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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미드나이트’, 소리까지 보이게 만든 극강의 스릴러
기존 추격 스타일+딱 한 가지 다른 점 ‘주목’…“소리가 없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그리고 청각장애인 여성 추격 ‘긴장감’ ↑
2021-06-23 12:20:46 2021-06-23 12:20:46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추격은 구조적으로 가장 단순화 시켜야 한다. 쫓는 사람이 있고 쫓기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주변 요소는 미장센이란 장치로 풀어가만 그만이다. 때문에 장르 영화에서 추격은 가장 변주가 많다. 더하고 더할 요소만 차고 넘친다. 이런 간단명료한 플롯 탓에 국내 상업 영화 평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지는 개연성 부분에서도 상당히 자유롭다. 쫓는 자는 그럴 만한 이유를 안겨주면 된다. 쫓기는 자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쫓는 자쫓기는 자사이 유기적 관계를 형성시키는 게 관건이다. 씨줄과 날줄로 복잡하게 엮여 있는 2중 또는 3중 구조 복합 반전도 필요 없다. 이런 구조적 설계가 필요 없기에 반대로 얘기 흐름이 간결해야만 한다. ‘미드나이트는 이런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 여기에 공간까지 한정적이다. 시간적 제약도 제목 그대로 하룻밤 동안에 그려진다. 메인 플롯에 등장하는 인물도 극히 제한적이다. 그들은 쫓는다. 그리고 쫓긴다. 물론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그 지점이 미드나이트를 기존 추격스타일 스토리와 완벽하게 차별화 시킨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긴장감이 스크린을 뚫고 공간을 지배할 정도다.
 
 
 
미드나이트는 기존 추격극과 딱 한 가지가 다르다. 주인공 경미(진기주)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엄마(길혜연)와 함께 재개발 진행 중인 허름한 철거예정 동네에 산다. 그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그게 장점이 될 데가 많다. 가기 싫은 회사 회식 자리에서 자신을 향한 성희롱에도 그는 장애를 십분 활용해 상대방에게 시원한 한 방을 날린다. 그에게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일 뿐 힘든 것이 절대 아니다. 경미는 밝고 건강하다. 그런 경미에 이상한 밤이 찾아온다.
 
경미가 사는 동네 입구 근처, 낯선 승합차 한대. 도식(위하준)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하지만 태도가 묘하다. 한 여자의 등장에 눈빛이 반짝인다. 경미의 엄마. 도식은 차에서 커다란 공구 하나를 손에 쥔다. 어두컴컴한 길. 경미 엄마도 청각장애인. 도식이 뒤에서 쫓아오는 걸 알지 못한다. 큰일이다. 바로 코앞. 도식이 공구를 치켜 든 순간. 골목길에서 또 다른 여자가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며 나타난다. 오빠 종탁(박훈)과 둘이 사는 소정(김혜연). 도식은 경미 엄마와 소정을 번갈아 본다. 비릿한 웃음과 함께 소정으로 타깃을 바꾼다.
 
영화 '미드나이트' 스틸. 사진/CJ ENM
 
사건은 도식과 소정 그리고 경미가 우연히 엮이면서 벌어진다. 차를 주차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가 있던 곳으로 가던 중 경미는 소정의 구조 신호를 보게 된다. 경미가 도식의 범죄 현장 목격자가 된 셈이다. 도식은 그때부터 경미를 쫓기 시작한다. 경미는 사력을 다해 도식의 추격을 피한다. 어두컴컴한 길과 길, 골목과 골목 그리고 지하 주차장.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하지만 경미가 도망칠 때마다 도식은 귀신같이 그의 뒤를 쫓아 찾아낸다. 흡사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육식 동물이 먹잇감을 잡아 곧바로 죽이지 않고 놔줬다 풀어주고 놔줬다 풀어주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추격과 도망이 계속된다. 쫓는 도식은 보이고 들린다. 도망치는 경미는 보이지만 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항상 경미 등 뒤에서 도식은 특유의 웃음을 짓는다. 경미는 엄마까지 위험에 끌어 들일 수 없다. 그리고 소정의 오빠 종탁은 동생을 찾아야 한다. 도식과 경미의 쫓고 쫓기는 추격, 그리고 경미 엄마와 종탁의 애타는 마음. 이날 밤 어두컴컴한 골목과 골목이 연결된 인적 드문 동네는 악마의 웃음 소리로 가득 찬다.
 
미드나이트는 기존 추격 플롯 영화와 전혀 다른 지점 한 가지, 바로 청각장애를 적극 활용한다. 문제는 국내 상업 영화 속 스릴러 장르가 다른 지점에 욕심을 부릴 경우 장르적 장점이 단점으로 부각될 여지가 크단 점이다. 이런 점은 추격을 내세운 스타일 영화가 구조의 단순화를 거듭하면서 반대급부로 부각된 지점이다. 이런 구조화라면 미드나이트는 스릴러 요소를 압도적으로 부각시켜야 할 스타일에서 오히려 반감만 드러낼 차별성에 주목하는 악수를 둔 셈이다. 하지만 그 악수미드나이트는 영리한 방식으로 풀어간다. 소리를 시각으로 변주한 방식. 소리는 들리지만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봐야만 하는 비주얼이다. 추격은 극단적으로 시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문장을 하나로 연결하면 답은 간단하다. ‘소리가 보여야 한다란 점.
 
영화 '미드나이트' 스틸. 사진/CJ ENM
 
미드나이트는 경미의 청각장애를 위해 실제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비장애인들은 전혀 알 수 없는 전문 생활 장비가 등장한다. 소리에 반응하는 전등, 소리에 반응하는 데시벨 측정기 등. ‘살인마도식의 추격과 긴박감을 이 장비들을 활용해 비주얼로 전환시킨다. 긴장감이 눈에 보이니 관객은 오롯이 경미의 감정으로 빠져들게 된다. 바로 등뒤에서 비린내 가득한 웃음을 뿜어내는 도식의 기운이 관객 각자의 등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긴장감과 긴박함은 순수한 감정이다. ‘미드나이트는 이걸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짜 오롯이 눈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육체적 추격. 도식과 경미, 경미 엄마와 종탁의 추격. ‘추격이란 단어 하나로 설명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레퍼런스 가운데 나홍진 감독 추격자가 있다. ‘추격자가 이유 불문 추격에 방점을 찍었다면, ‘미드나이트는 완벽하게 조율된 피아노 연주곡 같은 느낌이다. 휘몰아치는 감정과 소리 없이 기어가는 듯한 리듬의 조율 극단성이 도식과 경미의 추격전에 고스란히 삽입됐다. 이 점은 미드나이트를 관람하면 온 몸의 촉각으로 관람의 쾌감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다.
 
영화 '미드나이트' 스틸. 사진/CJ ENM
 
진기주의 청각장애인 연기는 실감난다. 수어통역사란 직업적 설정을 적극 활용해 추격에 삽입한다. 소리가 안 들리기에 추격 이후에도 긴장감은 여전하다. 때에 따라선 긴장감이 안도감으로 변주되는 지점도 등장한다. 소리와 감정의 조율 배분을 탁월하게 이용한 진기주의 소화력이 눈에 띈다. 진기주를 능가하는 위하준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연기는 추격자의 하정우가 그려낸 지영민을 넘어설 정도다. 그는 무자비하면서도 계획적이고, 계획적이면서도 즉층적이며, 즉흥적이면서도 지능적이다. 이 모든 게 미드나이트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황을 이용하고 공간을 이용하며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심리전까지 악마 그 자체로 등장한다.
 
영화 중반과 후반 지점, 다소 도식적인 장치적 설정들. 무능력한 경찰의 모습, 청각장애인(특정 장애가 아닌 장애인 자체) 행동에 대한 몰이해와 사회적 편견 그리고 선입견 등은 감독과 작품의 주지적 교훈일 수 있다. 물론 이 지점이 미드나이트를 다운그레이드 시킬 요소는 절대 아니다.
 
영화 '미드나이트' 스틸. 사진/CJ ENM
 
오랜만에 등장한 콤팩트한 밀도의 극강 스릴러다. ‘미드나이트의 유일한 오점이라면 블록버스터로 기획되지 못한 결제자의 판단 미스뿐이다. 개봉은 오는 30.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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