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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넬, 당신들 ‘행복했으면 좋겠어’③
2018-11-25 18:00:00 2018-11-25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정규 6집 ‘Newton’s Apple’부터 꿈과 희망 등 스토리의 폭은 넓어졌지만 사실 밴드 넬(NELL)의 음악이 ‘어두운 감정’에서 비롯됐다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보컬 종완은 넬의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특정 감정 하나가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종완)음악이 어떤 하나의 영향을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 자체도 그래요. ‘나는 이것 때문에 이렇게 됐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 만의 요인 때문이 아닌 경우가 많거든요. 넬의 음악도 어두운 면 그런 것들이 구성했다기 보단 되려 반대로 그런 정서들을 우리가 음악으로 표출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거를 음악으로 풀 수 있다면, 그게 1차적으로 멤버 개개인한테 도움이 될 거고. 2차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위안이 된다거나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더더욱 좋은 거고. 오히려 음악이 그런 정서를 풀게끔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체도 음악을 하면서 얻게 된 성격적 혜택이 있는 것도 같아요.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친한 친구와 만나도 어두운 대화를 계속하긴 힘들거든요. 듣는 사람도 나중엔 짜증나고. 근데 음악은 사람들이 지닌 부정적인 얘기도 해소해주고, 때론 치유 작용도 해주는 좋은 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우중충한 무채색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넬의 음악. 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무채색의 광경이 있냐 묻자 보컬 종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종완)잠시 잊고 있던 거긴 한데, 제가 옛날 중학생일 때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를 이야기 하라 하면 한 장면처럼 기억이 되는 게 있는데, 1월12일 눈이 엄청 많이 온 날이었어요. 그때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저희 집에서 가까운 공중전화에 들어가 ‘눈이 너무 이쁘다’ 막 그랬어요. 나가서 만났죠. 그랬는데 정말 진부한 영화장면처럼 그 친구가 넘어졌어요. 그날 되게 흐리고 눈이 많이 오는 날씨였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색깔이 거의 없었던 것 같네요. 그냥 흰색, 회색, 검정색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장면이 제 기억에 사진첩처럼 남아 있어요.”
 
“(정훈)저는 그냥 인생이 무채색인 것 같아요. 칼라풀한 적이 없었어.” “(종완)아니 왜.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너 형광색 나시인가 셔츠 입고 있었잖아.” “(정훈)아, 그래서 그런건가? 주황색 티셔츠랑” “(종완)정확히 기억한다. 헤어밴드랑!” 다시 한번 멤버들이 사무실 떠나갈 듯 폭소했다.
 
밴드 넬의 연말 브랜드 공연 '크리스마스 인 넬스룸(CHRISTMAS IN NELL'S ROOM)' 공연 모습. 사진/네이버 브이앱 캡처
 
매년 연말 열리는 넬의 브랜드 공연 ‘크리스마스 인 넬스룸(CHRISTMAS IN NELL’S ROOM)’은 국내 공연 업계에 회자될 만큼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도 숲 같은 무대를 꾸미고 직접 조향사까지 동원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면서 입소문이 났다. ‘비현실’처럼 무대를 꾸몄다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종완)항상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꿈 같았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픈 느낌이 있어요. 그런 곳에서 연주를 꼭 해보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또 음반은 우리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공연은 우리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도 하고요. 시간과 돈, 비용을 들인 이들을 생각하면 그 순간 만큼 우리가 최고의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감각을 최대한 만족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정훈)실제로 작년 무대의 장미향과 비슷한 향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려는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들어온 순간부터 끝나기 전까지 공연장이 잠실인지 어딘지 전혀 생각 안 날 정도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어떤 생각을 하냐’고 묻자 대번에 교감을 하는 관객들이라 답했다. “(종완)무대 위에서 하는 생각은 95% 관객들이죠. 모니터 상으로 우리 음악에 빠져들 때도 간혹 있지만 그것 역시 관객 모습이 느껴질 때인 것 같네요.”
 
“신기한 일이거든요. 10명이든, 100명이든, 1000명이든 음악으로 대화를 한다는 게. 모르는 사람이 내 얘기인 것처럼 듣고 공감을 한다는 게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일상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거든요. 보고 있으면 때론 신기해요.”
 
최근 페스티벌 등 야외공연 라이브 중에는 불어오는 ‘바람’에 대해 생각할 때도 많다. “(종완)더운 여름이라도 저녁엔 해가 지면 바람이 불거든요. 특히나 바닷가. 템포감 있는 곡을 하다 조용한 노래를 한 두 곡 할 때 네추럴한 바람이 불어오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재경)아주 옛날인데 폭우가 내린 적이 있어요. 비가 많이 오는데도 멤버들하고 ‘나가자!’ 해서 나갔는데, 한 곡이 끝나기 전에 비를 맞긴 맞았어요. 오히려 근데 비가 그치면서 저희 음악과 어울리는 풍경이 나왔었어요. 야외 공연 때는 야외 공연 때 만의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올해 4월 열렸던 넬의 'NELL'S SEASON 2018 '.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내년이면 밴드는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평상시 그랬던 대로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정규 앨범 작업에 열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20년 전에 꿨던 꿈을 밴드는 얼마나 이뤘을까.
 
“(종완)이뤄진 것들도 많고, 앞으로 이뤄가고 싶은 것들도 많아요.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멤버들하고 얘기했던 게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말자 였어요. ‘계단식으로 가자, 한 계단 올라가면 어느 순간 올라 있을 거다’ 했었죠. 회사도 만들고 콘서트에 관객들도 많이 와주시고, 헤드라이너로 서고 이런 것들이 어렸을 때 꿈꾸던 것들이라 감사하게 생각을 해요.”
 
“(재경)기념일 때마다 팬 분들이 많이 챙겨주세요. ‘몇 년 됐어요, 몇 주년 됐어요’ 그런 이야기를 해주세요.”
 
19년 간 ‘장수’해 온 밴드로서 주류 음악 시장에서 밀려나는 국내 밴드씬에 대한 신중한 생각도 건넸다. 
 
“(종완)영화 ‘보헤미안랩소디’를 아직 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문득 생각이 들었던 건 퀸이면 한국에서도 주 팬층은 우리 혹은 우리 위의 연령대일 텐데 역시나 모두가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기고픈 욕구가 많았을꺼야 란 생각이 깊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그들이 소비할 문화가 너무 없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그걸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아 아티스트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주변에서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항상 ‘이거 해서 뭐해’ 하는 식으로요. 꼭 주류일 필요는 없는데… 꼭 1등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같은, 소위 말하는 주류에 속해있지 않은 이들에게도 우리만의 공간이 있고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Space’가 있거든요. 근데 그걸 보지 못하고 너무 ‘주류’에만 신경을 쓰는 아티스트들을 많이 봤어요. 그들과 소통하려는 이들을 외면해버리고는.”
 
“그렇다고 ‘우리는 잘하고 있어’ 이런 건 아니지만 우리와 같이 소통하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사실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 1명이라도 있으면 그건 되게 고마운 거거든요. 왜냐하면 정말 사실 ‘남’인데.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파이팅만 해줘도 기분 좋은 일이고 감사해야 할 일인데. 그렇게만 해줘도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복 받은 일이거든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 좀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팀도 알게 모르게 책임감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10년 후에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하면서 관객들과 소통을 한다면 그 모습을 보고 나오는 후배들도 분명히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저희도 오아시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왔을지 모르겠는것처럼. 항상 ‘음악 열심히 하면 저렇게 멋있게 살 수 있어’, ‘그러니까 힘들어도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했거든요. 물론 우리가 오아시스는 아니지만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후배들도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더 생산적인 음악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봐요.”
 
베이스 이정훈(왼쪽부터), 보컬 김종완, 드럼 정재원, 기타 이재경.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마지막으로 밴드의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달라는 질문을 건넸다. 앨범 커버에 손글씨로 ‘Thanks to our fans’라 쓴 메시지를 조금 더 섬세하게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종완)생각이 자주 나는 여행지? 우리가 살다 보면 되게 힘들다 할 때 생각나는 곳이 있어요. 같이 갈 때도 있고 따로 갈 때도 있는데, 굳이 너무 특별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힘들고 피곤하고 쉬고 싶을 때 가는 그런 여행지였으면 해요. 뭔가 특별해서 생각나는 게 아니라, 갔다 오면 재충전이 되고 힐링이 되고. 저는 우리의 음악이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재경)친구들하고 갔다 온 공간? 기억에 자리 잡고 있던 곳으로 다시 데려가 주는 그런 느낌이요.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또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지였으면.”
 
“(정훈)거기 갔을 때 만큼은 삶을 잠시나마 놓을 수 있는 공간, 우리 공연장 음악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고 거기에 힘을 얻어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원)꼭 특별한 곳이 아니어도 멀지도 가깝지도 않지만 자기 만의 추억이 있는… 그런 곳”
 
“(종완)혹시 자주 간다는 이태원 같은데?” 
 
진지해지던 분위기가 종완 덕에 다시 유쾌해진다. “하하하하.” “다음 앨범 콘셉트가 정해졌는데?”
 
같이 웃던 재원이 마무리를 지었다. 
 
“(재원)집 앞일수도 있고, 옥상일수도 있고, 사람이 많건 적건 자기만의 추억이, 기억이 조금이라도 있을 만한 곳이면. 넬의 음악이 그랬으면 좋을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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