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김두관의 부활
입력 : 2020-01-29 16:43:27 수정 : 2020-01-29 17:00:20
잊혀졌던 이름, 김두관이 다시 들려온다.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선출한 지난 8·25 전당대회에서 김두관은 당권 도전에 나섰으나 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예상은 했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초라했다. 일부에서는 초선의 한계로 해석하기도 했으나, 과거 그의 중량감을 감안하면 틀어질 대로 틀어진 친문과의 관계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앞서 김두관은 2012년 대권 도전을 위해 경남도지사직을 던지는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유력주자였던 문재인 대통령과의 일전도 불사했다. 문제는 문 대통령과 각을 세움에 있어 친노 핵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것.(김두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문재인에게도 물었다.) 
 
패착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의 인생 이력(가난한 시골집 아들에 전문대 출신으로 마을 이장, 남해군수에 이어 행정자치부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그의 경남지사 당선은 김두관만이 해낼 수 있었던 일대 사건이었다.)은 왕권시대 공주 이미지의 박근혜에 맞설 최대 무기였지만 칼집에서 꺼내지도 못했다. 약속된 민평련(김근태계로 운동권의 본류)의 지지 등도 김두관에 대한 실망으로 무산됐다. 
 
가뜩이나 김두관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던 친노 핵심들은 이를 그에 대한 공세적 소재로 사용했다. 결국 풀뿌리 지방자치 세력과 함께 김두관의 양대 버팀목이었던 일반 친노 지지층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면서 김두관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로 내몰렸다. 지역 기반이었던 경남도 그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사실, 김두관에 대한 친노 핵심들의 배척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마을 이장' 출신이라며 그를 공개적으로 조롱할 때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내에서조차 이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변변치 못한 학력과 학생운동 이력 등은 그를 '우리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고, 여기에 더해 그의 보스 기질은 불편을 넘어 견제의 직접적 이유가 됐다. "대통령 잘 만나 벼락출세한 시골 촌놈"과 함께 "오직 노 대통령만이 그를 아낀다"는 말들이 여권 내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다. 노 전 대통령이 DJ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듯 김두관도 친노 내에서 왕따나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리틀 노무현'은 '역적 김두관'으로 전락했다. 노무현만큼이나 영남을 두드렸던 그의 지역주의 타파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그렇게 쫒기듯 김포로 가야만 했던 그가 다시 고향 경남으로 돌아온다. 
 
사정도 달라졌다. 김경수 경남지사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이른바 친문 핵심들이 그의 경남 출마를 요청했다. 이중 이호철 전 수석은 김두관과 거리를 뒀던 친노의 대표적 인물로 분류된다. 이들은 경남의 수도이면서도 당 기반이 약한 창원에 김두관이 나서줄 것을 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이 다시 김두관에게 손을 내밀면서 이해찬 대표 등 당 지도부도 김두관 설득에 나섰다. 김두관은 흔들렸고 결심에 이른다. 전장은 경남 양산을. 문 대통령이 퇴임 후 다시 돌아올 이 곳에 김두관이 나서기로 했다. 
 
사실, 김두관은 PK로 돌아올 경우 내심 부산 북강서을을 원했다고 한다. '바보 노무현'의 신화가 탄생한 그 곳에서 '리틀 노무현'으로 다시 불리고 싶었던, 그래서 영남 대표주자로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이자 전략으로 읽힌다. 
 
양산은 김두관에게도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바로 이 곳, 양산에서 펼쳐졌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당 대표 출신의 박희태였다. 노 전 대통령을 잃은 국민적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터라 선거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적 해석도 달리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지역 민주화 원로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양산에 터를 잡고 있던 문재인에게 달려갔다. '노무현의 친구'가 나서 국민적 슬픔을 위로해 주길 바랐다. 일부는 '노무현 죽음'에 대한 복수를 외쳤다. 문재인은 침묵했고, 그 침묵이 길어지자 대안으로 김두관이 거론됐다. 선거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김두관은 직간접적으로 출마 의지를 피력했으나 그의 등장은 무산됐고 결과는 패배였다. 
 
김두관의 이번 양산 출마는, 그래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친문을 포함한 범친노와의 관계 복원이 그 첫 째다. 그래야 김두관이 다시 설 수 있다. 노무현의 길(지역주의 타파)을 걸으며 문재인의 길(퇴임 후 안정적인 양산 생활)도 열어야 한다. 다음은 그 때 가서 생각해도 된다. 양산이 험지일 진 모르지만 사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두관의 생환을 고대한다. 
 
김기성 자유기고가(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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