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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발목 잡는 '엡스타인 파일'
트럼프 가린 파일공개 '일파만파'…번지는 지지층 균열
입력 : 2025-12-22 오후 2:40:23
[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미국 법무부의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장기적인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사망한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의 전면 공개를 약속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에는 '부분 공개–삭제–해명' 과정에서 오히려 의혹과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지배적입니다.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의회가 제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입니다. 해당 법은 엡스타인과 공범, 연루 인사와 관련된 비분류 자료를 폭넓게 공개하도록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가 실제로 공개한 것은 당초 예고된 수십만 건이 아닌 약 4000건에 불과했습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 16건이 공개 하루 만에 삭제되면서 '선별 공개', '사전 검열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미국 법무부의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장기적인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법무부 해명에도 커지는 '불신'…공화당도 '공개 비판'
 
21일(현지시간)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 공동 발의자인 공화당 소속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은 <CBS> 인터뷰에서 "법무부가 법의 취지와 문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직격했습니다. 공화당 내부에서 공개적인 비판이 나온 것은 이례적입니다. 민주당은 법무부가 법이 요구한 공개 시한과 범위를 지키지 않았다며 책임론을 제기했고, 일부 의원들은 탄핵과 기소 가능성까지 거론했습니다. 민주당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자료 공개가 법의 취지에 미달한다"며 전면적인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법무부는 정치적 고려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토드 블랜치 법무부 부장관은 이날 <NBC> 인터뷰에서 "문제의 사진에는 여성들이 등장했고, 피해자 신원 식별 우려가 제기돼 삭제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는 무관한 조치"라고 해명했습니다. 검토가 끝난 뒤 재공개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삭제 사유와 재게시 과정이 반복되면서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번 자료 공개를 통해 드러난 또 다른 핵심은 '제도 실패의 그림자'입니다. <TIME>에 따르면 1996년 FBI가 엡스타인의 '아동 포르노그래피' 의혹을 접수했음이 처음 공식 확인됐습니다. 피해자 마리아 파머는 "30년 만에 진실이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이는 동시에 연방 사법 시스템이 초기 경고를 외면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사건의 도덕적 무게를 키웠다는 평가입니다.
 
미국 법무부가 엡스타인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새로 공개한 문서 묶음의 일부로,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공개된 이 사진에는 엡스타인의 맨해튼 자택에 있던 서랍과 액자에 넣은 사진들이 담겨 있다. (사진=미국 법무부 로이터 연합뉴스)
 
MAGA 진영의 기대와 배신감…번지는 지지층 '내부 균열'
 
정치적 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MAGA(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엡스타인 사건을 '기득권 은폐'의 상징으로 인식해 왔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폭로할 인물로 기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집권 이후 전면 공개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지지층 내부에서도 "숨길 것이 있는 것 아니냐"는 회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로이터>와 입소스 조사에서 공화당 유권자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엡스타인 파일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이 절반에 못 미쳤다는 점은 이런 균열을 보여줍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강경파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엡스타인 파일 공개 문제를 둘러싸고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린 의원이 수사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며 의회 행동에 나서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당내 배신'으로 규정하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후 그린 의원은 트럼프 진영과 거리를 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과정은 엡스타인 사건이 트럼프 지지층 내부의 균열로 번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부분 공개–삭제–해명' 반복, 투명성·신뢰 훼손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엡스타인 범죄 연루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내용보다 과정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찔끔 공개, 대규모 검열, 파일 삭제와 게시가 반복되며 투명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는 것입니다. 공화당의 랜드 폴 상원의원은 "완전한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징후만 있어도 이 문제는 수개월간 행정부를 괴롭힐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엡스타인 파일이 단발성 폭로가 아니라 추가 공개와 의회 공방, 사법적 검토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엡스타인 파일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범죄 여부를 가리는 사안이라기보다 전면 공개를 약속한 정치가 집권 이후 어떻게 시험대에 오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가디언>은 "핵심 쟁점은 파일의 내용보다 공개 방식과 그 일관성"이라며 "법이 요구한 투명성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행정부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서명한 법의 집행 과정에서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약속의 정치가 집권의 현실과 충돌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위험"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고물가와 국정 부담으로 이미 지지율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엡스타인 파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단기 악재를 넘어 장기적인 정치 리스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김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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