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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 국회는 곡마단이 아니다
2020-02-18 08:00:00 2020-02-18 08:00:00
이제 더 이상 선거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SNS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선거판을 뒤집는 무수한 변수들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4월 벌어지는 한국 총선을 둘러싸고도 벌써 적지 않은 사건들이 터졌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7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프랑수아 피옹은 전문가들의 예측을 깨고 1위를 차지해 대선을 거머쥘 판이었지만 부인을 거짓으로 고용했다는 스캔들이 터져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오는 3월 벌어지는 파리 시장선거 역시 예상치 못한 변수로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전진하는 공화국의 벵자맹 그리보(Benjamin Griveaux) 후보가 스캔들에 휘말려 지난 2월 14일 전격 사퇴했다. 러시아인 피요트르 파블렌스키(Piotr Pavlenski)가 그리보의 음란 동영상을 SNS에 올렸기 때문이다. 
 
전진하는 공화국은 이 사건을 정치적 살인으로 보고 있다. 동영상이 일파만파로 전파되는 데 한 의원이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조아킴 송-포르제(Joachim Son-Forget). 송-포르제는 지난 13일 외신에서 한국계 프랑스 의원이 2022년 대선출마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던 바로 그 장본인이다. 본명이 김덕수인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3살 때 프랑스 법조인 가정에 입양됐고, 디종과 스위스 로잔에서 의학을 공부해 의사로 활동했다. 2016년 에마뉘엘 마크롱을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고 스위스 재외 프랑스 동포를 상대로 앙 마르슈(전진) 운동을 전개했다. 그 후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여러 차례 지원했다. 2017년 총선에서 전진하는 공화국의 공천을 받아 스위스·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지역구 하원의원이 됐다. 그러나 전진하는 공화국을 탈퇴하고 중도파 정치그룹인 UDI-Agir에 합류했다가 2019년 ‘나는 프랑스인이자 유럽인’이라는 당을 만들어 유럽의원 선거를 치렀다. 최근엔 대선 후보 출사표를 던지면서 절대적 가치(Valeur Absolue)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이처럼 마크롱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송-포르제가 이제는 전진하는 공화국과 결별하고 반격하는 모양새다. 송-포르제는 그리보 사건에 대해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위선적인지 보여주려고 내가 그 동영상을 건냈다”라고 14일 허핑턴 포스트에 설명했다. 그는 그리보를 돕는 차원에서 “미리 알리려고 한 것이었다”라고 단호히 말하며 법적 책임을 부인했다.
  
전진하는 공화국의 몇몇 의원들은 이 스캔들을 일으킨 송-포르제에게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특히 프랑수아 졸리베(François Jolivet) 하원의원은, “조아킴 송-포르제, 너의 우스꽝스런 짓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회는 서커스 학교가 아니다. 나는 너의 이 정치적 살인 공모를 보고 있자니 비탄스럽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송-포르제는 트위터광으로 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트위터에 공개하며 이용자들의 질문에 즉각 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만사에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거침없이 드러낸다. 심지어 극우의 차세대 주자인 마리옹 마레샬과 친구가 되고, 소송에 걸린 마크롱 대통령의 전 경호원 알렉상드르 베날라(Alexandre Benalla)를 보좌관으로 삼겠다며 함께 찍은 셀카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한다. 특히 2018년 유럽 환경당의 여성의원 에스테르 벤바싸(Esther Benbassa)의 화장 모습을 비판해 섹시스트라는 비난을 받는 등 그의 일탈 행동은 끝이 없다. 
 
송-포르제는 그리보 스캔들이 터지기 이틀 전인 12일 프랑스 내 인기 사회자 시릴 아누나(Cyril Hanouna)가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오락 프로 <뚜슈 빠 아 몽 뽀스트(Touche Pas à Mon Poste·내 자리를 건들지마)>에 출현해 반말을 하며 “시릴 난 오늘 자네에게 2022년 대선 후보가 될 것을 말하네. 나는 프랑스인들에게 제안하고자 대선 프로젝트를 만드는 중일세”라고 말하며 사회자가 합류해 주길 요청했다. 그러나 시릴 아누나는 이를 거절했다. 
 
괴짜 정치인 조아킴 송-포르제로 인해 프랑스 정치가 아수라장이 돼 가는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여당 정치인들의 위선적 행동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면 분명 일탈이 아니라 정의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을 정의로 볼 수 있는지 고개가 갸웃한다. 아무튼 이번 그리보 스캔들을 통해 총선을 준비하는 한국 정치권은 각성에 각성을 거듭하길 바란다. 선거대비는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먼저 당 내부적으로는 송-포르제 같은 일탈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이 없나 철저히 살피고, 또 한편으로는 무리수를 두어 가면서까지 전략 공천을 강행하는 건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유명하다고 해서 선거를 거저먹는 시대는 지났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공천해야 한다. 예전처럼 유명인에 목숨 걸다간 ‘선거 한 방에 훅’ 날릴 수 있다. 이런 점을 각 당은 잘 고려해야 4월 15일 선전할 수 있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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