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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프라임] "구름에 달 가듯"
구름에 가린 달빛, '계단식 하락'의 서사
입력 : 2026-05-12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박목월 시인의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는 단순히 길 위의 방랑자를 묘사한 시 구절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내며 상실의 고통을 담담히 견뎌야 했던 민족적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격동의 역사를 살아낸 한국인에게 이 시구는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가까울 것입니다. 외부의 억압과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도 스스로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 했던 ‘내면의 평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제 길을 가려 했던 ‘정신적 자유’의 미학이 배어 있죠. 
 
선비적 기개와 서민적 애환이 교차하는 한국적 정서가 바로 이 짧은 문장 안에 응축돼 있습니다.
 
달은 움직이지만 서두르지 않죠. 구름은 스치되 머물지 않듯이. 그 사이를 지나가는 나그네의 길은 잠시 보이지 않지만 결국 계절이 바뀌고 달빛은 다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세상살이를 논할 때 인생도, 시대도 그렇지 않을까요.
 
 
지난 4월14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2026 창덕궁 달빛기행' 사전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제 역시 그렇습니다. 중동의 먹구름과 고유가, 환율 불안, 금리 압박 속에서도 산업은 움직이고 수출이 숨을 고르며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아야합니다. 경제는 결국 사람들의 의지 위에서 움직이는 이치인 만큼, 불확실성이 깊을수록 방향감각은 더욱 선명해져야할 때입니다.
 
한국 경제의 궤적을 보면, 우리 경제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성장률 계단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1990년대 이전 7%대의 고성장은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구름을 만나며 4%대로 희미해졌고 2008년 금융위기로 또 다시 2%대 하락을 경험했습니다.
 
충격이 올 때마다 잠재성장률이 2%포인트 내외로 하락하는 ‘계단식 하락’의 서사가 외부 충격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슬픈 자화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최근 에너지 운송 불확실성 지수는 과거 평균 대비 약 8.5배 급증하며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에 근접한 상태입니다. 유가 상승은 운송 리스크와 결합돼 국내 석유류 가격 상승 폭을 일반적인 상황보다 30% 이상 더 민감하게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가 주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래에 대한 예고는 더욱 엄중합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6년 하반기 최대 1.9%포인트(기준 시나리오)에서 2.86%포인트(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죠.
 
특히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마저 1%포인트 이상의 상승 압력을 받는 등 고물가 현상은 오는 2027년까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만 높이고 있습니다.
 
경기의 숨통이 트기 위해서는 금리를 내려야 하나 물가와 환율 불안을 고려하면 쉽게 완화 정책으로 돌아설 수도 없습니다.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에 들어가며 대출 문턱을 높이고 기업들이 투자보다 현금 확보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경제 체온이 낮아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한국 경제가 마주한 안개는 짙고 그 끝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데이터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마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화돼 왔다는 것을.
 
 
11일 서울 중구 충무로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름에 가린 달빛을 원망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도 지팡이를 단단히 짚고 나아가는 나그네의 초연함과 치밀한 대비입니다. 산업의 맥박을 살리고 수출의 숨고르기를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구름 뒤의 달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졌을 뿐,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는다면 달빛은 반드시 다시 우리 경제의 길을 비출 것입니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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