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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세상읽기)명예혁명
2017-01-12 13:41:23 2017-01-12 13:41:23
“국왕은 신에게만 책임이 있고 신하에게는 책임지지 않으며,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국왕은 곧 법이다.”
1970년대 고등학생에 다닐 때 국민윤리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왕권신수설’이다. 선생님은 왕권신수설을 옹호하시면서 학생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셨다. 천부적인 모범생이었던 내게 박정희 대통령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영생불멸의 왕이었다.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는 자신이 주창한 왕권신수설에 반발하는 의회를 해산했다. 이것이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의 근거라고 알려주시던 선생님의 가르침이 생생하다. 하지만 제임스 1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의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세금을 거둬야 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소집된 의회는 국왕과 갈등을 벌이다가 찰스 1세가 권리청원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세금 부과에 동의했다.
권리청원에는 의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세금을 걷을 수 없고, 평화시에는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으며, 재판을 거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체포와 구금당하지 않으며 재산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헌법의 근간이 되는 것들이다. 이때가 1628년이다. 그런데 2017년 서울 한복판에서 백주대낮에 ‘계엄령 즉각 선포’라는 손팻말을 보고 있다. 1970년대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찰스 1세는 금방 배신했다. 다시 의회를 해산하고 권리청원을 무효라고 선언하고 세금을 징수했다. 이후 몇 차례의 내전을 거치다가 1649년 1월 30일 대역죄로 처형당했다. 국왕을 처형한 의회는 잉글랜드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며 호국경(護國經)으로 올리버 크롬웰을 선출했다. 의회에서 권력을 부여받은 크롬웰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역사에 ‘군사독재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선생님과 학생 모두 혼란스러웠다. 왕권신수설에 대한 반대자가 군사독재자라니…. 군사독재자는 박정희 대통령인데, 박정희 대통령은 왕인데….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선생님은 이 부분에서 얼버무리셨다.
 
1658년 크롬웰이 죽었다. 찰스 1세의 목을 자르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군사독재자가 죽은 것이다.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왕정의 폐해는 이미 아득해졌고 군사독재자의 압제는 선명했다. 망명 생활을 하던 찰스 2세에게 잉글랜드에 귀환해서 왕정을 복고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잉글랜드에는 크롬웰과 함께 청교도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찰스 2세가 두려웠다.
 
찰스 2세는 청교도혁명 잔재 세력을 안심시켜야 했다. 그는 망명지인 네덜란드에서 혁명 가담자를 모두 용서하고 재산권마저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복수를 두려웠던 세력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왕정복고에 협조했다. 크롬웰이 죽은 지 2년이 지난 1660년 찰스 2세가 런던에 입성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왕의 귀환을 환영했다. 시민들은 찰스 2세가 입헌군주제를 따르는 절도 있는 왕이 되기를 바랐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던 51.6퍼센트의 투표 유권자의 심정이 그러지 않았을까? 부모님을 모두 흉탄에 여의고 오랜 세월동안 와신상담하던 그가 절도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애당초 왕의 약속을 믿은 사람이 바보였다. 찰스 2세는 아버지를 죄인으로 몰아 처형한 정적들의 이름을 모은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때 살생부를 뜻하는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처음 생겼다. 블랙리스트에는 아버지 사형 판결에 서명한 판사들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 찰스 2세는 이 가운데 아직 살아있던 열세 명을 처형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청와대는 단지 문화예술계 인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분들은 그 동안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럽다.
 
찰스 2세의 궁정생활은 화려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무능했다.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줄타기 외교를 하는 대신 프랑스와 로마 가톨릭에 일방적인 관용 정책을 펼치며 외교에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와 1300조가 넘는 국가 부채,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마치 거울처럼 비쳐진다.
 
1688년 의회는 찰스 2세를 페위시켰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국왕을 교체했다고 해서 ‘명예혁명’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지금 명예혁명 중이다. 권력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탁할 뿐이다. 절대로 양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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