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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태지보이스부터 BTS까지…'K팝'은 역사적 연속성의 산물
보는 음악·블랙 뮤직·팬덤 문화의 축적…"30여년 간 발전과 확장, 세계 팝의 한 장르로"
2019-02-22 06:00:00 2019-02-22 0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12년 미국 문예잡지 ‘뉴요커’는 A4 9장 분량의 케이팝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존 시브룩이 쓴 ‘공장 소녀들’이란 글이었다.
 
당시 기사에서 시브룩은 케이팝의 음악 시스템을 강렬하게 비판했다. ‘육체의 아름다움에만 집착’하고 ‘악기 연주도 못한다’고 혹평했다. 시스템이 생산하는 ‘공장 음악’이 케이팝의 실체일지 모른다며 거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하지만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음악계의 ‘주류’가 되고 있는 오늘날 그는 어떤 생각일까. 지난해 BTS가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2년 연속 상을 받은 후 시브룩은 ‘케이팝이 어떻게 미국의 넘버1 음악이 됐나’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K팝의 성공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
 
“최근 BTS를 보면 이 시대 젊은 층이 공감할 만한 가사를 직접 쓰고 직접 음악을 만든다. 간혹 허세가 있는 미국 팝스타들과는 달리 인터뷰에서도 매우 겸손하다. 미국 음악시장은 수십년간 놀라운 방식으로 진화해 온 케이팝을 지금 대폭 수용하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뉴시스
 
BTS에 이어 최근 위너, 블랙핑크도 투어와 방송으로 미국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에픽하이는 세계적 스타들이 속한 해외 에이전시와 계약했고, 밴드 잠비나이와 혁오는 올해 미국 코첼라에 출연한다. 단순히 아이돌 음악에만 편중된 것처럼 여겨지던 ‘케이팝’은 오늘날 장르와 형식을 확장하며 세계인들의 감수성을 뒤흔들고 있다.
 
문화사회학자 김성민씨는 신간 ‘케이팝의 작은 역사’에서 이러한 오늘날 케이팝의 추세를 한국 대중음악사의 총체적 맥락 안에서 짚는다. 그는 “아이돌 음악과 동일시하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케이팝은 어떠한 단순한 정의로는 설명될 수 없다”며 “음악과 산업, 사회의 복잡한 구조의 작동을 들여다 보며 오늘날 케이팝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케이팝은 ‘역사적 연속성’의 산물로 이해돼야 한다. 그는 80년대 전까지 가요에서 이어져 오던 우리 만의 감각이 세계 팝과 ‘밸런싱’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국 만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얘기한다.
 
1981년 MTV가 열어젖힌 ‘보는 음악’의 시대는 당시 미국 음악계의 주류였던 ‘블랙 뮤직’을 국내에 유입시켰고, ‘한국형 랩’을 탄생시켰다. 특히 90년대 초반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적인 것’이 시작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한국 전통악기에 랩을 섞거나 교육과 통일, 청소년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메시지를 담은 이들의 음악을 저자는 오늘날 케이팝의 ‘원형’으로 본다.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뉴시스
 
여기에 신해철과 이승환에서 시작하는 싱어송라이터 계보는 한국팝의 음악적 프레임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들은 조용필과 들국화, 김현식 등 한국 대중음악사의 계보를 이어 받으면서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음악적 시도를 펼쳤다. 저자는 이 프레임 속에서 “사운드와 리듬,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뮤지션과 리스너의 관계에 이르는 모든 요소가 재구축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SM과 YG, JYP 등 대형 기획사의 등장은 조직적인 팬덤 문화와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가속화시킨 촉매제였다. 한국적으로 해석한 블랙뮤직에 화려한 집단 퍼포먼스(칼군무), 비주얼적 영상을 더한 음악이 ‘종합 예술’의 성격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기초 위에 오늘날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직접 사운드나 비트를 만들고 직접 팬덤과 소통하는 적극적 행보에도 나선다. 이 과정에서 BTS는 자신들 만의 정체성과 스토리로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
 
‘케이팝은 결코 간결하지 않다’는 게 저자가 내리는 결론이다. ‘한국 음악사의 축적이자 세계와의 소통’ 결과였다고 그는 얘기한다.
 
“짧은 수명의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케이팝이 단편적인 현상들의 모자이크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케이팝은 역사적인 연속성을 갖고 구축된 음악 공간이며 문화산업이고 사회적 장이다. 보는 음악의 도입, 블랙 뮤직과의 만남, 한국형 매니지먼트의 정착. 케이팝의 형성과정만 봐도 케이팝이 ‘음악’이란 큰 맥락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의 작은 역사'. 사진/글항아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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