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규제는 내가 풀게, 감독은 누가 할래
입력 : 2020-06-29 06:00:00 수정 : 2020-06-29 06:00:00
이종용 증권데스크
1990년대 말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나오는 '미달이 엄마'의 유행어가 얼마전 재주목을 받았다.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라며 천연덕스럽게 남에게 일을 떠넘기는 대사다. 인터넷에서는 "월급은 내가 받을게, 출근은 누가 할래" "술은 내가 마실게, 술값은 누가 낼래"라는 재미있는 비유도 쏟아졌다.
 
시간을 역주행한 유행어를 빌려 "규제는 내가 풀게, 감독은 누가 할래"라는 비유를 해본다.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는 사모펀드 사건·사고에 대처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두고서다.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사모펀드 전수조사' 발언으로 당국 내부가 시끄럽다. 은성수 위원장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1만여개 사모펀드 전체를 점검해 보면 어떨까 한다"고 했다.
 
지난해 라임자산운용 사태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옵티머스자산운용사에서 잇달아 사고가 터지면서 사모펀드 시장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조만간 추진 계획을 내겠다고 하니 엄포로 그칠 일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해야하느냐다. 전수조사를 집행해야 하는 기구는 결국 금감원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금융위가 금융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을 총괄하고 있으면서, 금감원이 금융위부터 감독 집행 권한을 위탁받은 구조다. 금융위가 금감원의 상급기관으로 있는, 정책과 감독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다.
 
금감원 노조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금융위원장을 비난했다. 성명서를 통해 "비난의 화살을 금감원으로 돌리고 금융위의 원죄를 덮으려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며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분리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감독체계 개편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번 사모펀드 전수조사 문제를 해묵은 논쟁인 감독체계 개편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금융위원장이 '1만개 전수 조사'의 실현 가능성을 알고 한 말인지는 짚고 가고 싶다. 금감원과의 협의를 거치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금감원 내부의 반응을 봐서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금감원 검사국 실무진이 고민하는 것은 검사의 폭이 아니라 깊이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사태가 걷잡기 힘든 상황인데 사모 운용사의 등록 서류만 갖고 재무 상황만 볼 수는 없다. 공모 펀드와 달리 주기적 공시 의무가 없는 사모펀드는 펀드 하나의 투자 자산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려면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펀드 판매사와 수탁사에 상호 감시 책임을 지우고 있다. 라임 펀드 사태의 후속으로 금융위는 지난 4월 이런 내용의 사모펀드 관리·감독 개편 방안도 내놓았다. 그마저도 관련 법이 바뀌지 않고서는 무용지물이다. 금융위의 '전수 조사' 카드가 실효성이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모펀드 시장의 비약적 성장은 금융위가 2015년 규제를 대폭 풀면서 시작됐다. 한국형 헤지펀드 최소 가입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춘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사모펀드가 일반 고객들에게 대중화된 배경이다. 퇴직자나 가정 주부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1억을 마련해 사모펀드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사모펀드 조사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추가 대책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모펀드 문제가 불거진지 1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들여다보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사모펀드 활성화라는 과거의 정책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금융위원장의 사모펀드 전수조사 발언에 명분과 실리가 모두 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종용 증권데스크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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