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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풀 뜯어 와 보금자리 정돈'…우리가 몰랐던 돼지의 삶
새벽이생추어리·퍼머컬처 네트워크, 생추어리에 나무 심어
입력 : 2025-10-29 오후 5:14:03
[뉴스토마토 정재연 기자] 동물의 안전과 행복한 삶을 위해 조성된 영구적 보금자리를 뜻하는 '생추어리'. 그곳에서 만난 돼지는 풀을 뜯어 와 자신의 보금자리를 정돈했습니다. 다른 돼지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연신 코를 들이댔습니다. 나무의 잎도 뜯어먹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고기'로만 인식하는 돼지의 낯선 모습입니다. 
 
지난 26일 열 명 남짓한 인원이 '새벽이 생추어리'(이하 새생)에 나무를 심기 위해 모였습니다. '삽질단'입니다. <뉴스토마토> 취재진은 이날 삽질단이 되어 함께 나무를 심었습니다. 새생은 '동물에게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하고 이를 위해 활동하는 동물권단체의 이름이자, 구조된 돼지 '새벽'과 '잔디', 오리 '더덕'이 구조 후 여생을 살아가는 안식처를 지칭합니다. 
 
새생은 제한된 공간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을 생각해 나무를 심고자 했습니다.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새생 활동가는 "마당의 환경이 단조로운 게 항상 마음이 아프고 신경쓰인다. 나무와  풀이 잘 자라나서 그곳의 생태계가 회복되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이 행사는 원불교환경연대의 작은숲 만들기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삽질단은 '퍼머컬처 네트워크'에서 모집했습니다. 퍼머컬처 네트워크는 지속 가능한 농업인 ‘퍼머컬처’의 확산을 통해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연대체입니다. 
 
26일 새벽이 생추어리에서 만난 새벽이 울타리에 코를 가까이 댄다. (사진=뉴스토마토)
 
생추어리에서 관찰한 돼지의 일상
 
차로 울퉁불퉁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 새생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새벽과 잔디, 더덕이 있었습니다. 새벽은 낯선 이가 궁금한지 울타리에 코를 한껏 붙였습니다. 잔디는 삽질단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책을 나갔고, 한참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더덕은 연못에서 수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익숙한 동물의 알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잔디는 쌀겨를 새로 깐 보금자리에 풀을 물고와 자신의 공간을 정돈했습니다. 새벽은 새로 심은 나무 근처에 머물며 잎을 따 먹었습니다. 동물은 음식을 두고 싸울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잔디와 더덕이 음식을 함께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한 참여자는 "잔디랑 더덕이 너무 전투적으로 사이 좋게 식사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고 했습니다. 
 
26일 새벽이 생추어리에서 돼지 잔디와 오리 더덕이 그릇에 담긴 음식을 같이 먹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나무를 다 심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한 참여자는 "과일이 떨어져서 그 과일을 동물들이 먹고 동물들의 똥에서 다른 식물이 자라고 이게 사실 원래 순환"이라며 "나중에 훨씬 더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다른 참여자는 “(돼지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돼지의 부위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잔인한 시선을 가졌구나 생각했다”며 “50년 넘게 살았는데 송곳니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활동가는 "가을이 되고 잔디가 산에 떨어진 밤을 먹으러 산책을 자주 나간다"며 "저도 집에 가야 하니까 잔디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할 때 잔디가 굉장히 화를 내며 불만스러운 소리를 낸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 모습을 보면서 잔디는 이런 일상을 누릴 권리가 있는 존재란 걸 생생히 느낀다. 지구에서 태어난 존재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지금 세상에선 울타리 없이 혼자 다니다 인간에 의해 위험에 처하더라고 어떤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생추어리 울타리 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생추어리 울타리를 넓히고 싶고 생추어리 면적이 넓어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결국 사회가 바뀌여야 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26일 새벽이 생추어리에서 돼지 잔디가 마당에서 풀을 뜯어 보금자리로 옮기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구조 동물이 살고 있는 새벽이 생추어리
 
새벽은 2019년 경기도 화성의 한 종돈농가에서 생후 2주 차에 구조됐습니다. 새생은 새벽의 상황에 대해 "새벽은 태어나자마자 이빨과 꼬리가 잘리고 마취 없이 거세당했다. 스톨에 갇혀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엄마 옆에서 사산되거나 밟혀 죽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지냈다. 종돈장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곰팡이성 피부염을 앓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0년 2월 출생인 잔디는 의약 회사로 추정되는 곳에서 실험 목적으로 길러진 돼지입니다. 새생은 잔디 구조 배경에 대해 "어렸을 때 실험실에서 탈출하려다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회사 측에서는 수술 후 회복이 더딘 잔디의 안락사를 요구했지만, 새벽을 보호했던 활동가를 극적으로 만난 잔디는 안락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더덕은 올해 초여름 도로 위에서 발견됐습니다. 새생은 "집오리는 축산업에서 사용되는 가금류 품종이라는 점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농장 혹은 도살장으로 이동하던 중 도로에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날개와 등의 털이 없어서 붉은 빛의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또한 혼자 서서 몸을 지탱하지 못하며 걸을 때마다 넘어질 정도로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새생은 현재 동물의 안전을 위해 주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축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돼지는 예방적 살처분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재연 기자 lotus@etomato.com
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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