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뉴스토마토프라임] 정부·교육계 서로 다른 계산서
55년 만의 교육 교부금 개편…'얼마'보단 '어떻게'
입력 : 2026-10-23 오후 5:17:34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강의실 문을 열었다. 낡은 책상과 오래된 실습 장비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까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깨끗한 교실과 최신 기자재가 있었는데, 더 깊이 배우러 온 대학의 풍경은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배움은 한 단계 높아졌지만, 배움을 뒷받침하는 환경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왜 이럴까. 답의 일부는 돈에 있다. 초·중·고교에는 법에 따라 예산이 들어가지만, 대학과 평생교육은 해마다 한정된 재원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세금이 많이 걷히면 교육청에는 예상보다 많은 돈이 들어오고, 쓰지 못한 돈의 일부는 기금에 쌓인다. 반면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실습 한 번시키기 위해 예산을 걱정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남은 돈을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하고, 다른 쪽에서는 필요한 돈을 어디서 구할지 고민한다.
 
정부가 55년 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에 손을 댄다. 오랫동안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분야다.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반길 만한 변화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전교조, 교사노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등 2026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대응 긴급행동 회원들이 2026년 8월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열린 '교육재정 사수를 위한 청와대 앞 1박 2일 긴급행동'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돈이 흐르는 길을 바꾸면, 그 길 끝에 있는 교육도 달라질까. 새로운 물길을 내는 것과 그 물로 무엇을 키울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직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예산당국과 교육계부터 서로 다른 계산서를 내밀고 있다. 정부는 내년 교부금이 올해 본예산보다 7조2000억원 늘어난다고 말한다. 교육감들은 추가경정예산을 기준으로 하면 증가액이 2조4000억원에 불과하다고 맞선다. 여기에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 다른 세입의 감소까지 고려하면 교육 현장에 남는 돈은 더 적다는 주장이다.
 
어느 쪽 숫자가 맞을까. 두 숫자 모두 계산 자체는 틀리지 않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 71조7000억원을, 교육감들은 추경을 반영한 76조4000억원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내년 정부안은 78조9000억원으로 유사하다.
 
본예산은 예산 편성의 출발점이고, 추경은 연중 조정된 재정 규모를 보여준다. 어느 하나만으로 교육청의 살림살이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핵심은 제도를 바꾸지 않았을 때와 바꿨을 때, 교육청에 돌아갈 돈이 얼마나 달라질까. 그 차이가 학교 현장의 필수 교육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부가 재정개혁의 성과를 말하려면, 교육계 역시 재정 부족을 주장하려면 이 질문부터 같은 계산서 위에서 답해야 한다.
 
최근 교육감들은 교부금 외 세입도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교무상교육 관련 국가 지원과 담배소비세분 지방교육세 감소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교부금 증가분으로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교육감들은 학교를 운영하는 데 교직원 월급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2026년 10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종합감사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문제 제기다. 다만 교부금이 늘어난다는 사실과 교육청의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은 다르다. 반대로 기존 세입이 줄어든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지출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교육청별로 실제 쓸 수 있는 돈과 반드시 써야 할 돈을 나란히 놓고 살펴야한다.
 
학생이 줄어도 학교 건물은 유지해야 하고, 교사는 수업해야 한다. 학생이 열 명인 학교라고 스무 명인 학교의 운영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는 없다.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 특수교육, 돌봄처럼 학생 수만으로 필요 예산을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도 있다.
 
정부가 새 교부금 산식에 반영하기로 한 학령인구 변화율은 35%다. 아니 최종적으로 35%에 합의됐다. 교육계의 우려와 인건비 등 고정지출을 고려한 절충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학생 수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세수 증가분에 따라 초·중등교육 재원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지역과 학교마다 재정 여건이 다른데도 과거의 배분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공평할까.
 
기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돈이 남아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세수가 줄어드는 해에 대비하거나 노후 학교시설을 고치기 위해 모아둔 돈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목적과 사용 시기가 불분명한 채 쌓인 돈이 있다면 그 역시 검증해야 한다. 교육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무엇이 낭비이고 무엇이 미래를 위한 준비인지부터 가려내야 한다.
 
 
2025년 3월31일 지방대 한 강의실이 텅 비어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분명하다. 초·중등교육에 집중된 재정의 일부를 영유아교육과 대학, 평생교육으로 돌려 교육 단계 간 불균형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새로 마련하는 미래대응기금의 교육·인재계정이 그 통로다.
 
방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대학의 낡은 실험실을 바꾸고, 산업 현장과 연결된 실습 교육을 늘리며,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이의 교육·돌봄 격차를 줄이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아이도, 대학에서 기술을 배우는 청년도, 직업을 바꾸기 위해 다시 공부하는 중장년도 모두 교육정책의 대상이다.
 
정부는 새 교부금 산식을 만들기 위해 관계 부처 간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학령인구 반영 비율을 놓고 줄다리기했고, 교부금 감소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그러나 정작 재배분한 돈으로 어떤 교육을 만들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호서대의 반도체 패키징 교육을 예로 들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갖추고 실습 중심으로 교육하면 대학과 기업, 학생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충분히 주목할 만한 방향이다.
 
하지만 한 대학의 사례가 전국 대학의 미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어떤 지역의 어떤 산업에 투자할지, 기업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지원받은 대학은 무엇으로 성과를 입증할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장비를 들여놓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그 장비를 다룰 교원과 교육과정, 학생의 진로까지 연결돼야 한다.
 
논쟁의 출발점이 돈이지만 결론까지 돈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처음의 대학 강의실로 돌아가 보자. 낡은 실습 장비는 새것으로 바뀔까. 그 장비로 학생들은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 지역의 작은 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도 필요한 수업과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이의 격차는 실제로 줄어들까.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교육재정 개편을 교육개혁이라 부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0월22일 전북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