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이사회 장악, 정권 외풍에도 취약…정책금융 지배구조 점입가경
'사외이사 강화' 민간기업과 대조적 행보
의무사항 아니라며 노동이사 모르쇠
2024-05-14 06:00:00 2024-05-14 07:51:59
[뉴스토마토 이종용·김한결 기자]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기업 경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정책금융기관들은 특히 'G'에 해당하는 지배구조에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데다 금융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보다는 친정부 낙하산 인사들이 이사회 곳곳에 포진하면서 이사회 독립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 겸임…견제 취약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 금융지원과 무역금융, 수출입 금융, 주택금융 등 주요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11개 기관(기업은행·산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투자·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한국주택금융공사) 가운데 현재 기관장 공석 상태인 한국벤처투자를 제외한 10개 기관의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경우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지만 선임 비상임이사를 뒀습니다. 선임 사외이사는 사외이사로 구성되는 '사외이사회'를 단독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닙니다.
 
ESG 경영을 공공기관이 선도하기는커녕 민간의 변화 추세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인데요.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최근 민간 기업들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추세입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이사회 의장 역할이 중요하며 동시에 독립성 확보 또한 이뤄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고 2020년부터 사외이사가 의장직을 수행 중입니다. SK, 포스코홀딩스 등도 이사회 의장에 사외이사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 3월엔 롯데그룹도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과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금융업계에서도 은행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은행연합회는 '은행권 사외이사 제도 모범규준'을 의결해 발표했습니다. 해당 제도는 은행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지 않고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도록 권장합니다. 동시에 '선임 사외이사'를 두면 CEO가 의장을 겸직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도 마련됐습니다.
 
기관장과 이사회 의장의 겸직이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는 그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비상임이사에 대한 인사권입니다. 절차상으로는 기관장이 비상임이사를 추천하면 정부 부처장이 최종 임면하는 구조입니다. 기관장은 이사회 산하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비상임이사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는 민간기업의 사외이사에 해당합니다.
 
구체적으로 공공은행들을 살펴 보면, 기업은행은 김성태 은행장이, 기술보증기금도 김종호 이사장이 운영위원장입니다. 산업은행은 운영위원회 대신 임원후보 추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위원회 구성은 개최를 할 때마다 이사회 의결로 선정합니다. 즉, 강석훈 산은 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만큼 임추위원 선정에 개입하는 구조입니다.
 
정책금융기관들에서 이사회가 완벽하게 분리되고 있지 못한 점도 지적할 만한데요.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발표하면서 이사회 산하에 이사회사무국을 두도록 권고한 바 있습니다. 경영진 견제 기능을 하는 사외이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로, 사외이사를 지원하는 별도의 조직이 이사회에 필요하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데요. 하지만 금융지주사들이 당국 권고에 맞춰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책금융기관들은 기관 내 특정 부서에서 이사회 운영을 관리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의 경우 경영진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은행 내 전략기획부가 해당 업무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전문성 없는 '낙하산 비상임이사'
 
특히 전문성 없는 인사가 이사회 곳곳에 포진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친정부·여당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이사회에 침투했다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지난해 3월 선임된 기업은행의 이근경, 전현배 비상임이사는 친정부 인사입니다. 이근경 이사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을 한 인물이며, 전 이사는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위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산업은행의 이석환 비상임이사는 사법연수원 21기를 거친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정부 초대 금감원장 하마평에도 오른 바 있습니다. 김희락·유선기 이사의 경우 모두 여당 정치권에서 활약한 인물입니다. 김 이사는 국민의힘 전신인 민주정의당 공채로 정치권에 입문해 노태우·김영삼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했고 이명박정부 기획수석실, 정무실장을 거쳐 한국증권금융 감사를 지냈습니다. 유 이사도 이명박 전 대통령 후보의 대선 외곽조직 선진국연대 사무총장, 이수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지난 2008년엔 국민은행 경영자문을 맡은 바 있지만 당시 정권 낙하산 논란에 휩쌓였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의 권택기(윤석열 캠프 총괄특보단 정무특보출신)·최유미(대통령실 법률비서관실 행정관 출신) 비상임이사,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최홍재 비상임이사(윤석열 캠프 중앙선대위 정책총괄본부 정책메시지 실장 출신) 등도 현 친정부·여당 인사로 분류되고 심오택 비상임이사(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경우 전문성에 물음표가 붙고 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친정부 출신 인사가 이사회에 포진하면 국정 과제 수행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정부 입맛에만 맞게 움직일 경우 정책금융기관 고유의 역할에 맞는 전문성이나 공정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 속 노동이사제 도입도 미진한 상황인데요. 지배구조 투명성을 위해 정부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지만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무역보험공사·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노동이사제 도입), 수출입은행(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등을 제외하고는 제도 도입에 소극적입니다. 지난 2022년 1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습니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금융위원회 산하의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공운법상 노동이사제 선임 의무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노사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에 전방위적으로 친정부 인사들이 낙하산처럼 내려오고 있다"며 "올해 산은 노조는 남은 두 번의 노사 교섭에서 노조추천이사제를 계속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지만 정책금융기관들은 제도 도입에 소극적이다. 지난 2019년 3월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앞에서 금융노조가 기업은행 노동자 추천이사 선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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