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헬스&사이언스)“팬데믹, 도시 새 모습도 바꿨다”
UCLA 연구진, 검은눈멧새 변화 분석
입력 : 2025-12-19 오전 10:01:36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 사회의 일상과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았습니다. 이동 제한, 봉쇄 조치, 재택근무, 관광 집회 중단은 경제와 문화뿐 아니라 도시의 소음, 공기, 리듬까지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연구는 이 전례 없는 사회적 충격이 인간을 넘어 도시 야생동물의 ‘몸’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엔젤레스(UCLA) 생태·진화생물학과 파멜라 예(Pamela Yeh)와 엘리노어 디아만트(Eleanor Diamant) 교수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 “코로나19 활동 제한 조치로 인한 도시 조류의 급격한 형태 변화(Rapid morphological change in an urban bird due to COVID-19 restrictions)”는 팬데믹 기간 동안 강제된 활동 제한이 도시 조류의 형태학적 변화, 즉 신체 구조의 변화를 유도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연구는 진화는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는 통념을 흔들어놓았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형태 변화로 단기 진화의 증거가 된 검은눈멧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이 멈추자, 자연이 달라졌다
 
2020년 초, 전 세계 주요 도시는 갑작스레 조용해졌습니다. 차량 통행량이 급감했고, 항공편은 중단되었으며, 관광객과 등교·출퇴근 인파가 사라졌습니다. 이른바 앤스로포즈(anthropause), 즉 ‘인류세의 일시 정지’라 불린 이 시기, 많은 도시에서 공기 질이 좋아지고 야생동물의 출현이 늘어났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연구진은 팬데믹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수 있는 드문 자연 실험 조건이 형성되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인간 사회의 급격한 활동 축소가 도시 생태계에 어떤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을 가했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뜻밖의 실험실’이 열린 것입니다. ‘선택압’이란 환경 조건이 개체들의 생존과 번식 성공에 차이를 만들어 특정 형질이 더 많이 남도록 작용하는 진화적 요인을 일컫는다.
 
캘리포니아 숲에 서식하던 참새과 조류인 검은눈멧새(dark-eyed junco)는 20여년 전부터 로스앤젤레스 도심으로 진출하여 정착 개체군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들은 도시에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해, 오늘날에는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캠퍼스 한복판에서도 흔히 관찰됩니다.
 
검은눈멧새는 소음, 인공조명, 차량 통행 등 인간 활동이 깊이 개입한 도시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형질이 변하면서, 숲에 살던 시기에 비해 날개는 상대적으로 짧아지고 부리는 뭉툭해졌습니다.
 
연구진은 팬데믹 이전 수년간 축적된 개체 측정 자료와 활동 제한 기간 동안 새롭게 수집한 데이터를 비교했습니다. 측정 항목에는 날개 길이, 체중, 부리 크기, 전반적인 체형 지표가 포함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이 새들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형태 변화를 보였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캠퍼스에서 태어난 검은눈멧새는 부리 형태가 숲에 서식하던 개체들의 특징에 가까워지며 상대적으로 길어졌고, 이후 몇 년이 지나 팬데믹 관련 제한이 해제되자 다시 도시 개체군 특유의 뭉툭한 부리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연구진은 부리 형태가 변화한 직접적인 원인을 코로나19 활동제한으로 인간 활동이 급감하면서 도시에서 이용할 수 있는 먹이의 종류와 획득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비대면 수업으로 캠퍼스에 버려진 빵이나 쿠키 조각 같은 먹이가 줄어들자, 씨앗이나 곤충 등 자연 상태의 먹이에 더 적합한 부리 형태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졌습니다. 그 결과 해당 환경에서 태어나 번식한 개체들의 부리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후 봉쇄가 해제되자 부리 형태가 다시 도시형으로 되돌아간 점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대학 캠퍼스에서 태어난 검은눈멧새는 부리 형태가 숲에 서식하던 개체들의 특징에 가까워지며 상대적으로 길어졌고, 팬데믹 제한이 해제되자 다시 도시 개체군 특유의 뭉툭한 부리 형태로 변화했다. UCLA 캠퍼스. (사진=뉴시스)
 
이러한 변화는 동일한 개체군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관된 방향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단순한 성장 조건의 차이나 일시적인 영양 상태의 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연구진은 환경 변화가 선택압을 변화시켰고, 그 결과 형태 변화로 이어지는 압축된 형태의 진화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신속진화’ ‘미세진화’ 개념에 주목
 
이 연구가 갖는 가장 큰 학문적 의미는 진화의 시간척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형태학적 진화는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생태·진화생물학에서는 ‘신속진화(rapid evolution)’ 혹은 ‘미세진화(microevolution)’라는 개념이 점점 주목받고 있습니다. 환경 변화가 급격하고 선택압이 강할 경우, 생물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봉쇄 조치는 바로 그런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인간 활동이라는 거대한 환경 요인이 단기간에 사라지면서, 도시 새들에게 작용하던 진화적 압력의 방향이 급변했습니다. 이 논문은 그 결과가 행동 변화 수준을 넘어, 신체 구조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종종 비극적인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이라고 부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동시에 인간 활동이 극적으로 감소한 전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시 생태계 연구에서 이런 기회는 매우 드뭅니다. 도시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인간의 개입을 제거한 ‘대조군’을 설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는 인간의 사회적 결정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다른 생명체의 진화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연구를 주도한 파멜라 예 교수는 “인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얼마나 극적일 수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교통 정책, 도시 설계, 소음 관리, 녹지 조성 같은 요소들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종의 생존 전략과 몸의 형태를 좌우하는 선택압이 될 수 있습니다.
 
팬데믹이 끝난 뒤 인간 활동이 다시 정상화되면서, 이 변화가 지속될지 혹은 되돌려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연구진은 후속 관찰을 통해 이러한 형태 변화가 일시적인 표현형 가소성 반응(phenotypic plastic response, 동일한 유전형을 지닌 개체가 환경 변화에 따라 유전자 변화 없이 서로 다른 표현형을 보이는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진화 경로로 이어질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서경주 기자
SNS 계정 : 메일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