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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16화)민초들의 ‘홍길동’ 지향성
“그 이름은 우리 모두의 이름이었고 이름이고 이름이리라”
2018-12-03 08:00:00 2018-12-03 08:00:00
홍길동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인물인 만큼 영화, 만화, 드라마 등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그 중 가장 최근에 제작되었던 2017년의 TV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은 연산군 시절의 실존인물 홍길동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당시 이 드라마는 흥미로운 대본이 탄탄하기도 했거니와, 그 내용이 하나의 길동이가 아닌 다수의 길동, 변혁을 꿈꾸는 수많은 ‘아무개’들인 복수의 ‘홍첨지’들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매력을 선사했다.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서의 ‘홍길동’이 가진 의미를 살려냈기 때문이다.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출연 배우들. 사진/MBC·뉴시스
 
조선의 3대 의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견본 문서의 예시 이름이 홍길동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동 주민센터에 제시된 각종 문서 서식에도 홍길동이 있고, 주민등록증과 여권을 신청할 때도 홍길동이 안내를 해 준다. 왜 모든 서류 양식에 예시로 있는 이름이 홍길동인지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품을 만하지만, 언제부터 그리고 왜 홍길동을 쓰게 됐는지를 알려주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니 각자 짐작만 할뿐이다. 그러나 일상의 곳곳에서 접하는 견본 문서에서 대표 이름으로 홍길동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은 그만큼 그가 우리들―보통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임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단지 그가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영웅적인 캐릭터, 의적이기 때문일까? 조선의 3대 의적으로 홍길동과 더불어 임꺽정, 장길산도 있는데 굳이 홍길동이 한국 국민의 대표명사가 된 것은 왜일까? 국사편찬위원회가 디지털 자료로 올려놓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이 세 인물을 검색하면, 장길산은 3회(원문 기준) 언급되는 반면, 홍길동은 10회, 임꺽정은 12회(국역본은 23회)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활동시대별로는 홍길동이 제일 선배라 연산군 시절이고 임꺽정은 명종, 장길산이 숙종 때이다. 실록의 기록으로만 본다면 임꺽정이 제일 많이, 길게 언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잡힐 듯 말 듯 안 잡히는 임꺽정 대신 엉뚱한 사람을 잡아들여 골치를 썩이는 조정의 모습을 보노라면 일종의 통쾌함에서 우러나는 고소를 짓게 된다. 게다가 당시 이를 기록한 사관은 본인의 의견을 용감하게 다음과 같이 적어 놓고 있다.
 
“사신은 논한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의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어 권요(權要)를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명종실록 25권, 명종 14년 3월 27일 기해 2번째 기사)
 
“사신은 논한다. 국가에 선정(善政)이 없고 교화가 밝혀지지 않아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포학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기름과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으며 기한(飢寒)이 절박하여 하루도 살기가 어려워 잠시라도 연명(延命)하려고 도적이 되었다면, 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요 그들의 죄가 아니다. 어찌 불쌍하지 않은가.”(명종실록 27권, 명종 16년 10월 6일 임술 1번째 기사)
 
지배세력의 폭압에 시달리다 생존을 위해 도둑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상황을 사관(史官)도 알고 통탄해 마지않은 것이다. 
 
홍길동전 목판본 인쇄물. 사진/뉴시스
 
일상생활 속 홍길동
 
백성들의 보호 아래 오랫동안 잡히지 않았던 백정 출신의 의적 임꺽정보다 홍길동이 관공서 서류 양식의 예시 이름이 된 데는 허균(1569~1618)의 <홍길동전> 덕이 크다 할 수 있겠다(<홍길동전>의 저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 진행 중이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임꺽정을 발굴해 낸 홍명희(1888~1968)의 소설보다 훨씬 앞서는 <홍길동전>인지라(게다가 월북 전에 쓴 작품이라 해도 북에 간 작가의 글을 남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명예와 함께(이 역시 논란이 있다) 우리 국민에게 익숙한 고전으로 남았다. 1960년대에 고 신동우 화백이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한 <풍운아 홍길동>(1966~1969) 만화를 비롯해 그 이후에 쏟아져 나온 만화영화들도 우리에게 홍길동을 더 친숙한 인물로 만들었을 것이다.
 
소설 속 홍길동은 양반 홍판서가 종에게서 낳은 ‘얼자’의 신분이고 역사 속 홍길동도 세종 때 경성절제사를 지내고 유배를 간 홍상직의 얼자로 추정하지만, 연대가 안 맞는 문제도 있고 정확한 기록이 없어 사실을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실록의 홍길동(洪吉同)과 우리가 아는 <홍길동전>의 홍길동(洪吉童)은 한자가 달라 문제가 남게 된다(홍상직의 아들인 홍귀동과 홍일동은 한자 이름에 同이 아닌 童을 쓴다). 그러나 사람들이 홍길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문제들과 상관없이 그가 갖고 있는 의로운 도적의 이미지와 신분차별 철폐에 대한 상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홍길동은 야릇하게시리
마구 일어나는 세종왕조에 태어났다
홍판서께서
그 예쁜 몸종 춘섬을 건드려
거기서 태어났다
 
< … >
조선팔도를 누비는 의적
그를 따르는 의적들
팔도의 산야에 물처럼 불어났다
 
홍길동 토포령으로
전국에서 잡힌
홍길동 무려 3백 몇명
 
양반
부자들의 착취에 맞서
그것들을 털어 백성에게 나눠주는 일
그런 일이
어느 달 밝은 밤
달 지고 난 어두운 밤
왕의 백성보다
의적의 백성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홍길동’ 15권)
 
'소년조선일보'에 실린 홍길동 애니메이션. 사진/뉴시스
 
‘아무개’의 다른 이름 ‘홍길동’
 
홍길동이 양반의 얼자라 불합리한 신분차별의 희생자이고 이에 대한 비판의식이 <홍길동전>에 담겼다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이상, 역사 속 홍길동은―2017년의 TV드라마 <역적>에서 상상력으로 묘사했듯이―임꺽정과 같이 부모 둘 다 천민 출신일 수도 있고 평범한 종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단지 서얼이라서 관직에 나갈 수 없게 만든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거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처지에 낙담했던 인물이 아니라, 불합리한 계급사회 전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전복을 꿈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그저, 의적 이상을 꿈꾸지 않은 천민이나 양민이었을 수도 있다. 
 
역사 속 홍길동(洪吉同)의 실제 모습을 우리가 알 수는 없으나, 중요한 것은 소설 속 홍길동의 둔갑법, 축지법 같은 도술이 사실은, 역사 속에서, 홍길동 같은 생각으로 홍길동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 출몰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임꺽정을 기록한 사관의 한탄처럼, 위정자들의 썩은 정치가 백성들에게 가중시킨 고통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공감하고 대응하는 이들은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백성들이며 현대식으로 치자면 국민들이다. 절대 다수를 구성하는 평범한 사람들, 이름이 있으나 이름이 없는 사람들(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의 아버지 이름이 ‘아모개’였던 것을 기억하자), 아무개, 무명씨로 역사책 한 귀퉁이에 이름을 적지 못하고 ‘작은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실상은 그 역사책 한 장 한 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큰 사람’들, 그들의 이름이 모두 홍길동이다. 
 
그 이름은 우리 모두의 이름이었고 이름이고 이름이리라
 
나무꾼 정길동
으레 심부름 잘못하는 오길동
곰보 유길동
김길동
나 줘
나 줘 하고 늘 손 벌리는 이길동
좀도둑 박길동
고분고분 성길동
강길동
철로가 양아치 최길동
 
이런 길동들
반도 산야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
그런 뒤
< … >
불멸의 이름이 떠돌고 있다
홍길동
 
누구나 그 이름을 안다
누구의 입에서도
그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러는 동안
그 이름은 힘이었다
 
언제부턴가
호적초본 서식에도
그 이름을 쓴다
이력서 서식에도
계약서 서식에도
그 이름을 쓴다
뒷날
출입국신고서 서식 성명란에도
반드시 홍길동이라고 쓴다
 
16세기 혁명시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 이래
그 이름은 노여운 고유명사였고 보통명사였다
너도
나도
아무개도 홍길동이었다
언제부턴가
이 강산의 무덤들도 홍길동이었다
(‘홍길동’, 16권)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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