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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IT대기업' 네이버가 가야할 길
2021-07-29 06:00:00 2021-07-29 06:00:00
초록색 네모 검색창, 날개 달린 모자, 그리고 전지현. 포털 춘추전국시대가 벌어지던 2000년대 초반 네이버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초록 네모 창을 통해 자유롭게 탐험하는 이미지의 일명 전지현 광고를 전면에 내세우며 성큼 대중의 마음에 들어왔다. 이 전까지만 해도 네이버는 벤처기업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회사였다. 한메일과 카페 서비스를 앞세우며 승승장구했던 다음 포털과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옛 외국계 포털들의 각축전 속에 낀 네이버는 당시만 해도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러던 회사가 지식인 검색과 광고 마케팅에 힘 입어 퀀텀 업 점프를 해 한국 시장을 평정하고 마침내 대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불과 창립 20년만의 일이다. 
 
최근 네이버의 직장 내 괴롭힘과 이에 따른 직원 사망 소식은 그래서인지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네이버가 공정위로부터 대기업으로 지정된 것은 올해 5월의 일이다. 대기업이 됐다는 사실도 아직은 어색한 마당에, 대기업에서도 요즘엔 좀처럼 불거지지 않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올해 네이버를 강타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네이버를 포함해 IT업계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첫 해이기도 하다. 혁신과 자유를 가치로 내세우는 IT기업, 그중에서도 국내 대표적 기업으로 손꼽히는 네이버가 대기업 반열에 오르자마자 참담한 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참으로 심란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노동부의 네이버 특별근로감독 결과, 직원의 절반 이상이 6개월 내 1회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도 한다. 도대체 네이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네이버의 대응이다.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는 해당 사안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고, 이 점이 논란이 되자 본사에서 맡은 직책에선 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네이버파이낸셜과 해피빈재단 대표 등 계열사 경영진 자리는 유지 중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죽은 사건이다. 해당 임원은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비호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네이버가 굳이 이를 품고 가려 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브랜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광고·마케팅으로 기업의 기반을 마련했던 네이버의 과거를 떠올릴 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내에서 이제는 자율과 혁신보다 조직의 성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돼 버린 것일까. 아니면 독점적 플랫폼이라는 지위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치게 커져버려 이 정도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묻힐 일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것일까.
 
정보통신 기술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보통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에게 이롭고 편리한 세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경시하는 문화를 퍼뜨리게 될 것이라는 회의다. '믿음'이 '회의'를 이겨냈으면 좋겠고, 그 선봉에 네이버가 있었으면 한다. 또한 'IT대기업'으로서 새 이정표를 세워나가는 데도 기업 규모에 맞게 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 한국은 혁신적인 대기업의 탄생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네이버가 너무 늦지 않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올바로 인식하길 바란다. 
 
김나볏 중기IT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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