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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농부에 투자하고 먹거리로 돌려 받는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2016-07-28 15:02:19 2016-07-28 15:22:01
 
 
농촌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농촌 빈집이 해마다 늘고 있다. 살림살이도 마찬가지다. 설상가상, 허물어지는 무역 장벽에 농부들은 수입농산물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농민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삽과 곡괭이를 들고 논밭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부채는 줄지 않는다. 빚내서 농사를 짓고 수확해 빚 갚는 게 되풀이된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격이다. 자금과 판로 확보는 여전히 농민들의 걱정을 키우는 요인이다. 농사펀드는 농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소셜벤처다. '농부가 별다른 걱정 없이 농사만 짓게 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설립됐다.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방식 중 하나인 크라우딩 서비스를 농촌에 적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농부들에게 투자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로 돌려 받게 된다. 이 같은 펀딩을 계획한 건 1980년생 30대 CEO다. 농촌에서 생활한 적도 없는 박종범 대표가 농사펀드를 기획해 법인을 설립한 데는 지난 13년간의 농촌관련 경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20대 중반부터 농촌에 대해 고민하고 농민들의 삶을 가까이서 접해온 그다. 때문에 농부의 걱정은 결국 박 대표의 걱정이기도 했다. 농사펀드로 위기에 처한 농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농촌 살리기 전도사' 박종범 대표를 직접 만나봤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대중에게서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매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없는 경우, 해당 프로젝트를 올려 일반인들의 투자로 자금을 모으는 식이다. 자금에 목마른 스타트업에게 단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농사펀드는 농촌과 크라우드 펀딩의 만남에서 탄생했다. 농부가 농사계획을 밝히면 투자자들의 투자가 이뤄진다. 그 투자금액으로 농부는 계획한 농사를 시작하고, 투자에 대한 보상으로 수확한 농작물을 투자자에게 나눠준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빚에 허덕이는 농부들을 위한 새로운 시도다. 농부들에게 빚 걱정을 덜어주는 농사펀드를 만든 이가 박종범 대표다. 농사보다 게임이 어울리는 30대 나이의 박 대표가 어떻게 농촌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됐는 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관련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농촌마을 컨설팅업체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영향이 컸죠. 이어서 정보화마을 사업단, 총각네 야채가게 등에서 일하며 농촌과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점점 농촌 문제도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가 직접 느낀 농촌은 TV 브라운관을 통해 접했던 평온한 곳과는 달랐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어요.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빚을 지게 되고 수확 전까지는 휴대폰 요금도 못내면서 생활하는 농부도 많습니다. 수확하면 그제서야 빚진 것을 갚게 되고, 또다시 남는 현금은 없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한꺼번에 돈이 나가고 들어오니까 계획적으로 지출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됩니다." 박 대표가 본 농촌 현실은 심각했다. 이 같은 걱정이 박 대표를 움직이게 했고, 그 결과 농사펀드가 설립됐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사진/농사펀드
 
농가 250곳, 투자자 5000여명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2013년 농사펀드를 시작할 당시 펀딩에 참여한 농가는 단 한 명. 충청남도 부여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부가 첫번째 펀딩 대상자이자 단 한 명 뿐인 참여자였다. 그는 자연농법의 쌀농사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투자자를 모았다. 당시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는 25명, 투자금액은 250만원이었다. 목표금액 41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박 대표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농가를 방문해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는 등 펀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 결과 다음해인 2014년 목표금액 730만원을 훌쩍 넘는 1300만원이 투자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때만 해도 농사펀드는 법인이 아닌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당시 직장에 다니고 있던 터라 업무 외 시간에 프로젝트 형식으로 농사펀드를 운영했던 것이다. 박 대표는 '제대로' 농사펀딩을 운영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 회사의 사원에서 농사펀드 대표로 명찰을 바꿔 달았다.
 
하나의 프로젝트였던 농사펀드가 법인으로 설립된 것은 2014년 11월. 2015년만해도 펀딩을 받는 농가는 두 곳뿐이었다. 농사펀드의 취지가 알려지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해 소비자들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현재는 250개의 농가가 펀딩에 참여하고 있다. 첫해 25명이었던 투자자도 5000명이 훌쩍 넘었다.
 
박종범 대표와 직원 3명이 함께 농사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농사펀드
 
"스토리가 있는 펀드…농촌 직거래와 달라"
 
농사펀드는 농산물 직거래와 무엇이 다를까. 농부와 공감대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투자자는 농부가 올린 농사계획을 보고 투자하게 된다. 농사 과정을 지켜보기 때문에 수확물을 받았을 때 가치소비도 함께 이뤄진다.
 
"농사펀드 역시 전자상거래의 일종이지만 처음부터 농사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변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한 농부가 쌀 도정시기에 아파서 일주일정도 일을 못했는데, 투자자들이 오히려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모습을 봤습니다. 농사펀드는 투자자들이 투자한 후 적게는 한두 달 많게는 6개월 이상 지나고 수확물을 받게 되죠. 전자상거래는 하루 만 배송이 늦어도 소비자 불만이 나타나지만 농사펀드는 농부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하루 이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없습니다."
 
농사펀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좋은 농산물의 기준도 바로 잡았다. 박 대표는 사과를 한 예로 들었다. 사과의 경우 과실 전체를 빨갛게 만들기 위해 과실 주변의 이파리를 딴다. 또 나무 밑에 반사판을 대기도 한다. 힘은 힘대로 들고, 비용은 비용대로 든다. 그렇다고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농사펀드는 투자자에게 재배 방법을 소개하면서 이 같은 내용도 설명해준다. 농사펀드를 통한 소통으로 농부는 노동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소비자는 자연 그대로 재배한 농산물을 먹게 되는 셈이다.
 
불안한 먹거리 중 하나인 명란젓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명란의 색을 붉게 보이기 위해 발색제를 첨가하고,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가격 또한 높아지는 문제점이 있다. 농사펀드에서는 미리 투자액을 모아 원재료를 확보하고 믿을 수 있는 농가에 가공처리를 요청한다. 이 펀딩에는 402명이 공감해 투자했으며, 1600만원의 투자액이 모아졌다.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은 직거래와 동일하다. 때문에 투자자들이 펀딩으로 받는 수확물은 시중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10~15% 더 저렴하다. 농부에게도 이득이다. 유통과정을 거치게 되면 100원 가운데 40~50원을 농부가 갖고, 나머지는 중간 유통상인이 나눠 갖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농사펀드의 경우 중간단계가 없어지면서 농부는 10~15%의 수익을 더 가져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중간 플랫폼인 농사펀드는 투자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받아서 운영되고 있다.
 
박 대표의 중장기적 목표는 1000명의 농부가 펀딩에 참여하는 것이다. "농부가 아무런 걱정 없이 농사만 짓고, 투자자는 믿을 수 있는 먹거리로 돌려 받으며 가치있는 소비를 이어가는 것. 우리의 미션이 널리 확산돼서 농촌에 활기를 되찾아 주고 싶습니다." 그의 눈빛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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