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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구금 손배소 청구 시점, 재심무죄 확정 때부터"
2021-05-18 12:00:00 2021-05-18 12:00:0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전두환 정권 당시 불법구금된 아내의 손해배상 청구시효는 남편의 재심 무죄 확정 시점부터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불법구금 피해자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 본인으로서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B씨는 지난 1987년 7월 5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수사관에게영장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보안사에 강제연행됐다. 그는 변호인과 가족 등 외부 연락이 차단된 채 같은달 13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불법 구금됐다.
 
수사관들은 B씨가 대남공작조직으로부터 간첩 교육을 받은 뒤 북한 지령에 따라 국내에 침투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조사해 자백 진술을 받아냈다.
 
B씨 아내 A씨는 남편이 잡혀간 다음날 영장 없이 강제 연행돼 같은달 11일까지 구금 조사 받았다. 관련자로 지목된 C씨도 같은날 강제연행돼 그달 22일까지 구금 조사 받았다.
 
B씨는 그해 8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5월 항소심은 징역 8년에 자격정지 8년을 선고했다. 법원의 유죄 판결은 1988년 8월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B씨는 1995년 8월 만기출소했다.
 
그는 2014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2017년 11월 무죄 선고 받아 12월 확정됐다. 사건 당시 수사기관이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을 어긴 점, 최장 구속기간이 30일이었음에도 B씨가 55일간 구금된 점, 수사관들이 폭행과 고문 등으로 B씨 자백을 받아낸 사실, A씨와 C씨에 대한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가 B씨 유죄를 뒷받침할 증거 확보 목적이었던 점 등이 인정됐다.
 
이후 B씨와 가족, C씨 등이 2018년 국가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은 B씨에게 8억원, A씨에게 2억원, 자녀 셋에게 각 1억원, C씨에게 3000만원 지급을 선고했다.
 
정부는 B씨 등의 손해배상청구권 시효가 출소일인 1995년으로부터 5년 지난 시점에 끝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적용되는 부분은 위헌이라는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이 근거였다.
 
또 B씨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된 2017년 12월까지는 A씨와 C씨가 독자적인 손해배상청구권 행사를 할 수 없었다고 봤다.
 
위자료에 대한 지연손해금 산정 기준 날짜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따랐다.
 
반면 2심은 C씨에 대한 손해배상을 취소하고, B씨와 A씨 손해배상액을 줄였다.  재판부는 A씨와 C씨 피해는 B씨 피해와 별개이고, 두 사람은 유죄 확정판결을 받지 않아 B씨 재심 무죄 판결까지 손해배상 청구에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B씨가 이미 형사보상금 7억6400여만원을 받은 점도 손해배상액을 줄인 근거였다. A씨의 경우, 피해자 본인으로서 구하는 위자료를 제외시켰다.
 
대법원은 B씨 상고는 기각하고, A씨와 C씨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해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에 대한 불법적인 수사 목적의 동일성, 원고들 사이의 인적 연관성 및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B씨에 대한 유죄확정판결이 취소된 이후에야 원고들이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봄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또 "원고 B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형사 재심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3년 이내에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이상 원고들의 청구에 관하여 단기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A씨와 C씨에 대해 유죄확정판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심을 통해 B씨에 대한 유죄확정판결을 취소하는 법원의 공권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원고 A, C씨가 수사 당시의 불법구금이나 가혹행위를 주장하면서 독자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대법원 청사. 사진/대법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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