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일본에게 무시 당하는 우리 국민…정부는 어디 있죠?"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봉사하는 장덕환 목사
장 목사 부친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법관 독립' 알지만 피해자에게 더 귀기울여야"
"중국 피해자들, 소액이나마 일본에 배상 받아내"
"피해자들, 남은 시간 얼마 없어…국가가 의지 보여야"
입력 : 2021-06-24 06:00:00 수정 : 2021-06-24 09:29:21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한 김양호 판사 탄핵 요구가 거세다. 김 판사 탄핵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3일 오전 32만5000명을 넘겼다. 사건 당사자인 '대일 민간 청구권 소송단'도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김 판사 탄핵운동을 선언했다.
 
소송단을 이끄는 장덕환 대표는 "탄핵을 계속 주장하다보면 법조인들도 뭔가 깨닫는 점이 있을 것"이라며 "김 판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상급심 재판부도 우리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때 법학도였던 그가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을 알면서도 탄핵을 외치는 이유다. 지난 30년을 목사로 살아온 장 대표는 어째서 투사의 길을 걷게 됐는지 22일 금천구 사무실을 찾아가 물었다.
 
"법리 떠난 예단에 좌절"
 
10평 남짓한 사무실 벽면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노무자 소송 준비서류'로 가득찼다. 피해자 본인이나 유족이 증명서류와 함께 육하원칙으로 피해사실을 적은 기초자료다.  그런데 이건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으로 조선과 중국, 러시아 등에 동원한 조선인은 일본군 위안부를 합쳐 780만명이 넘는다.
 
지난 6년간 장 대표가 모은 원고는 1004명이다. 이들이 참여한 사건 5개 중 하나가 최근 각하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 7일 송모씨 등 84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 등 16개 기업을 상대로 낸 86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송을 통한 개인 청구권 행사는 제한됐고, 일본 기업의 손해 배상을 인정하면 국제법을 어기게 된다는 이유였다.
 
특히 법리를 떠난 예단이 피해자를 좌절케 했다. 장 대표는 "지법 판사가 국방부도 아니면서 안보를 말하고, 외교부도 아니면서 외교를 얘기하고, 일본을 서방세계 대표국가라고 말하고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보지도 않고 패소할 것이라고 했다"며 "그래서 국격이 떨어질 것이고 일본 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하는데, 판사들이 한번쯤 돌아봐야 할 시기 아니냐"고 혀를 찼다.
 
장 대표 이름은 원고 명단에 없다. 다른 사건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강제징용 피해자의 아들이다. 장 대표는 "아버지가 20대 초반이던 1943년 함경북도에 있는 탄광에서 동네 친구와 함께 집이 있는 전라도까지 도망치셨다"며 "다리와 허리 통증을 호소하시다가 65세 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에 남은 자료가 없어 소송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장덕환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 대표가 22일 금천구 사무실에서 '노무자 소송 준비 서류' 뭉치를 들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목회 멈추고 6년째 소송 봉사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신학 대학원으로 가면서 목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30년 목회 생활을 하던 2014년 가을, 돈 빌려달라는 친구의 부탁이 강제징용 소송에 뛰어든 계기였다. "20년지기 친구가 찾아와 거액을 빌려달라 해서 계속 거절했어요. 그런데 강제징용 소송에 돈이 들어간다고 해서 두말 않고 5000만원을 줬습니다. 열흘 뒤에 이 친구가 다시 찾아와 일을 같이 하자더군요."
 
이후 장 대표는 광화문 골방 사무실에서 전국에 흩어진 관련 단체를 규합했다. 이듬해 봄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를 세우고 소송단도 꾸렸다.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인 다른 교회 장로가 교회 내 무료 법률상담 봉사를 하던 강길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강 변호사는 이번 각하 사건 소송 대리인이다.
 
이 단체는 일반 회원 회비가 없다. 소송 비용도 원고들이 부담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장 대표가 지금껏 모은 돈과 일부 소득, 주위에서 빌린 돈으로 충당한다. 장 대표는 "소송에 1인당 50만원 정도 들지만 전액 유족이 아닌 연합회에서 부담하고 있다"며 "국가에서 일원 한 장 받은 적도 없다. 기부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사무실은 본부장 47명과 지부장 470명, 지회장 460명 가운데 일부가 낸 회비로 운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고들은 사라지고 있다.  장 대표는 2015년부터 피해자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100여명을 촬영했다고 한다. 민간이 스스로 자료를 모아 소송에 나서다 보니 정부에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는 "소송을 준비하다 보니 69개 회사가 걸린다. 바로 정부에서 전화가 오더라. 자료를 줄 수 없느냐고. 이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가 말한 소송은 이 단체에서 최대 규모 사건이다. 2015년 피해자와 유족 667명이 요코하마고무 주식회사 등 69곳에 낸 소송인데, 아직 첫 변론기일도 잡히지 않았다.
 
장덕환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 대표. 사진/이범종 기자
 
하나둘 세상 떠나는 피해자들
 
시간은 피고 편이다. 장 대표가 전화기를 들 때마다 원고의 사망 소식이 들린다. 그는 "이번 각하 사건 항소 문제로 15일부터 전화를 걸었는데 피해자 두 분, 유족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며 "앞으로 35명과 통화해야 하는데 (사망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피해자 나이는 90대 중반, 유족인 2세는 70대를 넘기고 있다.
 
정부의 자세도 아쉽다고 한다. 장 대표는 일본 기업이 중국인 피해자에게 배상한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태도를 꼽았다. 그는 "중국은 피해자 숫자도 금액도 적지만, 뒤에 정부가 있었다"며 "우리 뒤에 정부가 있었다면 일본이 이렇게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눈물을 돌아볼 때가 됐다"며 "이제는 뭔가 돌파구를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태로는 한일관계가 더 악화된다"고 단언했다.
 
수백명이 시간과 돈을 써야 하는 현실을 집단소송제로 바꿔야 한다는 말도 했다. 장 대표는 "한시법으로라도 집단소송제를 만들어 몇 사람만 소송해도 되게 해야 한다"고 빠른 입법을 촉구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분야 제한 없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해 11월까지 의견을 모은다.
 
장 대표는 이번 소송이 단순 손해배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번 우리 소송은 보상도 위로금도 아닌 우리 선친들이 가서 못 받아온 '미불 노임 청구 소송'"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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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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