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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확증 편향’의 날카로운 덫
2020-03-26 00:00:00 2020-03-26 00:00:00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심리학 용어가 있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2016년 나홍진 감독이 만든 영화 ‘곡성’은 확증 편향을 그린 대표작이다. 주인공 종구는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범인으로 일본인을 의심한다. 의심의 시작은 마을 사람들에게 들은 귀동냥이다. 이런 의심은 주변 상황을 통해 점차 확신으로 변한다. ‘곡성’에선 말한다. 미끼에 걸려들지 말라고. 그 미끼가 바로 확증이고 편향이다. 2013년 개봉 영화 ‘더 헌트’도 있다.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한 소녀의 거짓말 때문에 성추행범으로 몰린다. 사실이 밝혀지고 무혐의 처분을 받지만 이미 ‘낙인’을 찍어버린 마을 사람들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확증 편향을 거론한 이유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우리 사회가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펜데믹’ 앞에서 느끼는 공포 심리는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골라 믿겠단 확증 편향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뉴스를 통해 똑같은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같은 정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자신의 편향된 사고에 더 큰 확신을 갖는다. 확증 편향이 문제가 되는 건 개인 사고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며 사회 불안과 분열로 끌고 갈 확률이 큰 점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첫 확진자가 나올 무렵 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냈다.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라며 내가 평소 자주 다니던 여러 음식점 명단을 보내 주셨다. 하루 만에 ‘가짜 뉴스’인 게 밝혀졌다. 어머니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며 잘못된 정보를 공유한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달라 했다. 소용없었다. 해당 명단에 이름이 거론된 가게엔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가게 주인은 “저희 가게엔 확진자가 다녀간 적 없습니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였지만 사람들은 사실 너머 편향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내는 장인어른과 한바탕 말싸움을 했다. 장인어른이 퍼 나른 가짜뉴스를 두고 보다 못해 소리를 지르게 됐단다. 
 
마음의 불안은 객관적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가짜뉴스가 활개칠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지금 시대엔 모든 세대 불안감이 먹잇감일 뿐이다. 불안감에 기생해 가짜뉴스가 생명력을 얻었다. 불안감을 포식한 확증 편향은 더 강해졌고,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편향된 신념 외의 정보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강력한 척력(斥力)을 만들어 냈다. 
 
사실 코로나19가 아니라도 확증 편향은 우리 삶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발달장애인 아들과 목욕탕에 갔다가 “이런 애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항의에 부딪힌 적도 실제로 있다. 
 
평소 개인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확증 편향이 사회 전체 불안감과 맞물렸을 땐 삶의 문제로 직결된다. 코로나19가 문제가 아니다. 불안감은 언제고 또 다시 온다. 불안감을 어떻게 확증 편향의 먹이로 주지 않고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려 애쓸 것인지. 그게 해법이고 탈출구다. 이걸 부인할 수 있겠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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