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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국민대 교수 "대한민국 제조업 강국 도약, 이번이 마지막 기회"
국내 대기업 보수적 경영 벗어나 '고기술·고품질' 제품개발 투자 절실
4차산업시대 제조업, 정부 차원 포괄적 정책 필요…민간은 노동·숙련공 존중 문화 정착해야
2019-06-12 06:00:00 2019-06-12 06:00:00
[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제조업 가동률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이후로 가장 낮아졌고, 생산능력은 줄곧 내림세를 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생산과 투자마저 위축되면서 제조업 위기론까지 불거졌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제조업 르네상스 태스크포스(TF)' 단장을 지낸 조원희(63)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위기가 오히려 대한민국 제조업 산업에는 기회라고 말한다. 조 교수는 선진국들처럼 우리나라도 제조산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다가올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포괄적인 정책 마련과 숙련직무자 존중의 일터 문화, 공공 연구개발(R&D) 등 통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원희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국내 제조업 산업, 어떻게 진단하나.
 
최근 제조업 가동률이 지속 하락해 올해 1분기에는 71.9%까지 떨어졌다. 지난 2009년 세계경제 위기국면에서 보여준 연평균 가동률 74.4%보다 낮아진 상태다. 가동률 회복 전망이 불투명해 우려할 만한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국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정부와 업계의 강력한 대응이 없이는 현재 상황이 자연스럽게 개선될 여지가 없다. 이 점에서 원인을 진단하고 대응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최근 정부정책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거다. 국내외 경제환경과 그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살펴야 올바른 대응책이 나올 수 있다.
 
분야별 세부 진단과 전망은.
 
우선 한국의 주력수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수출감소세는 올해 하반기 이후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조선은 작년 하반기 이후 LNG선을 중심으로 많은 수주가 이루어졌고 최근 삼성중공업이 2년 만에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호황을 바라긴 어렵다. 자동차의 경우는 최악의 상황은 벗어나는 듯하나 여전히 어렵다. 세계적인 과잉생산능력이 해소될 정도의 강한 수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거라고 본다.
 
제조업 위기론, 어디서 시작했다고 봐야 하나.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작년 대한민국의 일 인당 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 2006년 2만달러 달성 이후 12년 만이다. 이러한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 우리는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중국은 수출급증에 이어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에도 내수 부양을 통해 고성장을 달성했다. 한국은 중국경제 성장의 최대 수혜국이다. 중국 수출에 기대 국민소득 3만달러 고지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동안 중국 기업의 기술 수준이 높아져 중국이 한국경제에 기회 요인에서 위협요인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중국의 성장 둔화, 중국의 제품경쟁력 향상에 따라 한국의 중저가 제품 수요가 감소해 더 중국에 기대 성장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제조업은 그동안 미뤄뒀던 구조혁신을 통한 성장 틀을 갖추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위축될 게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제조업 시장은 혁신 중이다.
 
내부 요인으로는 한국 대기업들의 보수적 경영전략이다. 다수의 국내 대기업들은 기술력과 품질이 낮은 수준인데도 불확실성과 난이도가 높은 고기술-고품질 분야에 투자를 꺼린다. 모험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소기업 같은 경우는 대기업 대비 생산성과 임금이 지속해서 하락했다. 1990년대 후반 대기업은 세계화를 통한 현지 생산,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됐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대기업 전속거래에 묶여 있고, 대기업의 원가·이익 압박을 당하고 있다. 투자할 여력은 사라졌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는 단가경쟁력으로 생존하는 구조다. 이런 악조건이 지속해서 축적돼 결국 지금의 제조업 위기론을 불러온 것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조원희 국민대학교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자문위원들과 함께 회의하고 있다. 사진/조원희 교수
 
제조업 산업의 재구조화(혹은 고도화),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앞서 지적했듯이 대기업이 보수적 경영에서 벗어나 고기술-고품질 제품개발과 고부가가치 신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경제제도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 대학 및 공공 연구기관은 산업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R&D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소 제조 기업은 10~20년에 걸쳐 생산성을 대기업 대비 60% 이상, 임금은 대기업 대비 80% 정도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교육, 고용관행, R&D 및 산학협력체제, 사회안전망, 금융 등 전반적인 산업환경은 혁신해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전속거래에서 벗어나 강소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제조업의 가치사슬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산업고도화다. 
 
재구조화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은.
 
정부가 특정 전략 기술이나 산업을 선별해 육성하는 것도 일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산업정책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 민간의 역량을 끌어주고 상호 결합해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과 노동자, 지자체 등이 참여하는 산업별·업종별·지역별 위원회 형식의 플랫폼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기업 입장에서의 산업고도화를 가로막고 있는 제도적·법적 장애 요인도 정부가 제거해줘야 한다.
 
이외에 기업의 장기투자와 기업경영의 장기 계획을 강화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혁도 필요하다. 한국의 총수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의 공존은 단기주의와 보수적 경영을 초래한 주범이다. 일반 투자자와 장기적인 기업 성장에 관심이 있는 장기투자자를 구분하기 위한 '가중의결권' 제도 도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중소벤처 기업의 경우에는 창업과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
 
민간분야에서는 일터와 노동의 인간화, 스마트화가 필요하다. 많은 중소기업 현장은 비인간적이다. 때문에 중소기업은 젊은 인재들이 기피하는 곳이 됐고, 그 빈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미 고령화됐지만, 신규 인력이 오질 않으니 숙련을 전수하기도 어렵다. 숙련을 존중하고 임금과 승진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대감이 쌓여야 기업도 경쟁력이 생긴다. 기업 입장에서도 노무관리를 단순화시키고 합리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숙련 기술·기능, 직무 간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등급화하기 위한 산업별, 업종별 대규모 조사·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야 동일노동·동일임금 실현도 가능해진다.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산업(응용)기술연구 분야에 있어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회 방식처럼 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이 되도록 지자체에 권한을 이양해주고, 지방 소재 기업의 수요에 부응한 연구가 수행돼야 한다. 
 
다가오는 4차산업 시대, 제조업 분야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독일, 미국, 일본 등 제조업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제조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자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4차산업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정부가 의식적으로 산업진흥 정책을 추진해왔다. 특히 이들 국가는 제조업이 무너지면 고부가가치 영역도 함께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그간의 특정 산업이나 기술을 진흥하는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을 벗어나 포괄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범정부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 4차산업은 한 개의 기업 수준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기업이 동참해 산업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고, 내부 구성원들이 변화에 친화적으로 되도록 유연하게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진정한 기회는 위기에 찾아온다. 그 어떤 시나리오가 실현되건 한국 제조업이 제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껏 유지해온 산업환경을 그대로 두어서는 제조 강국의 길은 없다. 조선업, 자동차 산업에서 보듯 다양한 산업에서 다양한 시기에 위기가 찾아온다. 이제는 산업고도화를 이루기 위한 전 사회적인 에너지 결집이 필요한 때다.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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