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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삼토반’ 고아성 “보시고 나면 정말 시원하실 거에요”
“시나리오 읽고 ‘제목은 페이크였군’ 알았다, 출연 욕구 강하게 생겨”
“‘불의’를 보고 고민하는 순간, 한 발짝 나아가느냐 마느냐 그게 중요”
2020-10-21 00:00:01 2020-10-21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선 도대체 몇 살인데 직장인 콘셉트를이란 의문이 들었다. 당연히 착각이었다. 2006년 영화 괴물속 이미지가 아직도 너무 강했나 보다. 아역배우 출신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만, 배우 고아성은 올해 29세다. 내년이면 30대에 접어든다. 워낙 동안이라 그랬을 수도 있을 듯싶다. ‘벌써 30대냐는 질문에 쑥스러운 웃음으로 대신하는 고아성이다. 먼저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분명히 보였다.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질문을 해도 제대로 답변을 하기 힘들어 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때문에 귀를 기울이고 정말잘 들어야 들릴 듯 말 듯 했으니. 이 역시 웃는다. 그랬었단다. 하지만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을 작업하면서 극중 이자영처럼 꽤 많이 외향적으로 변한 듯했다. 본인도 인정한다. 뭐가 어떻게 자신을 바꿨는진 모를 일이라면서. 흔히 말하는 배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그런 느낌은 아니다. 며칠이 걸릴지 아니면 몇 달 뒤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예전의 고아성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란다. 물론 지금의 고아성이 더 편해 보였다. 여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분명히 성숙해 보였다. 29세의 여배우에게 성숙이란 단어를 쓰기가 무례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그래 보였다. 고아성은 어쩌면 이제서야 첫 번째 껍질을 깨트리고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언론 시사회 이후 쏟아지는 호평은 주연 배우인 고아성을 분명히 들뜨게 했다. 얼굴에 특유의 미소가 가득했다. 당연히 주연 배우로서 지닌 무게감은 작품의 흥행과 결과물의 완성도, 그리고 주변의 평가로 시작된다. 그 시작이 아주 좋다.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과는 함께 작업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잘 알고 지냈다. 이번 시나리오를 받으면서 뭔가 조짐이 괜찮았단다. 제목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
 
제목이 되게 묘하잖아요(웃음).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적은 없는데 잘 알고 지낸 사이에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의외다.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찍으려고 하시는구나싶었죠. 그리고 다 읽고 나자, ‘제목은 페이크였구나(웃음)’란 생각이 딱 들었어요. 처음 시나리오 느낌은 밝고 유쾌했지만 그 뒤에 이면이 있잖아요. 그게 너무 강하게 다가왔어요. ‘이건 내가 꼭 연기로 풀어봐야겠다는 욕구가 컸죠.”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995년이 배경이다. 지금과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하늘과 땅 차이였던 시절이다. 29세의 고아성이 비록 연기지만 여성으로서 영화에서 겪은 상황은 지금의 2020년이라면 사실 말도 안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1992년생으로 영화 속 배경 당시에는 겨우 네 살이었다. 주변 어른 들에게 전해 들은 말도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럼에도 기억에서 울컥 했던 몇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며 웃는다.
 
진짜 연기지만 정말 울컥해서 눈물이 나올 뻔한 장면이 있었는데, 김태훈 선배가 저한테 아가씨 담배 한 갑만 사다 줘요란 대사가 너무 가슴 아팠어요. 저 진짜 태훈 선배님 너무 좋아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너무 서운해서 하하하. 그 외에도 전부 신기한 것 투성이였죠. 영화 오피스때 사무실을 경험했지만, 1995년의 회사 사무실은 정말 다르더라고요. 여직원들의 주 업무도 지금 생각하면 참 씁쓸했어요.”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여직원들의 주된 업무가 쓰레기 치우기, 커피타기, 담배 심부름, 구두 심부름, 서류 정리 등등이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 시대를 살아온 윗세대의 고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사실 이런 큰 지점은 연기로 커버할 수 있지만 정말 디테일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영화 속에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나갈 부분을 많은 선배 남자 배우들이 아이디어와 정보 수집을 통해 고아성을 중심으로 한 여성 3인방 주연들에게 전수해 줬다고.
 
김원해 선배님이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실제로 선배님 지인 분 중에 딱 그 당시에 대기업에 근무하셨던 여성분이 있으셔서 많은 부분을 도움 받았어요. 당시 고졸 말단 여직원은 전화기를 받을 때 무조건 왼손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도 있었죠. 왜 그런지 아세요?(웃음) 오른 손으론 받아 적어야 하니까 그랬었대요. 그리고 지금은 사이드미러라고 하지만 그땐 무조건 백미러라고 불렀단 점도 흥미로운 디테일이고. 하하하. 또 실제로 아침마다 체조도 했대요. 정말 신기하죠.”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신기하고 생소한 공간에서 혼자 있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지 모른다며 웃는다. 영화 속 3인방 이자영(고아성)과 함께 유나를 연기한 이솜 그리고 보람을 연기한 박혜수가 있었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단다. 세 사람은 극중에서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내면서도 각자의 확실한 역할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위험에 대처한다. 누구 하나 빠짐이 없이 완벽한 합을 이룬다.
 
말씀하신 대로 저를 포함해 세 명의 합이 정말 중요했어요. 사건의 핵심은 제가 연기한 자영을 통해 시작하지만 과정부터 결과까지의 끌고 가는 동력은 유나와 보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처음 두 분과 만났을 때 정말 30분 정도 지나자 우리 모두가 이게 되겠다싶었어요. 저희 모두 스타일이나 연기 성격 모두 다른데,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같았어요. 이건 여성 영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얘기를 담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개연성이란 기준을 따지고 든다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일부 관객들이 흡집을 잡을 순간도 등장은 한다. 자영이 목격한 불의’, 그리고 자영이 왜 그토록 그 순간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감정이다.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그냥 모른 척 하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선 그 사건을 향해 말단 여사원 3인방은 거침없이 직진을 택한다.
 
배우 고아성인 저도 그렇고, 제가 연기한 이자영으로서도 그렇고, 또 영화를 보시는 관객 분들도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자영이 겪는 고민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닐까 싶어요. 불의를 봤으면 당연히 고민을 하겠죠. 그 고민에서 한 발짝을 더 나아가느냐 마느냐의 문제잖아요. 그 고민의 순간에 누군가와 교감을 나누면 그 고민은 반이 되잖아요. 유나와 보람의 역할. 그래서 이 영화는 여성 영화라고 부르기 보단 힘 없는 약자들의 얘기라고 생각해요.”
 
힘 없는 약자들의 얘기. 그 지점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촬영 전 이종필 감독이 고아성에게 직접 자필로 쓴 편지에도 담겨 있었단다. 그 안에서 고아성은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영화 속 통쾌한 한 방, 그리고 톡 쏘고 시원한 사이다 한 방으로 등장한다. 요즘 같은 괴롭고 어려운 시기에 이런 영화 한 편이라면 모두에게 괜찮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단다.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감독님이 촬영 전 주신 편지에 써 있던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 영화는 꼴찌들에게 보내는 갈채라고. 눈에 띄지 않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통쾌한 승리를 담은 얘기라고. 감독님이 주신 편지를 읽고 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제일 먼저 캐스팅 되고 이후 시나리오가 몇 번 고쳐지면서 감독님과 나눈 많은 얘기들. 그 순간들이 지금도 아득하게 느껴져요. 정말 많은 감정인데, 한 가지만은 아주 확실해요. 보시고 나시면 너무도 시원하실 거에요. 그건 장담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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