고 감사”라고 했다.
 
4번 트랙 ‘개똥이’를 제외하고 앨범 노랫말은 싱어송라이터 조동희가 맡았다. 조동익의 친동생이자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작사가, 장필순의 시누이기도 하다.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감성이 슬프고 아름다운 친구에요. 우울하고 무거운 슬픔이 아닌 맑고 잔잔하고 강물 같은 그런... 동희씨는 이번 작업에서 어른이 돼 버린 우리들 마음을 그렸어요. 현실 속 자연에서 상상 동화를 만들었죠. 내가 나무가 되고 달에 가고...영혼이 되는... 작업하는 내내 좋았습니다.”
 
팬데믹으로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앨범과 어울리는 인터뷰를 대면으로 했다면 어디가 좋았을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앨범과 어울리는 인터뷰장소라... 얼마전 오랜만에 유일하게 아주 가끔 가보는 작은 오름이 있는데 그곳에 가보니 온통 푸르더군요. 그런 곳에서 인터뷰 좋겠죠? 힐링~~~ 앨범은 특정여행지에 빗대기보단, 각각 청자들이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 됐으면 합니다. ^^”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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