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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걸캅스’ 라미란 “몰랐던 성범죄 사건, 너무 화났다”
데뷔 첫 주연 무게, 제작자와 친분 인연으로…“고맙게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젠더 이슈 논란…“영화 보고 판단해 주셨으면”
2019-05-12 00:00:00 2019-05-12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의 연기 스타일을 미뤄 짐작해 보면 미안한 말이지만 주연이란 자리가 썩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연기력 부족 혹은 이름값 그것도 아니면 티켓 파워 등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모든 이유가 이유는 아니었다. 이미 익히 알고 있지만 배우 라미란은 능수능란한 코미디 연기의 대가이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스타일의 코미디가 아니다. 상황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분해하면서 얻어낸 일종의 틈바구니를 노리는 치밀한 계산이 깔린 코미디 연기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떠올리면 답은 간단하다. 극중 라미란은 웃기려고 웃긴 장면이 단 한 장면도 없다. 하지만 그는 극 전체에서 코미디의 흐름과 무게감을 조율하는 완벽한 방향타였다. 그래서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걸캅스에 대한 아이러니한 우려가 있었다. 라미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인물보단 전체의 흐름에 주효한 역할을 하는 방향타 같은 존재가 여러 모로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영화를 본 뒤 라미란 방식의 코미디가 때론 처음부터 끝까지 방향을 끌고 가도 맛의 강도는 충분하단 것을 알게 됐다.
 
배우 라미란. 사진/CJ엔터테인먼트
 
걸캅스개봉을 며칠 앞두고 만난 라미란은 긴장했다. 자신의 첫 주연작에 대한 언론의 반응과 대중들의 반응 그리고 개봉 이후의 흥행 성적에 적잖이 걱정이 됐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데뷔한 이후 오랜 시간 무명 배우로서 고생을 했다. 이제 빛을 본 지 사실 몇 년 안됐다. 이제 라미란은 충무로에서 몇 안 되는 존재감이다. 그럼에도 첫 주연작이란 타이틀의 무게감은 왕관 이상인가 보다.
 
그 왕관이 너무 무겁네요(웃음). 사실 주연 시나리오는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제가 다 거절했죠. ‘내가 무슨이라며. 하하하. 전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요(웃음). 영화 소원을 함께 했던 제작자가 학교 동문이기도 하고 친하거든요. 이후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도 함께 하면서 제게 너의 주연작은 내가 담당한다라고 못을 밖더라고요. 그리고 걸캅스시나리오를 건네왔죠. 보니깐 할 수 있겠는데라며 덥석 물었죠. 하하하.”
 
개봉 전부터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은 걸캅스의 내용이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린 버닝썬 게이트가 고스란히 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사했다. 물론 이 영화는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기 훨씬 이전 연출을 맡은 정다원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준비를 해왔던 영화이다. 라미란은 걸캅스버닝썬사건의 유사성에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
 
배우 라미란. 사진/CJ엔터테인먼트
 
라미란은 극중 나오는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는 대사에 대해 공감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극중 나오는 대사와 같이 화가 많이 났어요. 피해자들이 더 숨고, 말을 못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요. 저 같아도 표현하는 게 힘들 것 같아요. 그게 더 화가 나요. '부아가 치민다'라는 대사가 공감이 가요"라고 설명했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모두가 놀랐어요. ‘이거 우리 영화 얘기인데라고.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알게 됐고, 진짜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제가 사회 문제가 정말 둔감하거든요. 그런데 영화 내용이 고스란히 현실에서 터진 거죠. 비슷한 성범죄 사건이 터질 때는 사실 죄송스럽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우리 흥행에 도움도 되겠다싶었어요. 근데 버닝썬사건이 나오자 겁이 났죠. 이건 너무 잘못된 일이잖아요.”
 
작품 자체에만 빠져 바쁘게 살아온 탓에 사회 문제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단다.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가 이렇게 심각하단 것도 걸캅스시나리오를 통해 알게 됐다며 미안해 했다. 그는 같은 여자로서 가장 분노가 치밀었던 것은 피해자들인 여성들이 오히려 숨어 지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선이었다고.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해 그는 자신의 화끈한 성격대로 터트렸다.
 
배우 라미란.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도 나오잖아요. 정말 부아가 치밀어요아우 진짜. 사실 클럽 놀러 가도 되죠. 우리 나이에도 갈 수 있고요. 그런데 20대들은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그런 혈기와 분위기를 범죄를 인식하는 나쁜 일부 사람들의 행태가 너무 화가 났죠. 피해자가 내 동생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일 수도 있단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사실 피해자들이 더 숨고 말도 못하는 것도 이해는 되요. 그런데 그렇게 만든 게 누굴까요. 전 그게 제일 화가 나요.”
 
영화 개봉 전부터 걸캅스에 대한 악플도 상당히 많았다. 제목부터 그랬다. 최근 들어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는 젠더문제까지 겹쳐 버렸다. 실제로 영화에는 등장하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명확했다. 여성들 모두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반면 남성들은 모두가 수동적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의 주체들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영화적인 장치로 넘길 수도 있는 지점들이다.
 
저희도 사실 좀 놀랐어요. 그게 이렇게 문제가 되는지 몰랐죠. 처음부터 그걸 노리거나 생각하고 만들지도 않았고. 제가 가타부타 말씀 드리는 것보단 보시고 판단을 하셨으면 해요. 사건 자체가 담고 있는 문제가 젠더 이슈를 담고 있지만 이건 사건 자체의 문제이고, 주연이 여자 둘이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봐요. 그냥 보고 즐길 수 있는 상업 영화인데 좀 안타깝기는 해요.”
 
배우 라미란. 사진/CJ엔터테인먼트
 
분위기 전환을 위해 함께 한 배우들에 대한 얘기를 부탁했다. 그는 당연히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았다. 영화 내내 자신의 왼팔 오른팔이 된 후배 이성경 최수영 그리고 남편으로 등장한 윤상현, 여기에 깜짝 출연으로 모두를 놀라게 할 카메오 배우들의 존재감에도 감탄사를 터트렸다. 라미란 배우 자체가 워낙 임팩트가 강한 역이지만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죽이면서 동료들의 빛을 발하게 한 내공을 터트렸다.
 
성경이와 수영이가 너무 잘해줬죠. 성경이는 정말 딱 보시는 그대로에요. 너무 착하고 잘 따라줬죠. 저랑 영화 속에서 시누이 올케 사이로 티격태격했지만 너무 좋은 동생이에요. 영화가 잘되면 꼭 같이 후속편을 찍자고 했어요. 저 혼자 지금 시리즈 기획 중이에요(웃음). 수영이는 걸그룹 이미지가 있어서 깍쟁이일 줄 알았는데 너무 연기를 잘했어요. 진짜 노력파이고, 저러니 그렇게 대단한 걸그룹 인기를 끌었지란 생각이 절로 났죠. 윤상현씨는 왜 그렇게 빨리 집에 가나 했는데 동상이몽보고 나서 아 저래서 빨리 가는구나싶었어요. 하하하. 나머지 카메오 배우는? 영화 꼭 보세요. 진짜 깜짝 놀랄 배우들이 나오니. 하하하.”
 
충무로 최고의 다작 여왕으로도 유명한 라미란이다. 쉴새 없이 신작을 들고 팬들을 만나러 나오는 통에 충무로에선 라미란이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가 구분돼 있단 말도 있을 정도이다. 그는 아직도 멀었다며 웃는다. 이제 시작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충무로 에너자이저란 별칭이 결코 어색하지 않은 느낌은 라미란이란 배우에겐 훈장과도 같아 보인다.
 
배우 라미란.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제 시작인데 자꾸 다작이라고 하시면 안되요(웃음). 이제 물 들어 왔는데. 하하하. 가족들이 응원을 많이 해줘요. 그래서 여러편을 쉴새 없이 해도 힘든지 모르겠어요. 사실 가족들이 거의 관심을 안 둬요. 남편이나 아이들 친정 시댁 식구들 모두가 그냥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가 나와도 그런가 보다하고 넘겨요. 하하하. 그래서 섭섭하냐고요? 아뇨. 사실 전 그래서 더 편해요. 절 그냥 엄마, 아내, , 며느리로만 봐주시니. 그냥 전 그게 편하더라고요.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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