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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기생충’ 봉준호 개인 승리로 끝날 수 있다
2020-02-13 00:00:00 2020-02-13 06:29:30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을 위해 할리우드 원로 배우 제인 폰다가 무대에 올랐다. 전 세계가 숨죽여 무대에서 봉투를 여는 그의 우아한 손짓을 지켜봤다. 봉투 안 내용을 확인한 그는 지체하지 않고 “패러사이트”를 외쳤다. 101년 한국영화사와 92년 아카데미 역사가 뒤집어진 순간이었다.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난 봉준호 감독을 포함해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와 관계자가 모두 무대에 올랐다.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들은 기립박수로 인류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영광의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한국영화는 전 세계 영화시장 중심에 우뚝 섰다. 봉준호 개인의 브랜드 가치 상승은 판단 기준을 넘어서 버렸다. ‘한국영화의 승리(Victory)’란 국내외 보도가 쏟아지고 전 세계 네티즌은 ‘봉하이브(hive, 벌집)'를 외쳐대며 봉준호 팬덤 현상을 확산시켰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광의 날. 하지만 한국영화는 진정으로 승리한 것일까. 이제 한국영화는 세계 중심에 우뚝 서게 될까. 안타깝지만 이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잔혹한 현실은 여전히 충무로를 옥죄고 있다. 
 
이미 십 수년 전부터 한국영화는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 수상 행진을 이어왔다. 그때마다 세계 무대에서 재평가 받은 한국영화는 도약과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날로 드높아지는 세계적 위상과 별개로 국내 시장 현실은 뒷걸음치기 바빴다. 대기업이 움켜쥐고 흔드는 거대 자본은 소수의 감독에게만 집중된 특권이 됐다. 이런 불균형은 흥행 성적으로 나타났다. 성수기와 비수기로 확연히 구분되는 시장 불균형, 신인 감독들의 하향 평준화된 결과물,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자본은 없었다. 
 
다시 ‘기생충’으로 돌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충’은 자본 우선주의 세상의 혜택을 듬뿍 받은 총아다. CJ그룹은 봉준호 브랜드에 걸맞게 아낌없는 자본을 ‘기생충’에 쏟아 부었다. 그에 대한 예우였을까. 작품상 소감발표 마지막은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장식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생충’이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문제를 다루며 자본주의 현실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꼬집은 영화란 점이다. 한국 영화시장에서 가장 큰 자본 권력을 휘두르는 CJ가 자본시장 문제를 꼬집은 영화에 거대 자본을 투자해 아카데미 작품상이란 승리를 이뤄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기생충의 영광은 한국영화 승리일까, 거대 자본의 승리일까, 봉준호 개인의 승리일까. 미국에는 할리우드가 있고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다. 충무로 99%는 아직도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역) 신세다. 혹시 모른다. 지하실 근세(박명훈 역)로 살아가는 99%가 이번 ‘기생충’의 찬란한 영광을 보며 박사장(이선균 역)을 꿈꿀지도. 
 
‘기생충’에서 보여준 반지하와 호화주택의 이분법적 시선. 한국 영화시장에도 팽배한 그 구조를 깨지 못하는 한, 시장 자본 흐름이 소수의 소수에게만 집중되는 한, 충무로 99%가 반지하 신세를 면치 못하는 한, ‘기생충’은 한국영화 전체 승리가 될 수 없다. 봉준호 개인의 승리일 뿐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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