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정부가 중국산 저가 자동차의 시장 잠식과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완성차업계를 위해 일명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는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국내에서 생산한 물량에 비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자국 내 생산 활동에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처럼, 한국판 IRA도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해 생산량에 비례한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완성차 업계는 고금리와 소비 위축 속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어 이러한 정책 지원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번 제도는 기존의 투자액 중심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생산량을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은 최근 “중국 브랜드 확산 속에서 국산차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생산 인센티브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첨단산업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 도입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에서 전략산업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은 생산 비용에 비례해 소득세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게 됩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용 산업의 범위와 공제 수준 등 세부 사항에 대한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반도체와 이차전지뿐만 아니라 자동차산업 등 여러 전략산업을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완성차 업계는 국내생산촉진세제와 별도로 올해 말 종료되는 개별소비세 3.5% 인하 혜택의 연장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승용차에 적용되는 개별소비세는 원래 5%이지만 2021년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3.5%로 낮춰 운영돼왔습니다. 이 혜택이 종료되면 소비자들은 최대 143만원을 더 부담해야 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저가 차량 유입으로 국내 업체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 유지에 기여하는 국내 생산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자동차업계의 한국 시장 공략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비야디는 올해 3월 소형 SUV 아토3를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커와 샤오펑도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내년 1분기 신차 출시를 목표로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커는 이미 에이치모빌리티ZK, 아이언EV, KCC모빌리티, ZK모빌리티 등 4개 딜러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국내 수입 상용차 시장에서도 중국산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국내에 등록된 수입 상용차 중 중국산은 54.3%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판 IRA 도입은 국내 완성차 산업의 공동화 현상을 막고 일자리를 지키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내생산촉진세제가 국내 생산을 전제로 하는 만큼 현지 생산 확대로 일자리 유출을 우려하는 노조의 입장도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연구용역을 마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설계를 구체화할 계획입니다. 내년 세제개편안에 관련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