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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56년 전, 주앙 지우베르투 만난 스탄 게츠처럼
56주년 ‘Getz/Gilberto’ 국내 최초 앨범 구성 그대로 실연
"포르투칼어는 제 3의 악기…게츠 따뜻한 톤 극대화할 것"
재즈 보컬리스트 허성-색소포니스트 이용석 인터뷰
2020-10-09 00:00:00 2020-10-09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어떤 이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1965년 재즈음반 최초로 그래미어워드 ‘올해의 앨범’에 뽑힌 작품, 지난 56년 간 세계 재즈 차트 상위권을 지킨 스테디셀러이자 보사노바 붐을 일으킨 그 앨범.
 
미국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 브라질 기타리스트 주앙 지우베르투와 보컬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 작곡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협연작 ‘Getz/Gilberto(1963년 녹음, 1964년 발매)’는 오늘날까지도 보사노바(bossa nova)를 규정하는 역사상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춤추기 좋은 재즈(스윙)와 브라질 고유 음악인 삼바를 결합한 이 음반은 당대 세계인들이 브라질 음악에 매혹된 계기가 됐고, 영미권에만 익숙하던 음악가들의 귀와 눈을 남미로 확장시켰으며, 대중음악장르 간 광범위한 통섭을 이끌어냈다.
 
자갈 구르듯 조곤조곤한 언어와 쉬운 듯 예상을 엎는 선율, 복잡한 화성의 이 ‘혼종 교배’는 반세기가 넘어도 그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하다. 음반은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연주자라면 마일스 데이비스나 찰리 파커처럼 꼭 한 번 거쳐야 할 필수 고전으로 꼽힌다. 대표 수록곡 ‘The girl From Ipanema’, ‘Desafinado’는 세계인들에 ‘보사노바 DNA’를 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11일 3시와 6시 서울 종로구 JCC 아트센터에서는 이 전설의 음반 전곡을 재해석하는 헌정 공연이 두 차례에 걸쳐 열린다. 공연기획사 ‘플러스히치’의 ‘재즈 명반을 만나다’ 시리즈 일환. 국내 최초로 테너 색소폰,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에 남여 보컬까지 참여시켜 ‘음반 구성 그대로의 라이브’를 펼친다. 
 
재즈 보컬리스트 허성씨(왼쪽)와 색소포니스트 이용석씨(오른쪽). 사진/플러스히치
 
7일 서울 합정에서 공연에 참여하는 재즈보컬리스트 허성(40)과 색소포니스트 이용석(40)을 만났다. 이들은 “보사노바의 스탠다드를 제시한 이 앨범을 통째로 실연한다는 것은 연주자로서도 뜻 깊은 일”이라며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되 우리만의 차별화된 개성을 끌어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공연에서 허성은 주앙 지우베르투의 노래를, 이용석은 스탄 게츠의 테너 색소폰을 담당한다. 
 
정통 재즈 뮤지션인 두 사람은 요즘 보사노바 본연의 맛을 우려내는 데 열중이다. 비밥을 좇다 하루아침 주앙을 맞닥뜨린 게츠의 심정이라도 된 듯. 복잡하고 빠른 비밥의 기술적인 부분을 유지하되, 선율적 아름다움이 강조된 보사노바 특유의 서정이 앨범을 ‘복기’하는 이들의 심박수를 연일 높이고 있다.
 
“스탄 게츠 특유의 따뜻한 색소폰 톤을 더 깊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테크니컬함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자연스런 즉흥연주를 할 수 있었구나, 매일 되뇌고 있습니다.”(이용석) 
 
이씨는 서울 솔리스트 재즈오케스트라 단원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재즈뮤지션들과의 공연, 음반 작업을 15년 가까이 해온 베테랑 뮤지션. 주로 포스트 밥과 모던재즈 자작곡들을 연주해온 만큼 정통재즈(특히 비밥)와 보사노바 간 접점을 탐구한 게츠의 삶이 낯설지 않다. 
 
“게츠는 비밥의 빠르고 현란한 테크닉을 유니하면서도 강한 선율 연주를 했죠. 그것이 보사노바에서 큰 강점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거장들의 자취를 밟듯 최대한 원곡에 충실한 테너 색소폰 연주를 선보일 작정이다. 다만 명곡 ‘The girl From Ipanema’, ‘Desafinado’ 솔로 파트에선 특유의 연주 개성을 뽐낼 화성적 악곡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음반의 복잡하되 아름다운 선율을 내 식으로 어떻게 극대화하느냐가 최대의 관건”이라며 “완벽히 똑같이 맞출 수는 없겠지만 게츠의 따뜻한 톤만은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허성씨(왼쪽)와 색소포니스트 이용석씨(오른쪽). 사진/플러스히치
 
주앙의 노래 역을 맡는 허씨는 포르투칼어의 미학에 푹 빠져 있다. 언어 특유의 리듬감과 조곤조곤함은 실바람처럼 살랑대는 주앙의 보컬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에너지가 외부로 분출되는 삼바와 달리 보사노바 특유의 사색적이고 내부로 향하는 울림의 근원지 같은 것. 혀가 구르는 모양이나 입술이 부딪히는 이 언어 특유의 소리를 그는 “‘제3의 악기’ 같다”고 했다. 
 
공연에서는 여성 보컬과 주고받는 파트를 바꾸는 식으로 음반과 차이를 살짝 둔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보컬리스트 마리아 킴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피아노와 여성보컬(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을 맡을 예정. 기타리스트 옥진우, 베이시스트 김대호, 드러머 김건영도 가세해 원곡의 깊은 맛을 우려낸다.
 
“거장의 음악을 구현하는 공연이지만 결국 우리 색깔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하기 보다는 모나지 않는 선에서 조정할 생각입니다.” 
 
허씨는 재즈 보컬리스트지만 전통 재즈 외에도 음악적 폭이 넓다. R&B, 라틴 자작곡 등도 쓰고 노래하며 케이팝 아티스트 보컬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보컬리스트 마리아 킴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피아노와 여성보컬(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을 맡는다. 사진/플러스히치
 
이번 공연에선 음반의 또 다른 공로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명곡 ‘Triste’, ‘no more blues(Chega De saudade)’를 브라질 전통 음악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순서도 마련된다.  
 
“조빔의 편곡 버전에선 에너지틱한 삼바 그루브도 느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브라질 음악의 다른 면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허성)
 
당초 8월 말 여름 예정이던 공연은 코로나19 재확산 탓에 일자를 가을로 조정해야 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뜨거움 속에서 연주하려던 꿈이 좌절돼 아쉽다"는 이들에 물었다. 이틀 뒤 관람객들이 어떤 여행지처럼 공연을 느끼면 좋을지.
 
“뜨거운 여름은 아니어도 해변과 경관이 좋은 이미지가 상상됩니다.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그런 공연을 준비해볼게요.”(이용석)
 
“저는 포르투갈의 호카곳이 됐으면 해요. 유라시아 대륙 최서단이자 땅 끝이라는 그곳엔 절벽 끝 거대한 바다가 펼쳐진다고... 어쩌면 지금 이 살랑이는 가을 향과 비슷할 것 같네요.”(허성)
 
주앙 지우베르투. 사진/위키피디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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