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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유니콘기업 외면받는 코스닥 시장
2021-04-15 06:00:00 2021-04-15 06:00:00
증권부 우연수 기자
쿠팡이 한국 증시로 왔다면 코스피와 코스닥 중 어디에 상장했을까. 미국 증시 직상장을 택한 국내 유니콘기업 쿠팡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떠오르는 의문이다.
 
만년 적자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붙지만, 전자상거래(이커머스) 부문의 성장성을 입증한 쿠팡의 정체성은 코스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코스닥 시장에는 기술특례상장이나 성장성 추천 특례상장, 이익미실현 특례상장 등 성장기업의 눈높이를 맞춘 여러 특례제도가 있다.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유가증권시장과 달리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다.
 
그런 와중에 한국거래소가 최근 상장 규정을 개정해, 코스피 시장 상장 문턱을 낮췄다. 시가총액이 1조원만 넘는다면 별다른 재무적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상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시총 단독 요건'이 특징적이다. 해외 증시로 발걸음을 돌리는 우리나라 기업을 잡기 위한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코스피 상장 문턱을 낮추면서 코스닥의 정체성이 더욱 모호해졌다. 코스피와 구분되는 코스닥은 당장 가시적인 실적이 탄탄하지 않더라도 기술력과 잠재력을 인정받는 기업들을 위한 '등용문'으로 통한다. 그런데 코스피 진입 문턱이 낮아지면서 비상장 시장에서 시총 규모를 갖춘 벤처기업이라면 코스닥보다 코스피를 노려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커머스뿐만 아니라 게임·콘텐츠 업체 등 다양한 분야의 유니콘들 역시 코스닥 시장 대신 코스피 시장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시가총액이 조 단위에 달하는 티몬(2조원대)과 마켓컬리(1조원대), 야놀자(6조원대) 등이 줄줄이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유니콘 기업의 상장 활성화를 천명한 바 있다. 다만 코스닥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거래소 내부에서도 코스닥 상장 매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검토 중이지만, 기존 특례상장제도를 넘어서는 방안은 구체적인 방향이 잡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자본시장 활성화 대책은 공매도 금지조치 연장 등 지수를 유지하고,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급급한 측면이 있다. 최근 코스닥 지수는 형님 격인 코스피보다 더 큰 상승폭을 보이며 1000선 고지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른바 '천스닥'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공룡 벤처 기업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쏟아진 기업공개(IPO) 속에서도 중견급 코스닥 공모기업은 카카오게임즈뿐이었다.
 
코스닥 활성화는 지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벤처기업의 성장을 밑바탕으로 해야 한다. 성장성 있는 기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코스닥 정체성을 살리는 규제 개선을 이뤄내는 것이 시장 활성화를 위한 첫 단추가 아닐까.
 
우연수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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