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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재계시각)김우중 전 회장의 GM 예견 현실로
“한국 내수만 하던 시절로 회귀…투자 없이 이익만 빼가”
2019-02-11 06:00:00 2019-02-11 06: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GM은 한국시장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네 글로벌 경영 차원에서 한국시장을 생각하는 거지요.”
 
지난 2014년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펴낸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미국 제네럴모터스(GM)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김 전 회장은 이 책에서 “지금 GM이 군산 공장과 부평 공장을 대폭 축소하는데 그게 다 한국 내수만 하던 옛날로 돌아가는 거다. GM이 그동안 우리가 투자했던 걸로 돈을 많이 벌었지 자기들이 한국에 투자는 별로 안 했다”면서 “이제 자기네 세계전략이 변하니까 한국에서 수출하지 않고 중국이나 유럽 현지 공장을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국내 기업인들 가운데 GM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꼽힌다. GM은 지난 1972년 한국지엠의 모태가 된 신진자동차 지분 50%를 인수해 한국시장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신진자동차는 새한자동차로 이름을 바꿨고, 1978년 산업은행이 갖고 있던 회사 지분을 대우가 인수하면서 GM과 대우간 합작을 시작, 1992년말 계약을 청산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은 GM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처음부터 GM은 자기네 모델을 한국에서 어셈블리(Assembly, 조립)만 해서 국내시장에 팔려고 했다”는 것이다. GM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미국 자동차업계에 위협이 되고 있는 일본과 서독(현 독일)을 견제하고 일본과 동남아시아 및 중국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기 위함이었다. 물론 GM은 한국에서 독자 모델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난 1997년 3월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린 대우자동차의 중형승용차 ‘레간자’ 신차발표회에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레간자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대우세계경영연구회
 
1998년 GM은 다시 대우에 합작을 요청했다. 대우는 1996년 라노스, 1997년에는 누비라와 레간자 등 세 가지 모델을 동시에 개발·출시했다. 3개 차종은 GM이 보유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당시 GM은 총체적인 위기였다. 특히 중국에 진출해 현지에서 팔만한 자동차 제품이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대우그룹이 해체된 후 채권단과의 협의 끝에 GM은 2002년 대우차를 ‘사실상 공짜로’ 인수했다.
 
대우차를 인수한 뒤 GM은 기사회생했다. 경쟁사들보다 중국에 제일 늦게 진출했지만 1위까지 올랐다. 그 때 많이 팔린 차들이 뷰익, 쉐보레 등 GM 브랜드였는데, 모델은 대우의 누비라, 마티즈, 라노스 모델에 이름만 바꿔 단 것이었다. 아시아 자동차시장 전문가인 마이클 던은 GM의 중국 시장 성공을 다룬 저서 <미국 바퀴, 중국 도로(American wheels, Chinese Road)>에서 “상하이GM의 성공에는 GM대우가 명백하게 핵심적이었다. 한국에서 개발된 뷰익 엑셀은 중국에서 상하이GM 매출의 70%를 차지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GM이 한국지엠을 토대로 처음부터 새로 개발한 모델은 사실상 없다고 봤다. 뽑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차의 잘못된 매각으로 한국 경제가 210억달러 이상 손해봤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의 예견은 들어맞고 있다. 라세티(누비라 모델, 준중형)의 생산중심기지는 군산 공장이었고, 스파크(마티스 모델) 등 미니카와 아베오(라노스 모델) 등 소형차의 연구개발(R&D) 기지는 부평 공장이었다. GM은 라세티 생산과 소형차의 R&D 기지를 유럽의 오펠로 옮겼다. 이로 인해 군산 공장 생산이 대폭 줄었고 지난해 폐쇄됐다. 생산 기능 폐쇄가 가시화 되고 있다. 김석환 전 대우차 사장도 “GM이 한국 내수시장만 주로 바라보고 차를 팔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이렇게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찌그러들어서 한국경제가 입게 된 손실은 ‘헐값 매각’ 여부를 떠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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