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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역사의 공간 될 DMZ 내 GP
2018-11-10 12:00:00 2018-11-10 13:00:29
최한영 정경부 기자
기자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있는 ‘도봉 평화문화진지’는 스튜디오와 공연장, 전시실, 세미나실 등을 갖춘 문화시설이다. 이곳이 처음부터 문화시설이 아니었음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곳곳에 부자연스럽게 솟아있는 철골, 거친 시멘트벽이 이를 증명한다. 도봉 평화문화진지는 원래 북한군 전차가 서울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대전차 방호시설이었다. 탱크·소총수들이 들어갈 수 있는 벙커를 1층에 짓고 2∼4층에는 군인 거주용 아파트를 올렸다. 2004년 안전 문제로 아파트는 철거했지만 1층 시설은 10년 이상 방치되며 도시의 흉물로 남았다.
 
서울시와 도봉구, 관할 군부대 등은 논의를 통해 대전차 진지를 공간재생 방식을 활용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데 합의했다. 이제 평화문화진지에서는 각종 예술작품 전시가 이어지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며 영감을 얻는다. 평화문화진지 소개 글대로 ‘대결과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와 창조, 평화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대표적인 예다.
 
남북 군사당국은 지난 9월19일 체결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에 합의했다. DMZ 내 모든 GP 철수를 위해 우선 상호 1km 이내로 근접한 각각 11개를 올해 말까지 철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위해 11월 말까지 화기·장비·병력철수와 함께 시설물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달 5일, 국회 국방위 소속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DMZ 내 GP를 무조건 철거하기보다는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남북 간 우발적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화기·병력 철수는 필요하다”면서도 “최전방 GP자체는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파괴해서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독일은 베를린 장벽을 철거한지 2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역사유적지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한반도 평화정착이 실현되면 DMZ는 해마다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GP는 남북한의 미래 핵심 관광자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 의원의 주장이 통했는지 몰라도 국방부는 8일, 당초 철거키로 했던 GP 중 남북 각 1개소를 보존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측은 역사적 상징성 및 보존가치, 향후 평화적 이용 가능성 등을 감안해 동부전선 GP를, 북측도 자체 판단기준에 따라 중부전선 GP를 남기기로 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은 장소가 생각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군 입대 전 대학 동기가 기자에게 사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근처 한 식당의 보쌈 맛은 건물 재개발 여파로 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보쌈집과 달리 남북 각 한 곳의 GP는 살아남았다. 하 의원 설명대로 해당 GP는 “전쟁과 분단, 죽음을 넘어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성찰할 수 있는 역사의 공간”이 될 것이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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