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이전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난 3일 정부의 행정·공공기관 이전 계획 발표 직후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금융위원회가 지방 이전 대상에 거론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 같이 밝혔습니다.
정부는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 대검찰청, 경찰청 등을 내년 상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세종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간 세종행이 유력하게 거론됐던 금융위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번 이전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금융위 내부 분위기는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빠졌다는 사실 자체는 반갑지만 세종행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받아들이는 직원은 많지 않습니다.
금융위 한 관계자 "공무원 신분인 만큼 이전이 최종 확정될 경우 이동해야 한다는 점은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당초 예상과 달리 이전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데 대해 의외라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국책은행이나 금융감독원과 달리 중앙부처 공무원이 정부의 이전 방침 자체에 공개적으로 맞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전에 따른 업무 비효율이나 직원들의 생활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정부가 결정하면 따라야 하는 조직입니다.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복도에서 직원들이 지나다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권에서는 금융위가 사실상 지방 이전의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인식이 파다합니다.
금융정책 컨트롤타워인 금융위가 세종으로 옮겨가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물론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까지 서울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가 "금융위 이전이 결정될 경우 국책은행들도 이전에 반대할 명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일단 이번 결정에서 금융위가 언급되지 않은 점은 다행"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책은행 노조들이 지방 이전에 반대하면서 가장 강조해 온 것은 금융산업의 '집적 효과'입니다. 기업과 금융회사, 감독기관, 정책금융기관, 자본시장 인력이 서울에 모여 있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과 정보 교환이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금융노조 역시 금융기관을 물리적으로 흩어놓으면 정책금융 기능과 전문성이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융정책의 정점에 있는 금융위가 먼저 세종으로 내려가면, '금융위도 세종에서 금융정책을 수행하는데 국책은행은 왜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하느냐'는 반대 논리에 직면하게 되는 셈입니다.
금융위를 바라보는 금감원 심정도 착잡합니다. 금감원은 지방 이전 문제뿐 아니라 조직 자체가 다시 쪼개질 가능성까지 신경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정부는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떼어내 별도 금소원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금감원 내부의 반발이 거셌고 감독체계 개편 자체가 중단되면서 금소원 신설 논의도 수면 아래 내려갔습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는 전체 공공기관 수를 줄이고 중복·유사 기능을 통폐합하겠다는 방향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기조만 놓고 보면 별도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만드는 방안은 동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 공공기관 기능 개혁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개발 기능과 주거복지 기능으로 분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초 공공부문 개혁 방향으로 조직 확대보다는 기관 수 감축과 효율화를 강조하면서 금소원 신설 가능성은 잦아드는 듯했다"면서도 "LH 사례를 보면 전체 기관 수를 줄이는 것과 별개로 정책적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하나의 기관을 기능별로 나누는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감원으로서도 지방 이전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금융사 본점 대부분이 서울에 있고 금융위와 한국은행 등 유관기관과 수시로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지방으로 내려갈 경우 검사·감독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게 금감원 측의 논리입니다.
지방 이전 논의가 본격화하면 결국 법을 손봐야 하는데요. 현행 금융위원회 설치법은 금감원의 주된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는 순간 소재지만 바꿀지, 조직과 기능까지 함께 손볼지를 놓고 논의가 다시 불붙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내년 초 공공기관 지정 심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지방 이전, 공공기관 지정, 조직 개편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서로 얽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금융권은 오는 4분기 중 발표되는 지방 이전 대상 기관에서 금융위 이름이 다시 등장하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금융위가 뚫리면 안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예금보험공사 노조와 금융감독원 노조가 지난 8월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예보기구 및 감독기구의 일방적 지방이전 반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