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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법원 "'쇼트트랙 국가대표' 노진규 사망은 의료사고"
K병원, 골육종인데 '양성 종양' 판단…유족에 "4500만 배상"
"국가대표선수들 인권 침해 문제 소송…같은 일 반복되지 않아야"
2020-06-04 15:28:04 2020-06-04 22:34:23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한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간판이었던 고 노진규 선수의 유족들이 K병원 상대의 의료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노 선수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골육종(뼈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 진단을 받은 후 2016년 세상을 떠난 지 4년만이다.
 
4일 법원 등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민사13부(재판장 최규연)는 노 선수의 부모와 누나인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노선영 선수가 K병원과 담당 의사 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부모에게 각각 2000만원씩, 누나에게 500만원, 총 4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3년 12월 당시 '26회 트렌티노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고 노진규(가운데) 선수. 사진/뉴시스
 
노 선수 유족 측 대리인에 따르면 2011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로 평가받은 노 선수는 2013년 9월 월드컵 시리즈 1차 대회를 마친 이후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그는 10월 대한빙상경기연맹과 연결된 K병원에서의 조직병리검사 결과 거대세포종, 즉 힘줄막에 생기는 양성 종양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이후에도 통증은 지속됐지만 담당 의사 박씨는 거대세포종이라는 소견을 유지하며 동계올림픽 준비에는 차질이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종양은 급격하게 커졌고 종양 내에서 다량의 출혈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노 선수는 2014년 1월 훈련 도중 팔꿈치가 골절되면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박씨가 팔꿈치 골절 수술에 들어갔을 때 어깨 종양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있었다. 유족 측 대리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서면에 따르면 K병원은 당시 노 선수 어깨에 대해 "어깨 CT상 종양의 크기가 최대 직경 15㎝로 급격히 증가했고 종양이 견갑골 하근과 가시 아래근으로 확정돼 침범된 상태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치료를 포기, "원자력 병원으로 가서 종양수술을 받으라"고 권했다. 
 
노 선수는 같은 해 1월20일 원자력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악성 종양인 골육종 판명을 받고 왼쪽 견갑골을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했지만 2016년 4월3일 결국 숨졌다. 
 
유족 측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우성의 이인재 변호사는 "병원 의료진은 망인에게 통증 악화, 종양의 크기가 증가한 양상이 나타났음에도 처음부터 악성 종양이었을 가능성 또는 양성 종양이 악성 종양으로 전화됐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했고 아무런 조치와 검사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은 빙상연맹이 추천한 병원이니 검사 결과를 당연히 신뢰했다"면서 "유족들이 다른 병원에 가서 미리 골육종 가능성에 대한 진단 및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이 가장 통탄스러운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오진을 한 병원도 잘못이지만 노 선수 죽음에 대해 더 큰 책임은 빙상연맹에 있다는 주장이다. 노 선수는 훈련 중에도 계속 어깨 통증을 호소했지만, 당시 국가대표팀에서 노 선수만큼의 성과를 낼 사람이 없다는 빙상연맹의 뜻에 따라 훈련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 선수는 종양이 발견된 이후에도 트렌티노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쇼트트랙 파견선수 선발전 등에 참가하며 메달을 획득했다. 2018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수술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메달 따는 것만 중요해 노 선수가 필요했다' 등의 유족과 동료 증언이 전파를 타면서 충격을 줬다.  
 
이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단순히 손해배상 소송이 아니라 빙상연맹의 국가대표선수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연결돼 있다"면서 "빙상연맹은 노 선수가 고통 받는 것을 알면서도 혹사시켰다. 이 같은 사례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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