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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포용금융과 대안신용평가의 활성화
입력 : 2025-12-17 오전 6:00:00
포용금융은 생산적 금융과 함께 현 정부 금융정책의 핵심 화두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서민과 취약계층이 금융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되고 기회를 잃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포용금융은 선언이나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제도와 관행의 변화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 금융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정확히 겨냥한 문제 제기다. 금융은 효율을 중시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배제의 비용을 과소평가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안신용평가는 포용금융을 구체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기존 신용평가 체계는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하거나 불규칙한 차주를 하나의 고위험군으로 묶는 경향이 강했다. 그 결과 실제로는 안정적인 소득·지출 구조와 상환 능력을 갖춘 차주들까지 평균적으로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부담해 왔다. 대안신용평가는 결제의 지속성, 통신요금 납부 이력, 사업 운영 데이터, 플랫폼 활동의 안정성 등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중·저신용자 내부의 이질성을 분해한다. 이는 기존 체계에서 과소평가되던 차주를 식별하고, 보다 합리적으로 금리를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은 제한적이나마 확인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금융사는 대안신용평가를 활용해 기존 금융권에서 고금리나 대출 거절 대상이던 차주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신용을 공급해왔다. 이는 대안신용평가가 중·저신용자 전체의 금리를 일괄적으로 낮추는 수단이 아니라, 위험 측정의 정밀도를 높여 과도한 금리 부담을 바로잡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다만 대안신용평가가 자동적으로 포용금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기관이 더 정교한 신용평가 결과를 확보하더라도 이를 실제 금리 산정에 반영할 유인이 없다면 보조 지표에 머물 수 있다. 규제 부담과 자본 규제, 부실 발생 시 책임 구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금융회사가 보수적인 가격 결정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한편, 평가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차주 간 금리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금융 효율성의 개선과 금융포용이라는 정책 목표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며, 제도적 조정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한국에서 대안신용평가는 이미 일정 부분 도입되었지만, 금융시장 전반에 깊이 뿌리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 신용평가는 여전히 기존 신용정보회사 중심의 금융 이력 기반 점수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대안신용평가는 인터넷전문은행과 일부 빅테크 금융사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 데이터 결합의 법적 불확실성, AI 기반 평가 모형의 설명 가능성 문제 역시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금융위원회가 통신 기반 대안신용평가 서비스인 이퀄(EQUAL)을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비금융 전문 CB가 신용정보원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금융 데이터와 비금융 데이터 간의 단절을 해소하는 제도적 실험이 시작됐다. 이는 대안신용평가의 신뢰성과 정확도를 높이고, 금융 이력 부족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포용금융 정책이 내실을 갖추려면 대안신용평가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 거리에 놓인 가로등에 카드 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한시적인 혁신금융 서비스 지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규제 유예에 기반한 실험은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일 뿐, 장기적인 투자와 금융기관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대안신용평가는 데이터 축적과 반복적 검증, 금융권의 신뢰 형성이 필수적인 장기 사업이다. 제도 종료 가능성이 상존하는 환경에서는 사업자와 금융기관 모두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금융 전문 CB의 법적 지위 명확화, 신용정보원 데이터의 상시적 활용 근거 마련, 감독 기준과 개인정보 보호 규칙을 포함한 항구적인 제도 정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포용금융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대안신용평가는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유력한 도구지만, 정책 설계와 시장 인센티브가 함께 작동할 때에만 그 잠재력이 현실이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의 가능성을 넘어, 신용이라는 금융 인프라를 보다 포용적으로 재설계하려는 일관된 제도적 실행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김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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