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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김규평 주관과 객관의 혼돈 이랬다”
“배우로서 판단으로만 영화 출연 결정…그 사람들 감정 표현하고 싶다”
“김규평의 선택, 대의를 위해·우발적 범죄...미스터리로 남기고 싶었다”
2020-01-27 00:00:00 2020-01-27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병헌은 단호했다. 평가에 대한 의견을 절대 거부했다. 그 어떤 평가도 자신을 내릴 수 없다고 했다. 당연한 말일 수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 김재규를 연기했다. 김재규가 누군가. 18년 철권통치를 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그의 최후 발언은 지금까지 그를 양극단의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나권력을 노린 우발적 범죄였나란 점이다. 그의 속내를 바라본 여러 드라마와 영화가 있었다. 가장 가깝게는 임상수 감독의 그떄 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불안함과 흔들리는 감정을 오롯이 바라본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과연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왜 박 대통령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 밖에 없었을까. 박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고 신뢰하던 그가 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병헌은 김규평이란 인물이 돼 1979 10 26일 궁정동 그 사건의 40일 전으로 돌아갔다.
 
배우 이병헌. 사진/쇼박스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병헌은 조심스러워했다. 워낙 민감한 내용이었고, 정치색을 배제한 스타일의 영화라고 하지만 정치적 시선을 절대 거둘 수 있는 영화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에 대한 논의나 내용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모든 것을 관객들의 평가에로만 돌리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정했던 건 딱 한 가지였다.
 
완벽하게 배우로서의 판단으로만 접근했어요. 이야기의 힘이 컸고, 아주 예민할 정도의 디테일 한 심리 묘사와 감정을 느꼈는데 그걸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죠. 만약 남산의 부장들이 조금의 정치적 느낌이나 누군가에 대한 영웅화를 시도했다면 절대 출연 안 했을 겁니다. 그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 만들어 진 감정은 어땠을까. 그 지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었죠.”
 
가장 부담스러웠던 점은 이 사건 자체가 여러 번 영화 혹은 드라마로 그려졌던 점이다. 더 큰 부담은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와 직접적으로 경험을 한 세대가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심에 있단 점이었다. 그는 한 사람만 건너도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면서 오히려 배우로서 창작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느꼈단다. 그건 김규평을 만들어 가는 지점에서 가장 큰 걸림돌일 수도 있었다.
 
배우 이병헌. 사진/쇼박스
 
실제 역사에 기반을 둔 작품 경험은 광해도 있었고, ‘남한산성도 있었죠. 그런데 이건 전화 한 통이면 그 사건을 기억하고 경험했던 분들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사건이에요. 배우로서 마음껏 뛰어 노는상황이 일어날 수 없었죠. 왜곡을 피하기 위해 절제에 절제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어요. 또한 의심에 의심을 했죠. ‘정말 이게 맞았을까라고.”
 
의심의 지점에서 가장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이병헌도 궁금했을 것이고, 관객들도 궁금한 지점이다. 연출을 맡은 우민호 감독도 이 영화의 감독으로 나서면서 궁금해 했을 것이다. 도대체 김규평은 박통을 정말로 존경했을까. 과연 존경했다면 왜 그랬을까. 그리고 박통은 정말 김규평을 신뢰했을까. 아니면 의심했을까. 어떤 이유에서 김규평에게 그랬을까. 질문은 여러 개가 될 수 있지만 맥락은 하나였다. ‘도대체 왜.
 
하하하, 글쎄요. 제가 뭔가를 평가하고 대답하는 것은 관객 분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신 이건 제가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규평은 박통을 존경해요. 여러 자료와 증언을 종합해 보면 그게 맞는 거 같아요. 곽상천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인물이라면 김규평은 자기 감정을 꾹꾹 누르면서도 꼭 해야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죠. 김규평 곽상천 박통, 이들의 관계가 그리 특수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직장 생활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충성 경쟁이 과도해 지면서 뭔가 터진 게 아닌가 싶었죠.”
 
배우 이병헌. 사진/쇼박스
 
그런 충성 경쟁 속에서 김규평은 터져 버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사건이다. 결말도 우린 알고 있다. 이 영화가 기존의 ‘10.26 사건을 다룬 영화와 완벽한 차별 점이라면, 그 사건의 단초가 누구에게 있었냐는 점이다. ‘남산의 부장들에선 박통용인술이 만들어 낸 비극으로 은유한다. 직접적이지만 그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다고 하는 느낌도 있다.
 
그 질문은 정말 어렵네요(웃음). 이건 제가 답하지 않을게요. 아마도 감독님도 답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답을 하면 그 사건에 대한 정리를 해 버리는 것이니. 다만 전 시나리오에서 말씀하신 대로 박통이 김규평과 곽상천 그리고 박용각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봤죠. 일종의 용인술이죠. 사건 전 40일로 돌아갔지만 설명을 좀 배제한 건 마지막 그 사건의 극대화를 위한 장치였다고 봤어요.”
 
사실 진짜 질문은 남아 있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저격 사건에 대한 심정이다. 배우로서 실제 인물인 김재규가 왜 그랬는지를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럼 다시 질문을 돌렸다. 김재규를 모델로 한 김규평은 왜 총구를 겨눴고 방아쇠를 당겼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확실한 답을 영화에서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의 정말 마지막은 김규평의 얼굴과 함께 그가 타고 있던 차가 유턴을 해 육군본부로 향하는 장면이다.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건의 마지막이다.
 
배우 이병헌. 사진/쇼박스
 
정말 대의를 위해서? 아니면 실제 그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내용처럼 우발적이고 개인적인 욕심에서? 그건 우리도 모르죠(웃음). 김규평도 알까요?(웃음). 그냥 물음표로 남기는 게 예의라고 봤어요. 그게 영화의 목표였으니. 여러 복잡한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날 찔렀을 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게 튀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규평도 그랬을 거 같아요.”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한 가지 상황을 전했다. 영화에 등장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통해 그는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답을 제시했다. 그 객관적인 감정을 통해 김규평이 왜 그랬을까를 추론한다면 남산의 부장들을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명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고 충분히 납득이 되고 설득이 됐다.
 
배우 이병헌. 사진/쇼박스
 
김규평이 박통을 쏘고 곽상천도 쏜 뒤 방을 빠져 나가다 방 바닥에 흥건한 피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장면이 있죠. 사실 그 장면은 저와 감독님이 상의해서 넣은 부분이에요. 뭐랄까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갑자기 미끄러지고 나선 주위를 봐요. 아주 잠깐 정신이 돌아온 거죠. 하지만 이내 다시 흥분 상태로 돌아가요. 주관과 객관이 오가는 장면은 마지막 차 안에서도 있어요. 피에 젖은 양말을 만지다가 자기 손에 뭍은 피를 보죠. 그때의 표정(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주관과 객관의 혼돈. 그게 그 사건의 중심에 선 김규평 곽상천 박용각 그리고 박통의 감정이 아닐까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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