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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김준하 기자] 인공지능(AI) 마케팅 솔루션 전문기업
오브젠(417860)이 데이터 분석 및 정보기술(IT) 컨설팅 기업 잘레시아를 인수하면서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실적과 재무구조에서 우위에 있는 기업을 사채 등을 동원해 무리하게 인수했다는 지적과 함께 알짜 기업을 통한 성장 동력을 마련했다는 기대가 공존한다. 두 회사의 시너지가 이번 인수·합병(M&A)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오브젠 홈페이지)
BW로 자금 조달…실적·재무구조 잘레시아가 우위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브젠은 지난 2일 잘레시아의 지분 100%를 270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이번 거래의 외부평가를 맡은 동현회계법인은 잘레시아의 가치를 259억원~325억원 범위로 산정해 양수가액이 적정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독립리서치기관 밸류파인더에 따르면 지난 7월 잘레시아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103억원으로, 이를 감안한 회사의 현재 적정 가치는 약 167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브젠은 같은 날 신주인수권부사채(BW) 100억원을 발행했다. 인수자금 확보를 위해 대규모 외부자금이 조달됐다는 점은 리스크로 꼽힌다. 이에 실적 대비 투자 규모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다. 잘레시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8억원, 당기순이익은 5억원을 기록했다. 투자금 회수 기간을 단순 계산하면 영업이익 기준 20년, 당기순이익 기준 33년이 걸린다.
하지만 피인수기업의 지난해 말 순자산 115억원 대비 실질 인수가액은 1.45배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무형자산이 재무제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순자산이 저평가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도한 가격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잘레시아의 재무건전성이 우수하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이 24.6%로 매우 낮고, 차입금이나 사채 등이 없는 무차입 경영 구조다. 잘레시아는 매출액과 실적에서도 오브젠을 앞선다. 오브젠과 잘레시아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152억원, 243억원, 영업이익은 각각 -41억원, 8억원을 기록했다. 실적과 재무안정성이 더 우수한 회사를 인수하는 흔치 않은 M&A 사례다.
이번 인수는 장기화되는 실적 부진을 만회하고 재무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오브젠은 2020년 이후 줄곧 100억~2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에서는 수십억원의 적자 상태였다. 기술 개발을 위한 인건비와 추정치를 웃도는 외주비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
오브젠은 2023년 1월 기술성장기업 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후에도 영업실적이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 5개 회계연도 중 2022년을 제외하면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수십억원의 유출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오브젠은 자금 조달을 위해 전환사채(CB), 유상증자 등을 활용해 왔다. CB와 관련된 파생상품평가손실이 반영되면서 3분기에는 부채비율이 398%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하고 영업이익이 흑자 전환한 점은 긍정적이다. 인수에 따라 연결 기준 재무제표가 개선되는 효과도 예상된다.
오브젠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시장 상황의 변화와 경기 침체 등 변수 속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면서 적자가 발생했지만 올해 들어 회수 사이클에 들어갔다"며 "이번 인수합병은 좋은 기회에 좋은 회사를 인수한 모범적 사례로 평가한다"고 답변했다.
고객 포트폴리오 확장 가능…원활한 사업 결합 가능할까
M&A 성공의 관건은 결국 두 회사가 얼마나 강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오브젠은 데이터와 AI 기술을 기반으로 기업용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주력 제품은 AI CRM(고객관계관리)으로, 고객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기술이다.
오브젠의 기술력은 주요 금융사 프로젝트를 통해 검증됐다. KB증권, KB국민카드, IBK기업은행, 삼성금융네트웍스 등 대형 금융사를 상대로 CDP(고객 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행했다. 지난 10일에는 KB국민카드와 통합 AI마케팅시스템(AIMs) 구축 관련 36억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한편 피인수 기업 잘레시아는 BI(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의사결정을 돕는 기술)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이 주력 사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나임(KNIME) 등 글로벌 솔루션을 소싱해 국내 여건에 맞춰 최적화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또한 오브젠이 고객 데이터를 중심으로 기술력을 발전시킨 것과 달리 잘레시아는 경영정보 데이터를 활용한 솔루션에 강점이 있다.
오브젠은 두 회사의 데이터 플랫폼 기술과 엔지니어링 역량을 결합해 데이터의 수집부터 마케팅 실행까지의 모든 과정을 모두 지원하는 AI 플랫폼을 구축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객 포트폴리오도 확장될 수 있다. 오브젠은 매출의 상당 부분이 금융권 대기업에 집중돼 있고 고객사는 100여개 수준이다. 한편 잘레시아는 제조, 유통, 석유·화학, 금융, 공공 등 산업군에서 700개 이상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오브젠은 잘레시아의 영업망을 활용해 비금융 분야에 AI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할 기회를 확보한 셈이다. 두 회사의 고객군이 크게 겹치지 않는 것도 시장 확장에 용이한 점이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인력 중심의 사업 구조라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사업 결합에 따른 시너지가 충분하지 않으면 오브젠이 현재 겪는 높은 영업비용 구조가 통합 회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수도 있다.
오브젠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번 인수를 통해 고객군을 크게 확장하고 고객 데이터 뿐 아니라 경영정보 데이터까지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전 산업에 걸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잘레시아가 공급하는 글로벌 솔루션에 오브젠의 AI 기술을 결합해 활용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인력이 투입되는 프로페셔널 서비스(용역) 비중을 줄이고 이익률이 높은 솔루션 라이선스 매출 비중을 늘려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김준하 기자 jha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