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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안보실장의 고군분투, 이제는 국민의 응원이 필요하다
범국가적 총력 외교로 정당한 요구 관철시켜야
입력 : 2025-12-22 오전 10:01:38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6일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에 앞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행보가 눈에 띈다. 대통령 참모진 가운데서도 비교적 고령에 속하지만, 그의 현장 중심 외교 행보와 국민을 향한 직접적인 설명은 오히려 젊은 참모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외교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국의 정치 구조와 의회 역학, 관료 조직의 이해관계를 꿰뚫고, 때로는 시간을 견디며 설득을 이어가는 인내의 작업이다. 지금 위 안보실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바로 그러한 외교의 본령에 가깝다.
 
이번 방미를 통해 한국이 협상 테이블에 올린 의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문제, 그리고 핵추진잠수함에 사용될 핵연료의 군사적 사용 범위와 관련된 규정 협상이 그것이다. 모두 한국의 중장기 안보와 에너지 전략을 좌우할 핵심 사안이지만, 동시에 단기간에 결론을 내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더구나 이 문제들은 미국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의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한국과 미국 양국의 카운터파트가 동시에, 그리고 다층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개정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이른바 '원자력 외교 총력전'이다. 일본은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년간 미국을 상대로 끈질긴 설득을 이어갔다. 1977년 후쿠다 다케오 총리는 지미 카터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군사적 위험이 없고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일본에 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이 필요한지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후 일본은 정치권, 관료조직, 경제계를 총동원해 이 논리를 반복하고 확장해 나갔다.
 
협상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과 스즈키 젠 총리 간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일본은 미국에 대한 경제적·산업적 반대급부 제시와 미 행정부 내부의 부처 간 이견 조율이라는 고비를 넘었다. 국무부와 에너지부, 군비통제 관련 부처가 동의한 사안에 국방부와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우려를 제기하는 진통도 있었다. 이후 의회 단계에서는 상·하원에서 반대 기류가 강했지만, 행정부의 강력한 지지와 절차 진행 끝에 90일 심의 기간 경과 후 신 협정은 발효됐다. 이는 일본이 국가 수뇌부의 정치·외교·경제 역량을 총결집해 이뤄낸 결과였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상황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핵추진잠수함에 사용되는 핵연료의 군사적 전용 문제는 호주나 브라질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호주는 AUKUS 체제를 통해 미국·영국으로부터 고농축우라늄(HEU) 기반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는 예외적 조치를 인정받았고, 이 과정에서 군사적 핵연료 사용과 관련된 국제 규범 정비에 수년이 소요되었다. 브라질은 자국 내 우라늄 농축 능력을 보유한 국가로서, 비확산 체제 안에서 제한적 자율성을 인정받기 위한 협상을 진행해왔다.
 
이처럼 각국의 출발선이 다르기에, 한국 역시 우리의 안보 환경과 기술 수준, 비확산 책임성을 결합한 독자적 논리와 모범 사례를 만들어 접근해야 한다. 이를 외교 당국이나 안보실장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미 의회를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국회의 초당적 외교, 한·미 의원 외교 채널의 상시 가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특히 원자력·조선·방산 분야를 이해하는 국회의원들이 전면에 나서 미 상·하원과 싱크탱크를 설득해야 한다.
 
아울러 원자로, 조선, 잠수함, 방위 산업을 이끄는 기업인과 경제계 수장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들은 단순한 민간인이 아니라, 한국의 기술 신뢰도와 산업적 책임성을 보여주는 ‘경제 외교관’이다. 미국 산업계와의 공동 프로젝트, 공급망 협력, 일자리 창출 논리를 결합할 때 정치적 설득력은 배가된다. 일본이 그랬듯, 정부·국회·산업계가 각자의 언어로 같은 목표를 설명해야 한다.
 
안보실장의 고군분투를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 외교는 결국 국가 전체의 힘으로 완성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난이나 조급함이 아니라, 긴 호흡의 외교를 뒷받침하는 국민적 신뢰와 응원이다. 일본이 그랬듯, 우리도 범국가적 총력 외교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켜야 할 때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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