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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생충’ 조여정 “이 영화 이상함=이정은 존재감”
“봉준호와 함께 할 기회 없을 것이라 체념…먼저 연락 받고 놀라”
“‘도쿄1’ 보고 봉준호에게 놀랐던 기억, 이제는 ‘기생충’이 최고작”
2019-06-04 00:00:00 2019-06-04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인간중독에서의 대령 부인 이숙진의 모습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봉준호 감독은 배우 조여정을 캐스팅하면서 인간중독이숙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단다. 봉 감독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 1등 공신 중 한 사람으로 조여정을 꼽았다.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최고 영광을 만들어 낸 영화적 동반자였지만 굳이 한 명을 꼽자면 봉준호 감독은 조여정을 주저 없이 선택하겠단다. 캐스팅 단계에서도 기생충속 박사장의 아내 연교역할은 조여정이 단연코 1순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여정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생활 동안에는 만날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며 웃었다. 배우라면 누구라도 한 번 쯤은 함께 하기를 손꼽는 봉준호 감독이다. 조여정은 봉준호 감독과의 만남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은 채 꿈만 꾸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첫 만남이 배우 생활 동안 다시는 없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조여정은 아직도 믿기 힘들다며 웃는다.
 
배우 조여정.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개봉 이후 며칠이 지난 뒤 만난 조여정이다. 칸 영화제 참석 이후 시차 적응 문제로 아직 피곤이 덜 풀리는 것 같다며 웃는다. 물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나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생기 넘치는 기운을 내고 있었다. 조여정은 배우 생활 동안 봉준호 감독과는 만날 인연이 아닌가 보다라며 체념하고 있었단다. 우선 그 이유부터 들어 보기 시작했다. 첫 만남에서 물론 전례 없는 사건(?)을 함께 만들어 낸 게 조여정이란 점도 아이러니이다.
 
배우란 직업을 갖고 있으면 봉준호 감독님은 무조건 한 번은 작업해 보고 싶은 연출자 이시잖아요. 너무 하고 싶었지만 사실 전 포기하고 있었어요. ‘난 안되겠다싶었죠. 감독님 영화를 보면 내 또래 여배우가 할 수 있는 배역이 거의 없었잖아요. 그래서 기회가 있을까기대도 했었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되게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진짜 놀랐죠. 재작년 12월쯤 연락을 받았어요.”
 
기생충속 조여정이 연기한 연교는 처음 캐스팅 단계부터 리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중독을 흥미롭게 본 봉 감독이 조여정을 낙점했었다고. 조여정 스스로도 이상한 느낌을 많이 좋아한단다. 봉준호 감독도 자신의 영화 기생충을 연신 이상한 영화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본 관객 들도 그 이상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조여정은 그 이상함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며 웃는다. 그가 생각한 이상함은 이랬다.
 
배우 조여정. 사진/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은 진짜 이상한 영화가 맞아요(웃음). 제가 생각한 이 영화의 이상함은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것들이라고 봤어요. 전 스스로가 사고 방식이 아주 평범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진짜 이상하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 재미도 있고. 그 기준으로 보면 기생충은 정말 기발하고 상상력이 차고 넘치는 얘기에요. 이상하면서도 너무 재미있죠.”
 
사실 이상하다고 연신 말을 하고 또 인터뷰 처음부터 피곤하지만 웃음기 어린 얼굴로 배역을 설명하고 영화를 전해도 그의 연기는 정말 진지했다. 당연히 진지하게 임했다. 평생 바라던 봉준호 감독과의 꿈 같은 만남이니 정말 잘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역이었다. ‘인간중독숙진캐릭터와 분명히 결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더 발전 시킬 수 있는 틈이 보였단다.
 
영화가 특별한 이상함을 지니고 있지만 전 엄청 진지하게 임했죠(웃음). 우선 기생충속 연교는 아주 심플해요. 다층적인 면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 점에서 비교적 연기하기는 편했어요. 저 자체가 불필요한 잡생각을 거의 안 하는 편인데 연교를 연기하면서 많은 것을 비우려고 노력했죠. 비우고 나면 해야 할 게 기택의 가족에게 집중하는 것이었죠. 그들의 자극에 전 반응만 하면 되는 인물이잖아요. 비우고 나선 온 몸의 신경을 기택의 가족에게 집중했어요.”
 
배우 조여정. 사진/CJ엔터테인먼트
 
비워내고 집중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기생충속 연교의 이미지는 허영심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남편의 성공으로 부잣집 안주인이 된 여자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도 차고 넘치지만 속으로 담겨 있는 내면도 그려내야 했다. 사실 이 영화는 그 속내를 끄집어 내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반전 묘미가 재미를 담당한다. 그 재미를 위해 조여정이 담당한 몫은 분명했다. 허영심은 자연스럽게 끌어 나오는 극중 연교의 모든 것이다.
 
진짜 초등 영어로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표현하려고 하잖아요. 그게 사실 코믹한 장면도 아니고 전 코믹하다고 생각도 못했어요. 전 되게 진지하게 연기했는데 많이들 웃어주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연교가 어떤 여자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 영화 속 그 영어 대사들 같아요, 애드리브라고 착각하실 수도 있는데 100%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들이었어요. 자세히 보면 연교가 남편 앞에선 영어를 안 써요. 오직 과외 선생님 두 분 앞에서만 써요. 그게 바로 봉준호 감독님이 노린 허영심의 민 낯이에요. 하하하.”
 
조여정의 존재감도 우월하고 그의 반전 매력과 묘미도 탁월했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상한 영화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을 드러냈단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이상함의 끝은 영화 속 의외의 존재감에서 드러난다. 바로 박사장 네 가사도우미 역할을 한 배우 이정은이 연기한 국문광역할 때문이다. 이 영화의 이상함은 이정은 배우의 힘이 90% 이상을 담당했다.
 
배우 조여정. 사진/CJ엔터테인먼트
 
진짜 소름 돋죠(웃음). 워낙 연기를 잘하던 배우로 소문만 분이셔서. 저도 원래부터 팬이었어요. 대학때 언니 연기를 출연한 연극 작품도 많이 봤어요. 진짜 영화 속에서 함께 하는 장면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언니를 좋아한 팬으로서의 제 사심이 들어간 몇몇 장면도 영화에 들어갔을 정도에요 하하하. 진짜 스포일러가 돼서 자세히 설명은 못 드리는 데 영화 속에서 한 장면은 진짜로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는 데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함께 작업해 보고 싶던 봉준호 감독과의 첫 만남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란 결과를 낳았다. 조여정은 아직도 믿을 수 없고 믿기 힘들다고 놀라워 한다. 발표 당일 침대에서 휴대폰을 보면서 초조하게 기다리다 잠이 든 일.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휴대폰을 쏟아진 수백건의 축하 문자와 인터넷에 올라온 수상 뉴스. 아직도 생각해 보면 믿기 힘들고 꿈만 같다는 조여정이다.
 
배우 조여정.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올해 유난히 쟁쟁한 감독님들 작품이 경쟁 부문에 많이 올라왔잖아요. 선배님이나 감독님 모두가 수상은 조금도 예상하지 않고 칸에 갔죠. 다들 칸에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되게 즐거웠죠. 칸에서 평점이 너무 좋단 얘기를 듣고 혹시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현지에선 여유가 없어서 바로 왔어요. 폐막까지 있을 수 있었다면 너무 좋았었겠죠. 지금도 너무 즐거워요. 행복하고. 감독님을 좋아하게 된 건. ‘도쿄!’를 보고 나서에요. ‘봉준호 감독에게 이런 감성이?’라고 너무 놀았었죠. 그런데 이제는 기생충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너무 궁금해요. 또 같이 할 수 있다면? 상상 만으로도 즐거운데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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