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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재계, '시대 흐름' 저항 말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국민연금 외 기관투자자들도 '거수기' 탈피…"대한항공 사례 '타산지석' 삼아야"
"'스튜어드 십 코드' 도입 이후 주총 분위기 일신…회계법인 시장도 바뀌고 있어"
2019-04-03 06:00:00 2019-04-03 09:17:20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기업지배구조개선 운동만 20여년수없이 많은 주주총회를 다녔다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얘기다. 2019년 327일 그는한동안 뜸했던 그곳을 다시 찾았다. 항상 함께 했던 이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늘 가던 주총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에겐 너무 익숙한 곳에서 주주들이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재벌총수를 몰아내는 이변이 일어났고, ‘대한항공 주총 스타란 낯선 타이틀을 얻었다.  
저항하지 말고 이런 환경을 인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이미 시대 흐름인데 저항하려고 하면 결국 더 당할 겁니다.” 
'대한항공 주총 사태'로 동요하는 재계에 그가 던지는 조언이다. 초선 의원인 그는 지금까지 회계법인·시민단체·국회를 거쳤지만 어디 있든 목표는 자본주의 바로 세우기’다. 국회 정무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그는 지금 숙원인 외감법’ 통과에 이어 시대 흐름에 맞는 상법’ 개정을 위해 법사위원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편집자주).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3월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피켓을 들고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채이배 의원실 제공/
 
 
이번 대한항공 주총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획기적인 변화다. 주주들의 힘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재벌총수를 이사회에서 퇴출시킨 첫 사례다많은 기업들에게 시그널이 될 것이다박삼구 아시아나 회장이 퇴진을 발표했을 땐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재무제표에서 한정’ 의견이 나오고 재감사를 하는 상황에 더해 조양호 회장의 퇴출을 보며 계속 버티는 게 가능할지 판단해봤을 것이다다른 그룹들도 이번 주총에 이사선임 안 건이 안 올라와서 넘어갔더라도 내년내후년에도 계속 재벌총수 일가 재선임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수들 줄 퇴진’ 전망도 나오는데.
확대해석해선 안 된다일부에서 이번 사태를 호도하면서 국민연금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나 주주권 행사를 막으려는 의도도 보인다조 회장은 이사회에서 퇴출당했을 뿐 경영권을 잃은 건 아니다여전히 많은 지분을 가진 소유구조를 통해 지배권을 행사할 것이다조 회장이란 문제 많은’ 사람을 주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뿐조 회장이 다른 좋은’ 사람을 추천해 올린다면 주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이번 일을 계기로 갑자기 기관투자자나 국민연금이 힘을 합해 재벌총수들을 몰아낼 것처럼 얘기하는 건 호도하는 것이다.
 
 
갑질 논란’ 없이 이번 일이 가능했을까.
당연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재벌총수들이 감옥을 갔다 돌아와도 이사 선임이 안 된 경우가 없었다유독 조 회장 일가는 도덕적·윤리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고, 정관에 이사 선임 의결조건을 3분의 2로 해놨던 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다른 회사처럼 그냥 과반 수 이상 의결이었다면 이번에 조 회장이 선임됐을 거다굉장히 이례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너무 확대해서 얘기하긴 어렵다다만 이런 흐름이 있다는 걸 재벌총수들이 알아야 한다저항하지 말고이런 환경을 인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이미 시대 흐름인데 저항하려고 하면 결국 더 당할 것이다. 
 
 
지금 말한 '시대 흐름’이란 무엇인가.
2006~2012년 장하성펀드(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 자문을 할 때 주총에 가 보면 일반적인 기관투자자라고 할 자산운용사들이나 은행증권사들은 대부분 재벌총수 경영진 편을 들어줬다국민연금은 3년 전에도 조 회장에 대해 과다 겸직으로 인한 반대를 하고최태원 SK 회장에 대해서도 회사에 손실을 끼친 이력으로 반대를 하는 등 이전부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해왔다문제는 국민연금만 그렇게 했을 뿐 다른 기관투자자들이 동참해주지 못했는데올해 스튜어드 십 코드 도입 후 첫 주총을 하면서 그런 부분에 동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거다이번 대한항공 주총에서 회사가 받은 기관투자자들 위임장을 검증해보니 대부분의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조 회장 안건에 대해 반대를 했다
 
 
현명하게 대처한 모범사례가 있나.
현대자동차에 엘리엇이라는 적대적인 주주가 들어와서 이번 주주총회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대차는 그런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고 외부 헤드헌터를 통해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된 사람들을 추천받아 올렸다기관투자자들을 만나 엘리엇이 낸 후보들을 무작정 떨어뜨려 달라고 하는 대신 다른 경쟁사와 관련 있어 이해충돌 문제가 있다는 등 부적절한 내용을 설명하고, ‘우리 후보가 더 적절한 사람’이라고 경쟁력을 갖고 호소했다그 결과 현대차가 추천한 후보들이 다 선임됐다시장에서 기관투자자들과 소액주주들의 지배구조나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유효해지면서회사도 더 좋은 사람을 추천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 것이다조 회장은 KCGI가 한진칼에 들어오자 나름의 지배구조개선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시장에선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흐름을 어떻게든 저항해 막아보려 했지만 막지 못한 것이다. 
 
 
상법개정안 국회 논의는 더딘데.
 
상법개정안 추진해보려고 법사위에 왔다. 이런 어려운 법안은 누군가 붙잡고 끝까지 하려고 해야 법이 된다. 근데 와서 보니까 한국당 반대가 너무 극심해 논의 안건으로조차 못 올리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법안소위 위원장이라 올릴 수도 있는데, 눈치보고 적극성을 안 갖는다. 청와대에서 ‘오더’가 안 내려오는 거다. 이미 경제지표나 경제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재벌들에 부담되는 걸 어떻게 추진하느냐고 판단한 것 같다. 지난 당정협의에서 상법개정안 핵심인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에 대해 ‘서두르지 않겠다’고 합의했다고 들었다. 상법개정을 통한 재벌개혁은 후순위로 밀려난 거다. 그래서 지배구조 관련 법 10개에서 시행령 36개를 추렸다. 시행령이라도 개정되면 법 개정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본인은 어떤 인물인가.
 
자본시장의 기본 원리를 바로잡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친시장주의자’다. 소액주주운동이나 재벌개혁운동을 하면서 총수들의 전횡적인 경영, 그리고 대부분 그게 가족경영 모습인데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나타나는 일감 몰아주기나 세액 편취 행위 등을 꾸준히 문제제기 해왔다. 장하성 교수님(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친정 아버지’ 고, 김상조 교수님(공정거래위원장)이 ‘친정 어머니’ 같은 분이다. 20년간 같이 일해왔고, 대학 시절 장 교수님 수업 듣고 여기까지 왔다. 회계사 자격증 따고 삼일회계법인에서 3년간 수습만 마치고 바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서 일했다.
 
 
 
정무위 시절 낸 성과는 무엇인가.
2016년 국회 정무위에서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회계감사가, 독립된 외부감사로서 역할을 해야 되는데 회사가 돈을 주니까 고용된 종속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보통 3년씩 계약하는데 9년 중 한 번은 반드시 금융감독당국이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했다. 이제 9년이라는 ‘한 텀’을 지나면 우리나라 모든 기업은 적어도 3년은 지정수임 감사인으로부터 감사를 받게 된다. 그러면 독립성이 확대되고, 지정제도로 받는 회계감사인의 앞뒤에 있을 자유수임 회계감사인은 여기서 한 번씩 검증을 받기 때문에 회계 투명성이 높아질 거라는 게 논리였다. 올해부터 외감법이 적용돼 감사가 시작됐다. 아시아나항공에서 한정의견도 나왔다. 회계법인시장도 지금 완전히 바뀌고 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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