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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996 꼰대'와 기업가 꼰대?
2019-04-18 06:00:00 2019-04-18 06: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지금 중국에선 '996'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996이란 중국의 수많은 정보통신(IT) 기업들이 관행처럼 적용해 온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것'을 뜻한다.
 
"많은 기업이 996문제를 갖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996을 할 수 있다는 건 커다란 복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겠나. 다른 사람을 넘어서는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 원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는지 물어보라"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한 말이다. 그는 세계적 기업이 된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가 있기까지는 996이 존재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 회장은 "알리바바에 입사한 사람은 하루 12시간 일할 준비가 돼야 한다. 8시간만 일할 사람은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알리바바와 경쟁하는 징둥의 류창둥 회장은 "회사를 세운 1998년에는 알람시계를 두 시간마다 맞춰놓고 고객들에게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 4~5년 동안 징둥은 아무도 해고하지 않았기에 직원 수가 빠르게 늘었고 명령만 내리는 게으름뱅이들이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징둥은 희망이 없고 시장에서 쫓겨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주 72시간 노동이 오늘날 경제대국 중국을 만든 바탕 중의 하나가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알리바바와 징둥처럼 세계적 기업이 된 중국 IT기업의 노동자들은 '반 996 사이트'가 만들어지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996을 하다간 중환자실 간다"는 의미의 '996 ICU'가 만들어지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노동법에선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을 규정하고 있다. 996을 하면 주 40시간 근무 때보다 2.275배의 임금을 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워라밸이 무너지면서 IT업계의 20~30대 노동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논란이 격화되자 마 회장은 "996을 강요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인도적이지 않고 건강에 유해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법률상 허용되지도 않는다"면서 한 발 물러섰다. 중국 인민일보 등 관영매체들도 14일 "열심히 일하는 게 초과근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996에 반대하는 직원에게 게으름뱅이라는 딱지를 붙여선 안 되며 그들의 진실한 요구를 직시해야 한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마 회장과 류 회장은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에서 하루아침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꼰대로 전락하게 됐다. 중국기업들의 고속성장에는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 큰 힘이 됐지만 중국경제가 과거와 달리 침체국면에 접어들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의 한계가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997(일주일 내내 근무)', '007(자정에 출근하고 자정에 퇴근, 주7일 근무)' 말까지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중국기업이 열정페이에 기댔다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워라밸이 깨졌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창업한 나는 자발적 꼰대가 됐다. 지난 3년간 단 하루도 편히 쉬어본 적이 없고 공장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새로운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혁신하고 직접 기계를 조작하고 납품에 나서면서 996은커녕 997이 일상화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997이 일상화된 노동자일 것이다.

세계적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는 애초부터 없었다. 하루 8시간, 주 52시간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창업하는 순간부터 깨달았다. 대기업과 공무원,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기회를 잡은 운 좋고 능력 있는 직장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이 워라밸보다 일자리를 걱정하고 최저임금을 웃도는 임금에 허덕이거나 취업에 목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기업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소상공인들 모두가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꼰대라는 건 아니다. 워라벨을 지키면서 성공한 소상공인도 적지 않다. 다만 자랑삼아 '내가 한창 일할 땐 말이야…' 라며 직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게 꼰대 짓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법제화된 주 52시간이 워라밸을 강화해주기는커녕,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켜 일자리를 줄이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996이 일상화된 알리바바와 징둥, 중국의 삼성이라 불리는 화웨이같은 중국기업들의 경쟁력에 맞설 수 있는 우리의 대응무기가 보이지 않아 우려된다. 정치적 소수와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권한을 고집하는 정치적 꼰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우직하게 기업가 정신을 고집하는 열정을 가진 기업가 꼰대가 여전히 필요한 시대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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