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서 기후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기후 규제와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11월 브라질 벨렘(아마존 인근)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합의의 폭과 적극성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나온 연구 결과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37개국(G20는 모두 포함)의 기후 관련 법률과 규제를 종합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발표됐습니다. 옥스퍼드기후정책허브(Oxford Climate Policy Hub)가 발표한 <옥스퍼드 기후정책 모니터 2025년 연례보고서(OXFORD CLIMATE POLICY MONITOR 2025 ANNUAL REVIEW)>는 세계 수십 개 주요 로펌이 무상 협력 형태로 참여해 방대한 법·제도 데이터를 구축해서 분석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열린 ‘기후변화 반대 글로벌 행동의 날(Global Day of Action Against Climate Change)’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풍력 터빈 모양의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연구의 핵심은 각국이 내세운 탄소중립과 기후 공약이 실제로 구속력 있고 실행 가능한 규칙으로 제도화되고 있는지, 아니면 선언에 그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미국 “정책 후퇴” EU “규제 완화”
이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옥스퍼드대 토마스 헤일(Thomas Hale) 교수는 “전례 없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기후 정책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가장 세밀하게 보여주는 조사”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마지막 조사 이후 전 세계적으로, 특히 아시아와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새롭고 강화된 기후 정책이 다수 확인됐습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 하의 미국에서는 연방 차원의 기후 정책이 후퇴했고, 유럽연합(EU) 역시 기업의 기후 정보 공개 등 일부 규제를 완화하거나 시행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유럽의 조정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방향성은 분명하다는 것이 옥스퍼드 연구진의 결론입니다. 37개 국가의 정책이 국제적 모범 사례에 가까워진 사례는 82건인 데 비해, 약화된 사례는 42건에 그쳤습니다. 전체적으로 기후 정책은 ‘강화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기후 정책의 동력이 점차 개발도상국과 신흥 경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헤일 교수는 “기업의 배출량과 기후 위험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규제 등 일부 영역에서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유럽이나 북미보다 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기후 행동이 더 이상 일부 선진국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연구진은 “개발도상국이 기후 행동의 속도를 점점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옥스퍼드대 톰 웨처(Thom Wetzer) 교수는 “분열된 정치 환경 속에서도 글로벌 전환의 방향은 여전히 명확하다”며 “대다수 국가는 우리가 조사한 핵심 정책 분야에서 규제를 계속 수립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브라질 벨렘에서 지난 11월 10~21일 개최된 제30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장면. (사진=COP30)
하지만 보고서는 전반적인 강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책 수준으로는 재앙적인 기후 변화를 막기에 여전히 부족하다고 경고합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은 진전된 기후 목표를 설정하는 데 적극적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기업들의 ‘탄소배출제로(net-zero)’ 목표 채택은 9% 늘었지만,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헤일 교수는 “우리가 조사한 6개 정책 영역 가운데 4개 영역에서, 정책 목표에 대한 핵심 기준을 충족하는 정부는 5개국 미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메탄 배출 감축 정책의 부재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습니다. 그는 “어느 국가도 충분히 야심찬 메탄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히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목표와 실행 사이 간극 여전히 커”
이번 보고서는 300개가 넘는 데이터 포인트를 기준으로 기후 규제의 적극성, 엄격성, 이행력, 포괄성을 평가했습니다. 핵심 정책 분석 대상은 탄소 크레딧, 공공 조달, 기업 전환 계획, 메탄 배출 감축, 기후 관련 정보 공개, 그리고 중앙은행과 금융 규제 당국이 기후 위험을 관리하는 녹색 건전성 규칙 등입니다. 정부 지출과 금융 시스템, 기업 규율까지 포괄하는 이 영역들은 기후 정책이 선언을 넘어 구조적 전환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이번 COP30의 성과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COP30에서 합의된 ‘적응 자금 3배 확대’와 ‘GGA(Global Goal on Adaptation) 59개 지표 도입’은 기후 행동을 측정 가능한 ‘규칙’으로 만들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여러 국가가 강화된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했으며, 파리협정의 전 지구적 이행 점검 운영 지침도 채택돼 장기적 이행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및 감축 로드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2035 NDC 및 탈석탄동맹 가입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합의문에서 화석연료 단계적 감축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빠졌다는 점은 많은 환경단체와 언론이 지적하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세계는 여전히 기후 전환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옥스퍼드대의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목표와 실행 간 격차를 해소하고 심각한 기후 영향을 방지하기에는 정책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경고합니다. 국제적 합의나 선언이 말 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을 포함한 ‘이행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부의 노력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