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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여사 별세)사진으로 보는 이 여사의 '파란만장' 인생사
김대중평화센터 사진제공
2019-06-12 12:30:07 2019-06-12 12:55:23
[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평생의 반려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별세했다. 이 여사는 단순한 영부인의 위치를 넘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이었던 여성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이 여사의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일생을 사진으로 정리했다
 
1939년 세일러복에 단발머리를 한 이화고녀 4학년 때의 모습(맨 오른쪽이 이희호 여사)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한 당시 여성으로선 보기 힘든 인텔리였다
 
1959년 대학 YWCA연합회 초대 총무 시절
 
1958년 귀국한 이 여사는 대한 YWCA 총무를 맡아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가부장적 질서가 강한 시대 상황에서도 '혼인신고를 합시다',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맙시다'라는 구호를 만들어 파격적인 여성운동에 나섰다.
 
1962년 충남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가다. 인근 아산의 현충사에서 사진을 찍다. (맨 오른쪽은 안내원)
 
여성운동에 전념하던 이 여사는 1962년 만 40세의 나이로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결혼하면서 '정치인 아내'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전도유망한 이 여사와 달리 DJ는 계속된 출마와 낙선으로 빈털터리인 정치적 낭인에 불과해 주변의 결혼 반대가 심했다. 이 여사는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이 되자고 결심하고 선택한 결혼"이라고 회고했다
 
1976년 ‘양심범가족협의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옥중에 있는 남편들의 석방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이희호)
 
결혼 후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결혼 열흘 만에 DJ가 '반혁명 혐의'로 체포된 것은 물론,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 1972년 미국 망명, 1973년 납치사건 등 군사정권 내내 감시와 탄압에 시달렸다. 이 여사는 그런 DJ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었다.  
 
1984년 미국 피플지에 실린 사진
 
1980년대 미국 망명 시절 부엌에서 함께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 여사는 이 시절을 두 사람만의 가장 행복했던 때로 꼽곤 했다
 
1998년 15대 대통령 취임식
 
1997년 네 번째 도전 끝에 DJ가 '대통령 당선'의 꿈을 이루면서 이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이 됐다. 그는 특히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김대중정부에서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확대된 것도 이 여사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2000-제1차 남북정상회담
2011년 12월26일 남쪽조문단과 함께 북한을 1박2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빈소(평양 금수산기념궁전)를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인사하는 모습이다.
 
이 여사는 생전 3차례 방북하며 남북관계 개선에도 힘썼다. 2000년 6·15 남북정상 회담, 2011년 12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 2015년 8월 북한 어린이들에게 모자와 장갑 등 물품 전달 등이다.
 
2008년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있다.
 
2008년 11월 이 여사는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펴냈다. 제목을 지어준 이는 DJ였다. 그해 11월11일 출판기념회에서 DJ는 이 여사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평생 동지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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