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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세상읽기)지구를 떠날래, 나가 놀래?
2017-02-24 06:00:00 2017-02-24 06:00:00
“지구를 떠나거라.” 이 구절에 리듬을 실어서 읽는다면 독자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개그맨 김병조 씨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떠나라는 말은 더 이상 개그가 아니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리 인류가 2050년에는 달, 2100년에는 화성에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인류라는 종이 우주에서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지구가 척박해져도 그렇지 설마 화성보다야 못할까? 지구를 떠나려면 아예 멀리 가자.
 
우주의 다른 행성계를 찾아가자. 그런데 어디로 갈까? 1988년부터 2016년까지 지구의 우주물리학자들은 4천 개에 이르는 외계 행성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인류가 살기에 적당해 보이는 곳은 없다. 천왕성이나 해왕성처럼 가스로 된 행성이라면 발을 디딜 수가 없으니 소용이 없다. 어린 왕자가 살았다는 전설의 소행성 B612처럼 너무 작으면 중력 역시 작아서 대기를 품고 있을 수 없고, 반대로 목성처럼 중력이 커다란 행성에 들어가면 생명은 쪼그라들고 영원히 그 행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 태양계와 똑같은 행성계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지구의 과학자들은 이미 그것을 찾았다 지난 2월 22일 영국의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그 사실이 소상히 보고되었다. 국제공동 연구진들이 거대 지상망원경과 스피처 우주망원경으로 태양계 바깥을 관측하다가 태양계와 똑 닮은 행셩계를 발견했다. 중심에 있는 별의 이름은 트라피스트(TRAPPIST)-1. 태양 주변을 수-금-지-화-목-토-천-해 여덟 개의 행성이 공전하고 있는 것처럼 트라피스트-1에도 일곱 개의 행성이 돌고 있다.
 
그 전에도 복수의 행성을 갖춘 외계 행성계가 여러 개 발견되었다. 또 크기와 질량, 표면온도가 지구와 비슷한 행성도 각기 다른 곳에서 스무 개 이상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껏 거기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어쩌겠는가? 하나만 보고 가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 하지만 트라피스트-1의 행성계는 다르다. 일곱 개의 행성 모두 크기와 질량이 우리 지구와 비슷하다. 전부 제2의 지구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트라피스트-1 행성들의 공전주기는 1.5~20일이다. 수성의 공전주기 80일보다 훨씬 짧다. 이것은 중심별과 아주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뭐야! 그렇다면 너무 뜨거워서 물이 없다는 이야기잖아!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태양의 표면온도가 5,500도인데 트라피스트-1의 표면온도는 3천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크기도 태양의 천 분의 1밖에 안 된다. 별이 작다는 것은 그 주변에 있는 행성에게는 큰 행운이다. 작은 별은 에너지를 천천히 소모하기 때문에 수명이 길다. 태양은 이미 수명의 절반이 지났다. 50억 년만 있으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주변의 행성을 집어삼키지만 트라피스트-1은 그때도 여전히 유아기 상태다. 행성들은 여전히 안전하고 그 안에 있는 생명체들에게는 진화할 수 있는 시간이 무궁하다. 과학자들은 트라피스트-1의 다섯 번째 행성에 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로 가자.
 
단 한 개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거리다. 트라피스트-1까지의 거리는 불과 39광년. 빛의 속도로 39년만 가면 도착한다는 말이다. 현재 개발된 우주선의 최고 속도는 초속 25킬로미터. 이 우주선을 타고 가려면 1만 2천 년쯤 걸린다. 다만 거기에 실어야 할 에너지 무게는 따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구에는 트라피스트-1까지 유인우주선을 보낼 에너지가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음, 지구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계 행성으로 이주할 노력과 에너지로 차라리 지구를 지켜보자.”라고 마음을 다잡으려는데 트라피스트-1 행성계 발견과 함께 황당한 소식이 전해졌다. 아제르바이잔의 알리예프 대통령은 2003년 아버지에게서 대통령을 물려받은 이후 헌법을 고쳐가면서 여태 대를 이어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가 이번에는 대통령 유고시 권한을 이어받는 수석 부통령에 자신의 아내를 임명하고 20대와 30대인 두 딸이 언제라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대통령 피선거권 하한 연령도 폐지했다. 21세기에 봉건왕조를 건설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게 카스피해의 먼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3대째 한 가족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북한이나 오로지 선친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정농단 세력에게 권력을 넘기고도 뻔뻔함을 감추지 않는 우리나라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이대로는 못살겠다. 지구를 떠나란 말은 차마 못 하겠다. 다만 김병조 씨의 다른 유행어 하나를 빌린다. “나가 놀아라.”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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